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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토론 싸움하는 방식의 차이 = 결국, 체제와 신념체계의 차이
kweassa 추천 2 조회 673 13.12.03 21:41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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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3.12.03 22:51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 13.12.03 23:09

    좋은 글 감사합니다. 다만 초기의 일본군의 빠른 진격은 아마 이러한 이념과는 별개의 문제로 그 당시 일본군의 입장에서 최선의 전략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어느 나라이든 나라의 지휘부는 결국 조정이기 마련이며, 이런 지휘부에 대한 타격은 고대로부터 지금까지도 전쟁에 있어서 핵심적인 전략이니 말이죠. 만약 일본이 후방의 안전을 도모하면서 천천히 진격했다면, 한성에 있는 조선의 조정이 초기 기습으로 인한 충격에서 벗어나 제승방략 정책에 따라 지방에 흩어져 있는 군대를 모아서 실제 역사보다도 훨씬 더 조직적인 저항을 했으리라 추측됩니다. 이러한 상황은 일본으로서는 정말 피하고 싶은 상황이죠.

  • 13.12.03 23:10

    오오 이렇게 또 배워갑니다 냠냠

  • 13.12.03 23:18

    따라서 신속한 진격에 따라 후방이 좀 불안해지는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한성으로 빠르게 진격해서 조정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쪽이 일본군에게는 보다 좋은 상황이겠죠. 물론 조정의 기능이 '마비' 되었다는건 선조가 의주로 몽진을 가서 그 곳에서 자리를 잡기 전까지를 말합니다. 또한 일본군 역시 '보급' 이 중요한 요소임을 잘 알고 있었고, 그걸 해결할 방법도 있었습니다. 배를 이용해 서해쪽의 항구를 통해서 보급을 하겠다는 전략이죠. 만약 이게 현실로 일어났다면 임란은 일본의 승리로 끝났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ㅠ.ㅠ 허나 모두가 알다시피 조선에는 먼치킨을 넘어서 '사기' 수준의 수군장군이 하나 있었죠. ㅎㅎㅎ

  • 13.12.03 23:22

    결국 일본군의 초기 전략이였던 신속한 진격의 '편익' 인 초기 기습효과와 지휘부의 기능 마비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리고 일본군의 (아마도) 예상을 뛰어넘는 후방 의병활동으로 인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점점 감소했을 것이고, 반대로 신속한 진격의 '위험' 인 보급불안은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전혀 계산 밖인 해전에서의 패배와 마찬가지로 계산에서 벗어난 의병활동으로 원래 예측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 13.12.03 23:32

    또한 의주까지 진격하지 못한 이유에는 아마 명나라를 의식해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100% 추측이긴 합니다만, 평양과는 달리 의주는 명나라와도 국경을 맞댄 지역이니 만치 그 곳까지 일본군이 밀고 들어오는 것은 명나라 입장에서도 두고 볼수만은 없는 일이겠죠. 물론 토요토미야 명나라까지 진격할 꿈을 꾸었다지만 이건 일본군 장수조차도 믿지 않는 혼자만의 망상에 불과했고, 일본군 입장에서는 명나라를 자극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성 때문에 조선의 조정을 아예 조선의 국경너머로 몰아내버릴 수 있는 매력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차마 진격할 수가 없었겠죠.

  • 13.12.04 00:09

    잘읽었습니다

  • 13.12.04 01:28

    정말 좋은 글입니다.

  • 13.12.04 08:57

    좋은 글입니다. 깔끔하게 잘 정리하셧군요.
    쓰느라 고생좀 하셧을듯요.

  • 13.12.04 20:24

    아 댓글이 달렸다고 새소식 올라와있던게 이글때문이었군요 잘봤습니다

  • 13.12.11 10:31

    좋은글 잘읽었습니다...^^

  • 13.12.26 02:33

    일본의 패인은 결국 왕을 못잡아서 인듯 합니다.;

    장기에서도 결국 왕 못 잡으면 게임이 안끝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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