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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을 통한 이혼
말끝마다 욕설을 퍼붓는 남편, 지나친 교육열로 빚어진 부부의 갈등, 종교에 빠져 가정을 소홀히 한 아내… 이런저런 일들을 법원이 이혼 사유로 인정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하게 된다. 이혼하려면 뭔가 심각한 사정이 있어야 하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연예인이고 주변 사람이고 들어 보면 죄다 ‘성격 차이’ 때문에 헤어진단다. 그럼 생각보다 쉽게 이혼할 수 있는 건가도 싶다.
뭐가 맞을까? 그 전에 혹시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 않은가? 판사가 뭔데 남의 집안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고 말이다. 다른 사람을 해치는 범죄라도 지었으면 모를까. 왜 개인 간 이별에까지 간섭하는지 고개가 삐딱해지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두 사람이 시작했던 결혼이니 끝낼 때도 협의로 마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하지만 둘 중 한쪽이 헤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억지로 함께 살기까지 강요할 수는 없지만, 그냥 두면 각종 기록에 ‘부부’로 남아있을 테니 정리하려면 공권력의 힘을 동원해야 한다. 이번 글에서는 재판을 통한 이혼의 풍경을 살펴볼 것이다.
그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오해하면 안 되는 것이 재판은 권리라는 사실이다. 그렇다. 모든 국민은 헌법과 법률로 정한 법관에 의해 법률에 따른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헌법 제27조 제1항).
재판이 권리라는 말은 다음과 같은 뜻을 담고 있다. A와 B 사이에 다툼이 있을 때 ‘민사소송’으로 누구 말이 옳은지 심판해 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사업을 벌이려는데 국가가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국가의 잘잘못은 없는지 ‘행정소송’으로 따져볼 수 있다. C가 D를 해쳤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이익을 얻었다. 나쁜 짓을 했다는 사실이 아무리 명백해도 ‘형사소송’을 거치지 않고는 C가 벌 받지 않는다.
그런데 법원은 어떻게 재판을 하는 걸까? 이혼을 허락해야 하는 건지 말아야 하는 건지, 판사가 어떻게 결정하느냐는 질문이다. 민사든 형사든 모든 재판은 크게 나눠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과 법률을 적용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먼저 있었던 사실을 정한다. 그래야 그다음 비로소 누가 옳은지를 따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이유로 법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다. 법대에 앉아 서류를 보고 있는 판사 입장에서 볼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받아들일 만큼 확실한 증거여야 한다.
계약서처럼 그 자체로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서류가 있으면 최상이다. 서로 주고받은 이메일, 문자 메시지, 카톡 등을 통해 있었던 일을 재구성할 수도 있다. CCTV에 찍힌 화면도 있을 수 있고, 객관적으로 어떤 일을 목격한 사람이 증인으로 한 얘기도 증거가 된다. 그 밖에 판사가 사건과 관련한 물건들을 직접 보고 조사해 증거로 쓰는 등 여러 가지 부수적인 방법들이 있다.
그렇게 확인한 사실이 법률의 어떤 부분에 해당하는지 살피는 것이 다음 차례다.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단계인데, 법원만이 가진 가장 강력한 권한이다. 이걸 이해하려면 먼저 국회에서 법을 만들 때 어떻게 만드는지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사람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방법은 참 여러 가지다. 발차기, 정권 찌르기, 뺨 때리기, 기타 등등 끝이 없다. 그런데 세상엔 별의별 일들이 다 일어나기 마련이라 법전에 다 적을 수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다. ‘폭행’이라는 한 단어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거꾸로 누군가의 어떤 행동이 ‘폭행’에 해당하는 것인지 판단할 필요가 생긴다. 그래야 폭행죄로 처벌할 수 있으니까. 직접 때리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위협적으로 주변의 벽을 쳤다거나 할 수 있다. 우리 법원은 이럴 때도 폭행죄라고 한다. 법전에 쓰인 폭행의 뜻을 넓게 해석하고 적용한 것이다.
그러니까 뉴스에서 이혼 사유로 인정했다고 했을 때, 그 뜻은 어떤 일이 법률에 정해진 사유에 해당한다고 법원이 판단했다는 것이다. 가족법은 재판으로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사유를 여섯 가지로 정해 놓았다. 앞서 폭행에 대해 설명한 것처럼 부부와 그 주변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수많은 일을 하나하나 법전에 적어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섯 가지가 어떤 것들인지 보자.
