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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롬10:1-15
미국 대 공항 시절에 뉴욕 시장 피오렐로 구아디아 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미국 사람인데도 키가 1미터 65센치 밖에 못되는데도
다양한 활동으로 뉴욕 시민들에게 아주 기쁨을 주고
아주 뉴욕 시민들에게 살 맛 나는 시정을 펼쳤던 사람이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허름한 여인이 빵을 훔쳤다고 해서 재판을 받으려 왔었습니다.
그런데 빵 가게의 주인이 이 사람은 꼭 벌을 받아야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그냥 내어 보내 주기는 그렇고
그래서 당신은 처벌을 받을 수 밖 에 없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10달라 벌금을 내어야 되겠습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 자기 호주머니에서 10달러를 내어서
이것으로 벌금을 대신 하세요 그랬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에 있는 여러 사람들에게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다 죄 값을 치러야 됩니다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했습니다.
이 할머니가 손자들을 위해서
빵을 훔칠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우리가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부 벌금을 50센트씩 다 내야 됩니다 그랬었습니다.
그래서 빵가게 주인도 50센트를 내고
또 거기에 있는 여러 사람들도 50센트를 내어서
47달러 50센트를 모아서 그 훔친 할머니에게 주었습니다.
자기가 낸 10달러는 벌금으로 내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거둔 돈으로는
그 할머니가 먹고 살도록 그렇게 돈을 거두어서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가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그 할머니가 어쩔 줄을 몰랐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 때 그 시장의 의도를 깨닫고
시장이 정말로 그 할머니를 위해서
또 여러 사람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해서
누가 일어나라고 이야기도 하지 아니했는데 다 일어서서 기립 박수를 보내고
시장을 정말 잘한 시장이라고 이야기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이 뉴욕 시장은 그 시민들에게 받으신 바 되는 그런 시장이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루 하루가 살아 나아갈 때에 상대방에게 받으신 바가 될 수 있는
감동할 만한 그런 언행심사는 참 중요합니다.
또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실만한 그런 신앙생활을 하고
그런 언행 심사 속에서 살아간다고 하는 것 참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로마서 10장 이야기는 먼저 9장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로마서는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원리를 설명하는데
로마서의 먼저 우리는 죄인이니 다음에는 구원받아야 되고
다음에는 성화되어져 가야 되고 다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고
그리고 다음은 봉사를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라고 하는데
9장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히 선택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0장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잘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버리시는 내용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다 구원받게 하고 싶다고 관심을 나타내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열심은 있으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 라고 말하면서
바로 하나님의 의도 모르고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않는다고 지적을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라고요.
율법을 아무리 행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라고 하는 그런 말을 합니다.
바로 여기서 구원을 이루려고 하는 그 메시야를 하늘로 올라가서
모셔 내려올 필요도 없고 또 음부에 내려가서 그 분을 모셔 올라올 필요가 없다.
바로 그 분은 말씀이 되어서 바로 가깝게 계신다.
그래서 그 분을 믿기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라고 즉 믿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자가 되라고
오늘 본문에서 간절한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우리에게도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되라고
오늘도 우리에게 간절하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아보면
먼저 1절입니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은
첫 번째는 타인에게 관심갖고 올바르게 인도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여기서 바울은 형제들아 그렇게 부릅니다.
이 말이 정말 간절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을 했습니다.
그래서 선택을 받았으니까 선택을 받은 만큼 살아야 되는데
선택받은 것은 다 잃어버리고 자기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거죠.
아브라함의 자손만을 자랑하고 아브라함의 자손만 팔아 먹고 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바로 이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 원하는 바는 하나님께 구하는 바 이스라엘을 위함인데
구원을 얻기 위하는 것이 자기의 평생의 소원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이스라엘에게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구원을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원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9장 3절에 바울이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느냐 하면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지금 자기 형제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해서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한다고 하면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괜찮다고 바울은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끊어져도 쾡찮다고요.
지금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바로 여기에 있는 로마 교회의 편지를 하면서
형제들아 내 마음이 원하는 바는 너희들이 구원받는 거야.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로마교회의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인도하려고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에게 많은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인도하려고
바울은 편지를 13통이나 썼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살아갈 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내가 편하고 잘되어서 아무 걱정 없이 살고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전부 이기주의가 되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어도
옆에서 그냥 아주 힘들어도 그냥 지나가 버립니다.
왜냐하면 경찰서에서 오라 가라 하면 성가시니까 안본 것 같이 해버립니다.
요즘도 교통신호 위반을 해서 어떤 사고를 냈는데 서로 잘 했다고 싸우니까
경찰들이 어디 경찰서 수사과 조사계 누구라고 전화 번호 기록하여 놓고
몇년 몇칠 여기에서 어떤 색깔 무슨 차와 어떤 색깔 무슨 차와 사고를 냈습니다.
