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은 인간이 사회생활을 영위해 나감에 있어 필요선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필요악의 구실도 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술 때문에 일을 그르치거나 망한 사람이 부지기수이다.
탈무드는 술을 악마의 선물이라 말한다.
-인간이 포도밭에서 씨앗을 심을 때 악마가 거들기를 청했다. 악마는 사자, 돼지, 원숭이, 양을 끌고 와, 그 짐승들을 죽이고 피를 비료로 뿌려 주었다. 이후 포도주가 만들어졌는데,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고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강해지고, 그 이상 더 마시면 돼지처럼 더럽게 된다. 여기에서 더 마시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 부르게 된다.-
그래서 옛부터 “불위주곤(不危酒困)”이니 “주유병(酒有兵)”이란 말이 있어 왔다.
“불위주곤”이란 술 때문에 곤경을 겪는 일을 하지 말라는 뜻이요, “주유병” 이란 술은 무기와 같다는 뜻으로 경계하지 않으면 도리어 몸을 해친다는 충고의 말이다.
나는 술을 즐긴다.
마구잡이 폭주(暴酒) 하는 버릇은 없지만 하루 소주 한 홉은 마신다.
간혹 TV에서 건강전문가라는 사람들이 설파(說破)하는 말을 듣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난 기사들을 보노라면, 일주일에 한 번쯤 대취, 만취하는 폭주보다 매일마시는 한두 잔의 술이 더 위험하다고 위협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접할 때면 ‘그렇구나!’하고 수긍을 하면서도 보란 듯 매일 소주 한 홉을 즐겨 마신다.
매일 술을 마신다 해도 나름대로 철칙은 있다.
해가 떠있는 동안은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음주를 금하고 어둠살이 어둑어둑 내릴 무렵 석양배(夕陽杯)를 기울인다.
술은 참으로 혼자 마시면 멋대가리도 없거니와 술맛도 없다.
아무리 가난하던 시절에도 술 인심처럼 후한 것은 없다고 한다.
한국인은 싫다는 사람에게라도 굳이 술을 먹이려고 애쓰는 버릇이 있다.
알고 보면 술맛을 더하기 위해 대작할 친구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저 술꾼들이 어울려서 권커니 잣커니 하면서 마셔야만 술맛과 함께 도도한 주흥이 일게 되고 주흥이 일어나야 술판이 즐거워지게 마련이다.
주흥이 일게 되면 얼큰해지고, 얼큰해지면 남에게 쉽사리 말할 수 없었던 객쩍은 말도 수다로 변하여 말의 꽃이 만발하게 되는 것이다.
대작할 상대가 없다는 것은 술꾼에게 있어서는 외롭고 슬픈 일이다.
나 역시 해거름이면 오늘은 누구와 희롱 하나하고 이궁리 저궁리 하며 대작할 벗을 찾는다.
대작꾼이 없다 해도 야채 한 접시와 소주 한 홉을 굳이 비우고 잠자리에 드는 것이 작은 행복이자 오래된 습관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 있는 주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나 로마 신화의 주신 바커스(Bacchus)의 축제 때는 술과 가무(歌舞)가 어울려 한바탕 흐드러진 굿판이 벌어졌다 한다.
우리나라의 고대 축제인 영고, 동맹, 제천 등에서도 저들 못지않았다.
중국의 사서(史書) ‘삼국지 (동이전:東夷傳)’에 보면, 제천행사 때 “밤낮으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다.”했으니 우리 옛 조상들도 어지간히 술을 즐긴 모양이다.
술은 기뻐서 마시고, 화가나서 마시고, 시름을 풀기 위해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 신과의 교감을 위해 조상을 모시기 위해 한을 풀기위해서도 마신다.
술꾼들의 술핑계는 그야말로 귀에걸면 귀걸이요 코에걸면 코걸이니 만가지 이유가 성립된다.
