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배우 남정임은 아까운 나이 47세에 세상을 떠났다. 92년에 악성 종양으로 타계했는데,한 해 전에 그녀는 마지막 영화에 출연했다. 그를 데뷔시켜준 김수용 감독의 작품 ‘웃음소리’에 출연한 것이다. 그러니까 김감독이 연출한 ‘유정’으로 시작해서 ‘웃음소리’로 영화인생을 마감한 것이다. 그녀는 65년 동양TV(TBC-TV)를 통해 생방송으로 진행된 배우선발대회에서 800여명의 경쟁자들 가운데 당당히 뽑혀서 이광수 원작 ‘유정’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때 나는 심사위원은 아니었지만 TV 스튜디오에서 현장을 취재했다. 지금은 신세계백화점이지만,당시 동화백화점 5층에 TV스튜디오가 있었는데 별로 넓지 않은 곳에 예쁜 아가씨들이 800명이나 모여 있으니 그 분위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거나 남정임은 여기서 발탁되었다.
그때 심사를 맡은 김수용 감독은 “이상한 매력이 있다. 배우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극찬을 했다. 남정임의 상대역은 김진규 선생이다. ‘선생님’ 역을 맡은 김진규씨와 남정임이 사랑하게 되는데,김감독과 함께한 첫 만남의 자리에서 김진규씨가 물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이민자입니다.” “뭐야? 이민자? 왜 하필이면 이민자야? 이민자하고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김진규 선생의 부인이었던 영화배우 이민자씨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남정임의 본명이 이민자였으니 묘한 인연이었던 것이다. 남정임이란 소설 ‘유정’의 주인공 이름이어서 그때부터 그녀의 예명이 남정임이 되었다.
1세대 트로이카 여배우 3명에게는 재미있는 인연이 있다. 44년 생인 윤정희씨,45년 생인 남정임씨,그리고 47년생인 문희씨가 비슷한 시기에 데뷔를 했다. 문희씨와 남정임씨가 65년에 데뷔했고,윤정희씨는 그들보다 1년 늦게 66년에 데뷔했다. 그런데 특이하게 세 사람이 모두 7월에 태어났다. 7월16일(문희),7월19일(남정임),7월30일(윤정희)이 생일이다. 이상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남정임은 성격이 매우 활달했다. 그래서 친구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나라의 할리우드라고 일컬어지는 충무로에서 남정임은 항상 화제를 몰고 다녔다. 그러니까 이야깃거리가 많은 배우였다. 감독들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배우이면서 가장 조심스러워하는 배우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약속이 어긋나든지 하면,그야말로 ‘국물’도 없기 때문이다. 본인의 말대로 ‘굵고 짧게 살다 간 배우’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