1. 배우자에게 부정(不貞)한 행위가 있었을 때,
2. 배우자가 악의(惡意)로 다른 일방을 유기(遺棄)한 때,
3. 배우자 또는 그 직계존속(시부모, 장인, 장모 등)으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4. 자기의 직계존속이 배우자로부터 심히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5. 배우자의 생사가 3년 이상 분명하지 않을 때,
6. 그 밖에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가 있을 때다.
부정한 행위, 부당한 대우, 중대한 사유… 한자어이기도 하고 그 뜻 자체가 모호한 것들이다. 무슨 뜻인지 정리를 법원이 해주기는 한다. 부정한 행위란 혼인한 이후에 부부 한쪽이 정조의무, 혹은 성적인 순결의무에 충실하지 않은 일체의 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성관계를 전제로 하는 간통보다 넓은 개념(대법원 1992. 11. 10. 92므68 판결)이라는 해석이다.
여전히 모호하기는 하지만 대충 무슨 뜻인지 알 듯도 싶다. 무엇보다 ‘간통보다 넓은 개념’ 그러니까 직접적인 성관계가 없더라도 부정한 행위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런 해석은 법원 중에서도 대법원이 최종적으로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판례’라는 것이 바로 이런 해석을 가리키는 것이고, 각급 법원에 제시하는 방향이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거기에 해당하는지 개별 법원에서 사안에 따라 판단한다.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후에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 나머지 요건들을 보자. ‘악의의 유기’란 정당한 이유 없이 상대방을 버려두는 것이다. 부부의 의무인 동거, 부양, 협조하지 않는 것, 가령 남편이 집을 나가 다른 여성과 살림을 차리는 것처럼 말이다(대법원 1998. 4. 10. 96므1434).
배우자나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란 요건에 눈길이 꽂힌다. 아내 입장이라면 시월드에서 시달렸던 경험을 떠올리기라도 하면서. 혹은 거꾸로 아내가 내 부모님에게 섭섭하게 했던 모습을 떠올릴 남편도 있겠다. 법원은 이를 ‘부당한 대우’를 결혼해서 살라고 강요하는 것이 가혹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배우자나 그 직계존속으로부터 폭행, 학대 또는 모욕을 당하는 때로 보았다(대법원 2004. 2. 27. 2003므1890).
폭행, 학대라는 단어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단순히 감정을 상하게 하는 정도로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결혼할 때 지참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불만을 품고 상처를 입을 정도로 아내를 구타하거나, 아내 아버지에게까지 찾아가 행패를 부렸다면 이혼할 만하다(대법원 1986. 5. 27. 86므14). 또 아내가 남편을 정신병자로 몰아 감금하려 하거나, 수업 중에 학생들 보는 앞에서 끌어내는 정도로 모욕을 줬다면 이에 해당한다(대법원 1985. 11. 26. 85므51). 하지만 부부싸움 중 술에 취해 몇 마디 욕설하거나 다치지 않을 정도의 폭행이 있었다는 정도로는 부족하다고 본다(대법원 1981. 10. 13. 80므9).
재판상 이혼 사유의 마지막은 더욱 막연하게 열려 있다. ‘혼인을 계속하기 어려운 중대한 사유’라니, 법을 만들 때 예상하지 못할 상황이 그만큼 많은 것이 결혼인 탓이리라. 법원은 혼인의 본질인 원만한 부부생활이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되어, 계속 함께하라고 하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는 것이라고 이를 설명한다(대법원 2005. 12. 23. 2005므1689).
이혼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아픈 말이 ‘한 방에서 숨을 쉬는 것조차 싫다’는 의뢰인의 고백인데, 그런 정도라고 보면 될 것이다. 흔히 이혼할 때마다 ‘성격 차이’라고 하는 이유가 법률상은 이 항목에 해당한다. 이혼 사유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쪽이 정신병을 심하게 앓는다면 어떨까? 부양이 의무이므로 원칙적으로 이혼 사유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그 때문에 가족 전체가 참을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면 헤어질 수도 있다(대법원 2004. 9. 13. 2004므740).
종교 문제로 갈등을 겪는 부부도 많다. 가사도 육아도 팽개치고 동거, 부양, 협조라는 부부로서의 의무도 져버렸다면 이혼하는 게 맞다(대법원 1996. 11. 15. 96므851).