조선 문학의 최고봉이라 찬사 받는 송강 정철은 그로부터 발생된 당쟁 정치의 1세대이다보니 항상 진흙탕에서 뒹굴어야 했다.
그 우울하고 험난한 권력의 쟁투속에서 피투성이가 되었으니 권력의 무상함을 알았는지 아니면 권력의 공포를 알았는지 현실을 잊고자 술에 취한 듯 쓴 시가 장진주사(將進酒辭)이다.
한 잔 먹세그려 또 한 잔 먹세그려
꽃 꺾어 산(算) 놓고 무진무진 먹세그려
이 몸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 덮어 줄이어 매여 가나
유소보장(流蘇寶張)에 만인이 울어 에나
어욱새 속새 떡갈나무 백양숲에 가기 곧 가면
누른 해 흰 달 가는 비 굵은 눈 소소리바람 불 제
뉘 한 잔 먹자 할꼬
하물며 무덤 위에 잿납이 휘파람 불 제야 뉘우친들 어이리
도학자 퇴계선생도 술한테만은 꼼짝을 못 하셨는가.
아니면 그 태평성대가 주는 여유로움 때문에 권태로워 마셨는가.
선생이 지으셨다는 <귀전가> 한 대목을 보면 평화가 그대로 뚝뚝 묻어난다.
태평성대에 굴레 벗은 이내 몸이
청풍명월 벗삼아 의지해서
오늘 취 내일 취 모래 취 글피 취
누우나 앉으나 취함이 일이로다.
-이황-
시선(詩仙)이라 추앙받는 당나라 이백은 채석강에서 술마시고 놀다가 물위에 비친 달을 보고 달을 잡아오겠다고 투신했다가 익사했다고 전한다.
그가 얼마나 술을 사랑했고 왜 주성(酒聖)이라 불렀는지 다음과 같은 유명한 시를 보면 알 수 있다.
하늘이 술을 사랑 않으면
하늘에 술별 없었으리라.
땅이 술을 사랑 않으면
땅에 술샘 없었으리라.
하늘과 땅이 술을 한결같이 사랑하니
애주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으리.
청주는 성인에 비하고
탁주는 현인과 같다네.
성인과 현인을 이미 마셨거늘
기필코 신선이 되길 원할소냐.
선작이면 대도에 통하고
한말이면 자연에 합친다.
오직 술꾼만이 취흥을 알 것이니
아예 맹숭에겐 전하지 말지어다.
술에 관한 내 첫 걸음은 중학교 2학년 무렵인가 보다.
생각하면 그렇게 아름답지 못한 쓴웃음이 나오는 추억이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한 교정 안에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시골학교다.
향(鄕)내의학교들이 대부분 그렇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동네 중학교로 진학하였으며 중학교를 졸업하면 대개는 같은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는 것이 순서였다.
선후배 모두가 동네 아이들이기 때문에 선배가 친구 같기도 하고 후배가 친구 같기도 하다.
그 해 가을걷이가 한창이었을 때 고등학교 다니는 동네 형이 별일 없으면 일요일 날 집으로 오라했다.
요즘처럼 기계로 추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력으로 벼 베기를 하던 시절이었으니 추수철이 되면 아이들의 작은 힘도 큰 보탬이 되었다.
그 형네 집은 아버지가 없이 어머니의 힘으로 농사를 짓기에 언제나 일손이 부족했고, 우리 집은 농사를 짓지 않으니 기꺼이 그러마고 약속했다.
따스한 햇살아래 톡톡 튀는 메뚜기를 잡아가며 한 고랑 두 고랑 벼를 베어나가는 일이 처음에는 재미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힘이 들었다.
그렇다고 시작한 일을 중도에 그만 둘 수도 없었거니와 게으름을 피울 수도 없었다.
시장기를 느낄 무렵 푸지게 차려온 점심을 논두렁에 펼쳐놓고 배부르게 먹었다.