그것을 목격한 사람은 후사를 할터이오니
신고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여러분들이 자주 목격을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하지 않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부르고 시간 낭비한다고 생각해서
손해가 날 까봐 신고들을 잘 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즉 주님에게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즉 내게 한 것이다 라고
우리 주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가 곧 우리 주님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갖는 것은 주님에게 관심 갖는 것과 같이
우리는 생각을 하고 그 사람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을 기쁘게 받으실 줄 믿습니다.
롬15장 1절 2절에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덕을 세우도록 말하고 있습니다.
지금 믿음이 강한 자는 마땅히 믿음이 연약한 자의 약점을 대신 담당하라고
그리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말고 그것을 감당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내가 십자가를 짊어지고 다른 사람의 약점을 대신 감당해 주는 것은
로마서를 이룬 사람들이라고 로마서 16장에 사람의 명단이 쭉 씌여져 있는데
바로 앞장 15장의 제일 먼저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약점을 감당하라고
말을 하고 있는 이런 바울의 관심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나만 아니라 옆에 약한 자를 더 관심을 갖고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은 정말로 귀한 일인 줄을 알아야 됩니다.
모세라고 하는 사람은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조금 가다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했는데
하나님이 특별히 출애굽기 32장에 돌판을 깨뜨리는 사건이 생겨서
금송아지 만든 이유로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동행하시지 않겠다고 하실 때
모세가 여러 번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해서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겠다는
그러한 약속을 받아낼 때가 있습니다.
자기가 죄인인양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계속해서 기도하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올바르게 인도하여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한 장본인이 모세였듯이
우리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그러한 사람이 되려고 하면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고 관심을 갖고 올바른 길로 잘 인도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 어떻게 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자가 될 것인지
2절 3절입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은
두 번째는 열심보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바울은 그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증거한다.
그러면서 너희가 이스라엘이 하나님에 대해서 열심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열심이냐 하면 율법을 지키는 열심입니다.
율법은 아무리 지키려고 해도 다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한 마디로 말하면 죄인을 만드는 법으로 다 지키라고 못하는 법인데도
율법을 다 지키려고 하는 열심은 있으나 지식을 쫓은 것은 아니다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의 지식은 우리 주님을 아는 지식을 말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는가에 그 올바른 지식을 쫓은 것이 아니라
열심만 갖고 있다 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3절에 어떻게 하느냐 하면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이 하나님의 의라고 하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는 것은 모르고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즉 자기만 잘 되어서 인정받으려고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치 아니했다 라고 3절 하반부에 설명을 합니다.
믿음으로 인도하는 그 그리스도의 말씀이 곧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이 하나님의 의다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는 의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대신 자기가 다 감당을 하시고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가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절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4절에 설명하기를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다.
우리 인간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이루지 못한 것을 우리 주님이 이룬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열심보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된다는
바울의 이 마음 주님의 이 마음을 우리가 이해를 해야 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된다고 자꾸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어서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면 뭘 얼마나 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면 뭘 못합니다.
실상은 애기 수준 같이 조금 해 놓고 쳐다 봐요.
인정해 주라고 조금 해 놓고 또 쳐다봐요.
인정해 주라고요. 우리가 그러한 수준이거든요.
그래서 그러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다 하신 것을 내가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우리가 해야 직성이 풀리잖아요.
그런데 믿음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하신 것을 믿어드리는 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지금 구속의 역사는 다 이루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무엇만 하면 됩니까?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느 때 믿어지던 가요. 내 끝이 나타날 때 믿어집니다.
우리 끝이 언제 나타나든가요.
내가 할 수 없는 지경에 들어가봐야 거기에 간 자는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우리는 보통 내가 하려고 무척 바쁩니다.
그런데 내가 하려는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느냐 하면 보상심리가 들어 있어요.
그것 안 주면 하나님도 빰을 맞아요.
그래서 내가 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다 해져 있는 것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이 내가 해야만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열심보다는 하나님이 어떻게 의도하신가를 내가 이루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열심히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의도하 데로 하는 열심히 되어야지
내가 무엇인가를 인정받으려고 열심히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지금 현재 3절에 다 걸려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절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열심보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빌립보 3장에 해답이 있어요.
빌립도 3장 7절 8절 9절에 바울이 그렇게 말을 합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그러면서 바울은 13절 14절에 그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그렇게 말합니다.