경제적인 이유도 이혼 사유로 자주 등장한다. ‘계’와 같이 불안한 투자를 계속하는 바람에 가정 경제와 평화에 파탄을 일으켰다면 충분한 이혼 사유다(대법원 1966. 1. 31. 65므50). 주식이나 가상 화폐에 대한 지나친 투자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부부가 한때 사이가 나빠져 이혼하자며 위자료 명목으로 돈까지 주고받았다고 할지라도, 그 후 원만하게 살아왔다면,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재판상 이혼 사유는 안 된다(대법원 1990. 9. 25. 89므112).
성적 문제에 대한 갈등도 빼놓을 수 없는 사유다. 법원은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여러 사례를 종합해보면, 성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한 정도 혹은 일시적인 성 기능 장애만으로는, 부부가 함께 노력하고 전문적인 도움을 받으면 나아질 정도라면, 이혼이 안 된다고 한다(대법원 2009. 12. 24. 2009므2413). 이유 없이 잠자리를 거부하거나, 정상적인 성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불완전한 경우에는 헤어질 수 있다고 한다(대법원 2010. 7. 15. 2010므1140).
성생활에 관한 부분에서 재판상 이혼 사유에 대해 한 가지 팁을 찾을 수 있다. 위에 늘어놓은 이유 중 하나가 있으면 무조건 이혼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사정이 있고, 그걸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도 도저히 나아지지 않을 정도로 파탄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의문을 가져보자. 딱히 무슨 이유가 없더라도, 서로에 대한 감정이 차갑게 식었다면 헤어질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연예인이나 재벌 집안의 혼사에 사람들은 ‘세기의 결혼’이라며 눈길을 보낸다. 그런데 그보다 더 입방아에 오르는 건 그들이 이혼할 때다. 다투는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알기 어려운 생활상에 관한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하고, 특별해 보이지만 남녀 문제만큼은 별 다를 것 없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도 만든다. 그런 얘기 중에서도 유독 화제를 모으는 소재는 당당한(?) 불륜 아닐까 싶다. 배우자가 있지만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며,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이지만 어쩔 수 없었노라 고백하는 모습 말이다. 앞서 말한 이혼 사유 중 ‘부정행위’에 대한 내용이다.
가십거리로 딱인 데다 더구나 이런 사랑에 대한 얘기는 쉽게 끝나지도 않는다. 하고 싶어도 이혼할 수가 없어 가정법원에 드나드는 모습을 계속 세상에 내보인다. 그 이유는 우리 법 체제가 재판상 이혼에 자격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재판상 이혼 사유들은 어느 한쪽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성립한다. 외도를 하고, 집 나가 돌아오지 않고, 배우자를 함부로 대했다는 것. 그래서 우리 법은 그런 일을 당한 이, 그러니까 피해를 본 쪽이 이혼 소송을 제기하도록 하고 있다. 옛말에 ‘똥 싼 놈이 오히려 성낸다’고 하는데, 그런 부당한 꼴을 법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불륜을 저지른 쪽에서, 부정행위를 사유로 이혼 소송을 청구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부정행위뿐만 아니라 모든 재판상 이혼에 적용한다. 잘못한 쪽은 소송을 당하는 것이지, 큰소리치며 먼저 법원에 가자고 요구할 수 없다. 이걸 ‘유책주의’라 부른다.
반대로 ‘파탄주의’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파탄, 이미 끝장났다는 것이다. 누가 잘했건 잘못했건 뭐가 중요하냐는 관점이다. 부부로서 함께 살 수 없는 정도에 이르렀으면 이혼을 허락해줘야지 왜 국가가 막느냐는 반론이다. 5쌍 중 1쌍이 이혼할 정도로 이혼이 흔해진 시대. 가족, 혼인에 관한 세상의 인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는데 국가가 혼인을 강제할 이유가 없다는 것. 잘못한 일이 있다면 충분한 위자료를 물리면 되는 것이지 이혼 자체를 막을 일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한 번쯤 주변 사람들과 자신이 생각하는 근거를 가지고 토론해봐도 좋은 소재가 아닐까 싶다. 다만 아직 우리 대법원은 유책주의를 취하고 있다. 우선 잘못한 쪽이 법원에 사건을 들고 오는 자체가 혼인이 가지고 있는 도덕성에 맞지 않다고 본다. 잘못한 쪽이 소송 자체를 제기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혼을 허락해주지는 않는다. 어느 한쪽이 결혼으로 내조만 했을 경우 입게 될 불이익도 고려한다. 혼인 생활에 모든 걸 걸었는데, 잘못도 없이 이혼을 당하면 피해를 감당할 수 없고, 쫓겨나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남녀 차별이 줄어들었고, 여성의 사회적 · 경제적 지위가 올라가긴 했지만, 아직은 양성평등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자녀 양육으로 여성의 부담이 여전히 더 큰 것도 현실이다. 게다가 협의 이혼으로 헤어지는 것은 여전히 가능하기 때문에 굳이 법원이 나서 잘못한 쪽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2015. 9. 15. 2013므568).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에는 ‘아직까지’라는 단서가 붙는다. 법은 살아 움직인다. 국회의원들도 하는 일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들은 늘 법을 고치고 새롭게 만든다. 설령 법은 그대로라도 대법원이 그 뜻에 대한 해석을 바꿀 수 있다. 기존에 내놓았던 입장과 다르게 판례를 변경하는 것이다.
