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연중 제25주간 수요일 강론>(2023. 9. 27. 수)(루카 9,1-6)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셨다. 그리고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고 보내시며,
그들에게 이르셨다.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옷도 지니지 마라.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사람들이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에
그들에게 보이는 증거로 너희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제자들은 떠나가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어디에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루카 9,1-6).”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은,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하는 이들이
지켜야 할 ‘선교활동 지침’인데, 넓은 뜻으로 생각하면
모든 신앙인들이 지켜야 할 ‘신앙생활 지침’이기도 합니다.
신앙인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삶으로 신앙과 복음을 증언하는 선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라는 말씀에 대해서,
이런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지팡이, 여행 보따리, 빵, 돈, 여벌옷 등은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으니 가져가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 아니면 가져가면
안 되는 것들이기 때문에 가져가지 말라고 하신 것일까?”
<‘없어도 괜찮은 것’과 ‘있으면 안 되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것과 가지고 가면 안 되는 것도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이 ‘권고’가 아니라, ‘명령’이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명령’이기 때문에,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다.’,
또는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가 아니라, “가지고 가면
안 되는 것들이니 가지고 가지 마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을 가져가는 것은 ‘악한 일’이라는 뜻인가?”
예수님의 명령을 거스르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악한 일이고,
아버지 하느님의 자비와 보호를 믿지 못하고서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도 악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그런 것들은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신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시니
가져가지 않아도 괜찮다.”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시니 가져가면 안 된다.”가 됩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을 잘 받는 방법은,
아버지께서 주시는 그것만 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만일에 조금이라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이 아닌 것들을
찾는다면, 그것은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것이고,
주시는 것들을 안 받으려고 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혹시라도, “뭐가 이렇게 까다롭고 엄격하냐?” 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신앙이란, 또 신앙생활이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을 모시고 섬기는 자리에는 아버지 하느님만
계셔야 합니다.
그 어떤 것도 그 자리에 끼어들면 안 됩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을 받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인은 오직 그것만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은,
뒤의 12장에 있는 다음 말씀에 곧바로 연결됩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고 찾지 마라.
염려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너희의 아버지께서는 이것들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오히려 너희는 그분의 나라를 찾아라. 그러면 이것들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루카 12,29-31).”
이 말씀에서 ‘이 세상 다른 민족들’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는 것은 믿음 없는 자들이 하는 일이다.
아버지 하느님을 믿는다면 먹고사는 일을 걱정하지 마라.”가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런데 “걱정하지 마라.”가 “노동하지 마라.”는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지시합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2).”
물론 ‘복음 선포 활동’이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노동’은
아닌데, 마태오복음을 보면,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마태 10,10).” 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
선교활동이 생계를 위한 노동은 아니지만 ‘하느님을 위한 일’이고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하느님께서 당신의 일꾼들을 먹이신다는 것입니다.
넓은 뜻으로, 선교사를 신앙인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가르침은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보호하시고,
보살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도 연결됩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카 8,14).”
여기서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을 ‘복음을 전하면서도’로
바꿔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면서도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걱정스러운 소식’이 되어버립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걱정스러운 소식’이나 전하라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신 것은 아닙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아버지께서 마련해 주시니 가져가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