형이 집에서 만든 가양주(家釀酒) 한 사발을 권했다.
나는 무심코 받아 마셨다.
달착지근한 그 맛은 술이란 기분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향기가 강했으며 맛있는 음료수 같았다.
아마 달콤한 맛에 끌려 연작으로 서너 잔은 마셨는가 보다.
점심이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는 것을 느꼈다.
발은 허방다리를 밟았고 몸은 균형을 잡지 못했다.
겨우 나락더미 쌓아놓은 곳까지 가서는 그 안에서 정신을 잃었다.
그날 우리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해가 저물어도 아이가 돌아오지 않으니 온 가족이 나를 찾아 다녔지만 나는 행방이 묘연했다.
나 때문에 가족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형은 내가 보이지 않기에 일이 힘들어 집으로 돌아간 줄 알았단다.
내가 눈을 뜬 것은 그 이튿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겨우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혼몽 중에 쉬야를 해서 바지는 축축하게 젖어 있었고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깨어질 듯 아픈 머리를 싸매고 남이 볼 새라 골목길을 돌고 돌아 허적거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처음 마신 술로 인한 후유증은 이삼일이나 나를 괴롭혔다.
그 이후 평생 술은 마시지 않으리라 맹세를 했지만, 세상일은 모를 일인지라 현진건의 소설처럼 ‘술 권하는 사회’에 살다보니 지금은 대취, 만취, 주야장취하는 폭주가는 아니라 해도 매일 소주 한 홉을 사랑하는 애주가로 변했으니 웃을 일이다.
“대인은 절주(節酒)를 하고 소인은 단주(斷酒)를 한다.”는 말처럼 술 끊기만은 맹세할 일이 아닌 모양이다.
그렇게 마신 첫술이 나의 술에 대한 동정(童貞)이었지만 소년시절 술에 대한 씁쓸한 추억으로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다.
멀쩡한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이 술이기에 술마시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다.
"人酒食 酒食酒 食人酒라 첫잔은 사람이 술을 마시고, 둘째 잔은 술이 술을 마시고, 셋째 잔은 술이 사람을 마신다."고 부처님이 누누이 타이르셨건만 그걸 알면서도 술판만 벌어지면 사람들은 논에 물대듯이 마신다.
그러다 보니 취생몽사(醉生夢死)지경으로 간다.
‘망우물(忘憂水)’ 술은 근심 걱정을 잊게 한다하여 망우물이라 불렀다.
아무리 근심 걱정을 잊게 한다는 망우물이라 하여도 이성과 판단이 마비되어 취생몽사로 가는 길은 삼가야할 것이다.
술먹고 비틀걸음 칠제 술을 먹지 말자 맹세하였더니
술 보고 안주 보니 맹세도 허사로다
아이야, 술 가득 부어라 맹세풀이 하자
-실명씨-
시인 조지훈은 “제 돈 써 가면서 제 술 안 먹어준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요,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 마시는 자랑뿐이다.”라고 했다.
나 역시 친구만나 술사는 게 큰 즐거움이려니 오늘은 누구를 찾아서 술 사 먹일까? 이리저리 머리 굴려 본다. ^^*
첫댓글 술에취한 옛추억 30년전에 사촌올케가 기분나뿐일이 있다면서 같이 술한자하자고 생맥주집에서 1000cc한잔을 쮸~욱마시고 급한일이 있어서 집에가려는 순간 남모르는 남정내가 악수하자고 손내미길래 악수실컨하고 쳐다보니 모르는 사람이라 정신몽롱해서 거울을 보니 두눈이 빨갛고 발거름이 비틀비틀 겨우집찿아
카~~그런데 정작 물어봐야할 분에게 진짜 안물어봤네. 향기님 주량이 얼만큼 되시는지요? 내숭빼지말고 솔직히 고백하시와요. 머 여기 웬만한 님들은 다 주당 그룹에 들어가는줄 알고 있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