열심보다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이루려고 모든 조건을
다 배설물로 여겨 버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실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된다고 하는 것을
여기에다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열심보다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리아라고 하는 사람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될 것이라고 말할 때
마리아는 주의 개집종이오니 알아서 하시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처녀가 임신을 하면 전부 다 죽이게 됩니다. 그러나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그대로 이루시려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데
도구로 사용되어 져서 하나님의 받으실 만한 사람 마리아가 된 것입니다.
그 남편도 요셉도 가만히 끊고자 했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임마누엘대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온다고 하니까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이 마리아와 이 요셉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데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그대로 이루는 중요한 역할을 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그러한 사람이 되었듯이
우리도 마찬가지 내가 무엇인가를 열심히 해서 인정받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이루어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로마서 10장 9절 10절입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은
세 번째는 예수를 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절에 보면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가 네 마음에 누가 하늘로 올라가겠느냐
즉 메시야를 찾으려고 즉 구원받으려고 하늘로 올라가서
메시야를 끌려 내려올 필요가 있느냐 아니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음부에 내려가서 그 분을 끌려 올려가지고 구원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바로 옆에 있다는 것입니다.
8절 보세요,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말씀이 바로 가까이 있다 즉 주님이 바로 가까이 있는데
우리 주님은 믿지 않고 열심으로 찾아다니고
열심으로 봉사한다고 열심으로 일한다고 믿음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봉사한다고 다 믿음이 아니고요 은사를 한다고 다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나타나는 현상일 뿐이고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인가를 가르쳐 주려고
우리에게 그렇게 보여 주시고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믿음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은사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봉사 많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되느냐 하면은 예수를 주로 믿고 입에서 시인을 해야 됩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얼마나 착한 사람이 많은 데요.
믿지 않는 사람도 무지 무지하게 착한 사람이 많습니다.
믿지않고 아무리 봉사를 많이하고 병을 고쳐주었어도 안 됩니다.
우리 입술에서 무엇이 자꾸 나와야 되는 거죠? 예수가 나와야 된다는 거죠.
믿지 않는 사람의 입술에서 무엇이 자꾸 나오는 거죠?
세상이 자꾸 나오고 자꾸 다른 것 즉 자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는 우리의 입에서 우리 주님을 시인하라는 것이예요.
이것이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라는 거죠.
그래서 9절에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주로 시인하면
이 말은 주인으로 시인한다는 것입니다. 주란 말은 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누구라고요? 예수라고요.
이 사람을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에수 믿지 않은 사람의 주인은 세상이고 물질이고 명예가 되겠죠.
그것이 주인이요. 마귀가 주인이고요.
우리 주인은 그것이 아니예요? 주인은 예수님이세요.
자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입니다.
나 대신에 그 분이 죽으신 것을 믿으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이죠.
그래서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열심은 자꾸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자꾸 쫓아 다니는 것이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즉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란 것입니다.
6절 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무엇하러 올라가느냐는 것입니다. 무엇하러 내려가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데 왜 왔다 갔다 하느냐는 것입니다.
무엇을 찾아서 열심히 하는데 실상은 그것은 아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장 30절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우리에게 무엇이 되느냐 하면은
우리에게 지혜가 되신 것이예요.
미련한 우리에게 지혜가 되신 거예요.
불의한 우리에게 의로움이 되신 것입니다.
죄 많은 우리에게 거룩함이 되셨고
멸망받을 수 밖 에 없는 우리에게 구속함이 되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이 예수님을 우리의 주인으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우물가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이 자신이 생명수라고 하는 것을 말씀하기 전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이 있다고 그러니까 그 여자가 무엇이라고 그럽니까?
나 그 물 좀 마시고 싶다고 그러잖아요?
나중에 내가 그다라고 이야기 할 때 이 사마리아 여자가 어떻게 하든가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무엇이라고 해요?
와 보라고 이야기를 해요. 입으로 시인을 해요.
그 사마리아 여인은 어디서 깨닫았어요?
지금 여섯 번째 남편하고 살고 있는데 그 사람은 진짜 남편이 아니고
예수님이 내가 일곱 번째로 진짜 남편이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일곱 번째 남편은 완전한 남편이다 그러한 뜻 이예요.
내가 진짜 네 남편이라고 할 때 사마리아 여인이 거기서 깨달았어요.
그렇습니다. 당신이 나의 주인이군요.
그리고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진정으로 우리 주님을 발견해야 되요.
무엇으로 발견해야 되요?
우리의 마음으로 주인으로 발견을 해야 되는 것이예요.
그래서 우리는 입으로 시인을 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 할 때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그러한 신앙생활을 해 가야 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하느냐 하면은
첫 번째는 타인에게 관심갖고 올바르게 인도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사람이 되어야 됩니다.
두 번째는 열심보다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어야 됩니다.
세 번째는 예수를 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해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자가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