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일관계의 현황과 전망 :
정상회담을 둘러싼 움직임과 납치문제를 중심으로
윤석정 인도태평양연구부 연구교수
발행일 2024-07-19
1. 문제 제기
2. 북.일 정상회담의 추진 및 상호 접근의 역학
3. 납치 문제의 현황
4. 함의 및 정책적 고려사항
< 요약>
1. 문제 제기
작년과 올해에 걸쳐 일본과 북한 사이에서 정상회담 개최를 두고 움직임이 일어났다. 양국은 납치 문제, 핵·미사일 등 정상회담의 의제를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접촉의 중단과 재개를 반복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본고는 정상회담의 개최를 둘러싼 일련의 움직임을 중심으로 북·일 관계의 현황을 살펴보고 향후를 전망한다. 6월 19일 푸틴의 방북을 계기로 북·러 관계가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면서 북·일 관계가 진전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 중론이지만, 그간 있었던 북·일 간의 접촉 과정은 분석이 필요하다. 더불어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 및 납치 피해자 가족연락회(이하 가족회)의 입장을 살펴볼 것이다. 이 같은 분석을 토대로 한국 정부의 대외 정책에 대한 함의 및 정책적 고려사항을 도출하겠다.
2. 북.일 정상회담의 추진 및 상호 접근의 역학
일본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는 2002년의 북·일 평양선언에 입각하여, 납치·핵·미사일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여 북한과의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것이다. 납치 문제는 평양 선언에서 언급한 ‘일본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관한 현안 문제’에 들어가 있는데, 북한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이후 이 문제는 북·일 관계에서 일본 국민들의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의제가 되었다. 따라서 일본에게 납치 문제는 문제 해결을 위해 정상회담을 비롯해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게 하는 동기가 되고 있다.
일본의 기시다 정권 또한 납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북한과의 정상회담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데, 기시다 정권은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납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활로라고 보고 있다. 또한 기시다 정권에게 납치 문제 및 북·일 관계는 내각의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한 돌파구가 될 수 있으며, 납치 피해자 가족들이 고령화되면서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국내적 압력이 고조되고 있는 것 또한 기시다 정권이 납치 문제에 한층 더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이 되고 있다.
기시다 정권에 들어와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를 ‘시간적 제약이 있는 인권문제’로 규정하며 북·일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한바, 이는 일본 정부가 납치 문제와 핵·미사일 문제를 분리해서 보고 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다. 이는 곧 기시다 정권의 대북 접근은 일본 정부가 선(先) 납치 문제 해결-후(後) 핵·미사일 문제라는 단계적 접근을 도입했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는데,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먼저 납치 문제의 진전을 꾀하고 그 다음 단계로 한·미·일 공조 아래 핵·미사일 문제를 움직여 평양 선언에 입각한 포괄적 해결을 단계적으로 실현해나가는 방식을 뜻한다. 북·러 ‘포괄적 전략 동반자 협정’이 체결되면서 현재로서는 일본의 대북 접근이 성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극히 낮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국내 정치적 이유 및 피해자 단체의 압력에 직면하여 수면 하에서 납치 문제 관련 움직임을 지속할 것이다.
북한은 일본인 납치 문제가 이미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납치 문제에 대한 입장차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일본에게 접근한 이유는 한·미·일 공조 체계에 균열을 가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가운데 일본이 납치 문제를 가지고 북한에게 접근하자 이에 적절히 호응함으로써 한·미·일 공조의 빈틈이 어디인지, 공조가 얼마나 탄탄한지 파악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푸틴의 방북 이후 북한이 러시아와의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고 권위주의 진영 형성에 집중하고 있는 바, 북한이 일본에게 접근할 동기가 한층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북한에게 북·미 대화의 사전 작업을 위해 일본과의 대화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내년에 미국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북·미 협상이 재개될 수 있는데, 이때를 대비해서 일본이 1기 트럼프 정권 때처럼 북·미 협상의 진전을 견제하지 않도록 북·일 관계를 개선해둘 필요가 있다.
3. 납치 문제의 현황
북한은 납치 피해자가 총 13명이며 그 중에 생존자는 5명이고 나머지 8명은 사망했으며, 이것으로 진상이 규명되어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일본은 납치 피해자 8명이 사망했다는 북한 측의 주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보고 있다. 일본 정부가 보기에 북한이 8명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북한의 공작 및 테러 활동과 밀접히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제기하는 납치 문제의 해결이란 귀국한 생존자 5명을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의 안전 확보 및 즉시 귀국을 뜻한다. 이를 고려하면 일본 정부의 1차적인 목표는 납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주장하는 북한이 재조사로 입장을 변경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재조사 및 조사 결과에 대한 검증 과정까지 고려하면 일본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는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한편 가족회는 납치 생존자 전원이 일괄 귀국하면 대북 인도적 지원 및 일본의 대북 독자 제재 해제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새로운 운동 방침을 제시했다. 새로운 방침이 의도하는 바는 대북 독자 제재 해제를 교섭 카드로 활용하여 납치 문제 관련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복잡성 및 북·일 간의 입장차, 북·러 밀착의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가족회의 새로운 방침이 전환점이 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인다.
가족회가 제시한 새로운 방침의 중요성은 납치 문제를 둘러싼 국내 정치적 의미에 있다. 즉, 가족회의 활동은 앞으로도 일본 정부가 납치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만드는 국내 정치적 압력이 지속 존재할 것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4. 함의 및 정책적 고려사항
푸틴이 북한을 방문한 이후 민주주의 국가와 권위주의 국가 간의 진영화가 가속되고 있지만, 북·일 양국에게 상대방에 대한 접근 및 접촉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북·일 관계는 일본에게는 납치 문제, 북한에게는 한·미·일 공조 흔들기 및 북·미 대화의 사전 작업과 같은 전술적 차원의 의미를 여전히 가지고 있다. 따라서 북·일 관계는 상호 접촉과 접근을 정책 옵션으로 남겨두고 시기를 저울질하는 형국이 이어질 것인바, 관련 정보를 지속 수집하고 동향을 추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일본의 내부 사정을 보면 납치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기존 입장, 피해자의 안전 확보·일괄 귀국 주장은 지속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대북 정책에서 계속해서 납치 문제는 높은 정책적 우선순위에 있을 것이다.
일본의 선(先) 납치 문제 해결-후(後) 핵·미사일 문제 접근에 대해 한국의 국익 관점에서 관여와 조정이 필요하다. 한국의 국익 차원에서 주목을 해야 할 부분은 일본의 대북 접근 시도가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안정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될지 여부이다. 따라서 납치 문제에 우선 중점을 두는 일본의 대북 정책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이라는 전략적 시야 속에서 진행되도록 관여와 정책 조정이 긴요하다. 더불어 한국과 일본이 납북자 문제에서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납북자 문제 해결을 국정 과제로 명시하는 등 이 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는 바, 이에 관한 국제 협력의 파트너로서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납치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일본과의 협력을 검토할 가치가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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