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와 바꾼 장어구이
박래여
낮에 딴 오이 한 봉지를 들고 저녁 모임에 갔다. 음식점 주인에게 무공해니 그냥 씻어 드시라고 드렸다. 한 달 만에 만난 다섯 사람, 한 팀은 전원주택 짓는다고 까맣게 탔고, 한 사람은 배가 더 나왔고, 우리 부부는 그냥 평범했다. ‘도 다 닦았나?’로 시작한 인사말은 웃음을 자아냈다. ‘도를 똥구녕으로 닦았다.’는 남편의 대답에 박장대소했다.
유월의 계주는 우리였다. 농부가 3주 동안 명상센터에 들어가는 바람에 모임이 늦었다. 두 사람은 돈에 대한 욕심이 많아서 아직도 돈 벌 궁리를 하는데. 우리는 돈도 없으면서 유유자적 사는 것이 그들 눈에는 특이해 보이나 보다. 이 모임은 술이 고픈 모임이다. 세 남자가 소주와 맥주를 열병이 넘도록 마신다. ‘요즘 모임에도 술 마시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많이 드시네요.’ 단골 음식점 사장님도 웃는다.
세 남자는 죽마고우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아직 몸이 건강하다는 뜻이다. 젊어서는 소주 대병이 두 세병 비어야 모임 자리를 파했었다. 세 집에서 한 달에 한 번 돌아가며 모임을 주선했고, 밤새도록 먹어라 마셔라. 이야기는 청산유수였다. 특이한 것은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수다스럽다는 뜻이다. 다른 점은 여자들은 일상 이야기가 주류라면 남자들은 정치사회면에 사업에 관한 이야기가 주종을 이룬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현 정부에 비판적인 것보다 옹호 쪽이고, 한 사람은 비판적이라 따따부따할 수밖에 없다.
신기한 것은 정치적 견해가 다른 두 남자가 찰떡궁합이라는 것이다. 서로를 신뢰하고 믿는다. 좋은 친구다. 여자 셋 중에 한 사람이 빠져 둘만 마주보는데 나는 명품에도 멋에도 골프에도 관심이 없으니 대화가 풍요로울 수가 없다. 수저질만 열심히 하게 된다. 나는 저녁 모임이 싫다. 왜냐면 외식을 하면 과식을 하게 되고 몸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적당히 먹어야지. 마음뿐이다. 긴 시간 남자 셋은 시간에 구애 안 받고 따따부따 일삼고 술병만 쌓이고 나는 안주를 주워 먹다보면 과식한다. 요즘은 음식점 문 닫는 시간이 빨라져서 고마울 따름이다.
시간은 흘러가고 밥은 나중에 달라며 술만 청하는 세 남자다. 남자들 식탁에 술안주가 부실해졌다. 홍어삼합을 하나 더 시킬까. 고민하는데 문이 열린다. 사장님이 푸짐하게, 맛깔스럽게 구운 장어 한 접시를 갖다 준다. 맛있는 오이를 줘서 고맙단다. 시장에서 산 것과 맛이 다르단다. 마침 목이 말랐던 참인데 오이 하나 먹고 나니 갈증이 가시더란다. ‘오이가 진짜 맛있어요. 그런 오이 처음 먹어봤어요.’ 낮에 딴 것이니 싱싱해서 맛이 다를 것이고, 거름 외에 물만 줬으니 무공해라 맛이 다를 것이다. 오이 농사로 생업을 이어가는 농부라면 오이도 병충해 방지를 할 수밖에 없다. 약을 치고 비료를 내야 오이가 많이 달리고 잘 자란다. 자급자족 하는 우리 집 오이와 비교할 수 없지 않을까.
새삼스럽게 오가는 정을 생각한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도 있다. 오이 대여섯 포기 심은 것이 효자노릇을 한다. 오이지 가득 담가놓고 오이무침, 오이냉국, 오이 물 만들어놓고 먹어도 수시로 남에게 나눠 줄 것이 있으니 아니 고마우랴. 특정한 사람에게 주기보다 그날 운수 따라 만나는 사람에게 주는데. 모두 오이가 아삭아삭하고 향이 다르다며 맛있단다. 작은 것이라도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음식점에서 우리 팀은 항상 막차를 탄다.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나오니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차를 출발시키려는데 앞에서 갑자기 무섭게 경적이 울린다. 바로 앞에 역주행하는 차가 있다. ‘클 날 뻔 했네. 출발했으면 저 차랑 박치기 할 뻔 했네. 지나가던 운전자가 바로 알려줘서 망정이지.’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역주행 운전자도 모골이 송연해졌으리라. 비상등을 켜고 살살 뒷걸음 쳐서 제 선을 찾아간다. 모두 무사하기를. 오이 선물한 덕이려나. 내가 가져간 오이는 장어랑 바뀌고 다시 위험을 감지해 준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