대법원은 대법원장을 포함해 모두 14명의 대법관으로 이뤄져 있다. 일반적인 사건들은 3명의 대법관이 하나의 부서로 판결을 내린다. 하지만 기존의 법 해석을 바꾸거나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을 다룰 때는 14명 모두 모인 전원합의체에서 판결을 내린다. 가령, 세월호 사건이나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 등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되었다.
앞서 소개한 대법원의 입장 역시 전원합의체에서 정한 것이다. 하지만 유책주의와 파탄주의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언제 바뀔지 모른다. 게다가 각 가정법원에서는 파탄주의에 가깝게 운영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민사소송과 가사소송은 아무래도 다르다. 법대로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가능하면 정신적인 고통을 덜 겪는 쪽을 ‘정의’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판사도 재판을 진행하면서 꼭 법대로 결론을 내려 하지 않는다. 당사자들끼리의 협의로 끝낼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과정에서 사실상 파탄주의에 따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다른 종류의 재판이라면 잘못된 진행이지만, 가정법원에서는 조금 다르다.
사실, 대법원도 예외를 두고 있기는 하다.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이미 오래전 파탄에 이르러 각자의 삶을 살고 있을 때다. 딴 집에서 살아 온 지 수십 년이라면 양쪽 다 동거, 부양, 협조와는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다. 물론 처음에는 어느 한쪽 잘못이 더 클 수 있겠지만, 긴 시간이 흐르다 보면 누구 때문에 잘못했는지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대법원 2009. 12. 24. 2009므2130)?
법원 입장에서 누가 더 잘못했는지 따지기 어려울 때가 있다. 누가 먼저 시작했든 양쪽 다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일 수 있다. 남편의 냉대와 경제적 무관심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아내도 남편의 직장에 찾아가 소란을 피우고 가출까지 했다면, 결국 둘 다 잘못한 것이다. 게다가 상대방이 잘못했다면서 각자 이혼까지 청구하고 있다면, 어느 쪽 손을 들어 이혼을 허락하든 상관없다고 본다(대법원 1987. 12. 8. 87므44).
또한 누가 봐도 더 이상 부부로 살기 원하지 않는다는 게 명백한데, 단지 오기나 보복하고 싶은 마음에 이혼해주지 않는다면 역시 예외적으로 잘못한 쪽이 이혼 청구를 하더라도 받아준다. 이를테면 남편이 다른 여자들을 만나고, 술에 취해 폭행까지 휘둘렀다. 그러면서 부부로서의 생활은 사실상 끝이 났다. 남편의 잘못을 찾아내 고소하고 형사처벌까지 받게 했지만, 아내는 정작 이혼은 해주지 않는다. 끝내 남편 명의 재산까지 빼앗고 신용불량자로 만들었다면, 그 정도라면 남편이 이혼을 요구해도 되지 않겠는가(대법원 2004. 2. 27. 2003므1890).
발행일 : 2018. 04. 24.
저자 양지열 법무법인 가율(대표 변호사), 시사평론가
사람이 사랑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 간의 여러 분쟁으로 이혼을 하거나 재산 다툼을 하고, 죽음으로 유언과 상속을 남기기까지 법은 사람과 평생을 함께 산다. 대중과 호흡하고 소통하는 데 능한 양지열 변호사는 높게만 보이는 가족법의 문턱을 다양한 사례와 솔루션을 통해 낮추어, 독자들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고자 한다. 지은 책으로 〈이야기 민법〉, 〈이야기 형법〉, 〈법은 만인에게 평등할까〉, 〈그림 읽는 변호사〉, 〈헌법 다시 읽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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