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 아라리
류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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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지/ 뱃사공아/ 배를 좀 건네주게
젊은 아낙이 고단한 밭일을 하며 처연한 가락으로 불렀을 정선아리랑.
산 첩첩 물 망망 강원도 심심산골로 시집간 여인이 출구 없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읊조리던 가락이
구전으로 구전으로 내려오는 노래입니다.
강원도 아리랑의 버전이 500가지 갈래가 넘는다 하니 실로 놀라울 따름입니다. 가히 인류문화유산으로 등
재된다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산 넘고 재 넘어 버선발에 물집이 잡히도록 걷고 걸어 수십 리 산길을 나와 버스나 기차에 몸을 싣지 않고는
험한 산길, 태산준령으로 가로막힌 코딱지만 한 산촌을 벗어날 길이 없었으니 살아온 날도 까마득하고 살아갈 날도 까마득했을,
아라리 아라리 정선 아리리였을 테지요.
비탈진 산자락을 나무뿌리 파내고 풀뿌리 뜯어내며 손바닥에 피멍이 들고 터지길 거듭하다보면 못이 박히고
손가락이 갈퀴가 되도록 화전을 일구어 고작 강냉이나 감자를 몇 가마니 얻어먹는 것이 호구지책이었으니
어찌 한스럽지 않았을까요. 그마저도 날이 가물면 초근 목피를 못 면했을 테고요.
강원도 아리랑을 듣다 보면 목석같은 사내라도 가슴이 먹먹해지고 그 팍팍했을 아낙들의 처지가 전이되어
끝없이 눈물이 샘솟곤 합니다.
또 다른 버전의 정선아리랑은 남편을 찾아 허위단심 찾아갔지만 보고도 본체만체 돈담무심, 출가를 결심하는
여인의 사연을 담고 있습니다. 강원도 아리랑은 5음 음계 중 가장 높은 음으로 시작하여 차차 낮아지는 형식으로 느리고 구슬픈 느낌을 줍니다. 이러한 장단은 판소리를 비롯해 각 지방의 무속음악에 흔히 쓰이는 곡조입니다.
강원도/ 금강산 /일만 이 천봉 /팔만 구 암자
유점사/ 법당 뒤에/ 칠성단 도도 못고
팔자에 없는/ 아들딸 나달라고
정성을 말고……
타관객지 /외로이 /난사람 괄시를 마라.
……………………
눈앞에/ 왼갖 것이 /모두 시름 뿐이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살아서는 뙈기 밭농사의 노예로 말목이 묶여 벗어날수 없는 처지의 육체적 고초, 아들을 못 낳는다는 시부모의
구박에 정신적 복달림, 남편의 외도…….
강원도로 시집간 산촌 아낙들의 울음과 한탄에 가락이 붙고 아리랑, 아라리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 되어
함께 듣다보면 우리말을 모르는 외국인들도 손수건을 꺼내어 눈물을 닦는다고 합니다.
우리의 옛 여인들의 삶은 왜 이리도 슬프기만 한 걸까요. 하지만 슬픔에도 흥을 담을 줄 아는 우리 민족 정서
는 참으로 융융할 따름입니다.
나를 바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나라
/가 아닌.... 발병 난다/는, 역설의.... 정선읍에/ 물레방
아는/ 사시장철 물을 안고/ 뱅글뱅글 도는데 /우리 집에
/ 서방님은 날 안고/ 돌 줄을 왜 모르나..는 비유적 애원.
우리는 지금 내전양상의 분열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보갚음과 앙갚음이 아닌 역지사지의
화해의 정신이 반드시 필요한 때입니다.
못난 조상들이 편을 갈라 싸우다 일본에 나라를 내주고 식민지를 살아내야 했던
여인들의 가시밭길 같은 삶, 6·25 동란으로 남부여대, 피난길에 올라야 했던
이 땅의 어머니들의, 어린 자식들을 건사하고자 노심초사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다시 이 땅에 재연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