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65
분명 그건 아니다. 《내일》같은 소설을 또 쓰고 싶다. 완성했을 때는 정말이지 흥분했었다. 힘들었던 만큼 성취감은 더할 나위 없이 컸다. 스스로 훌륭하다 생각했다.
다음 작품을 쓸 의사는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하면 될지 알 수 없다. 가령 다시 열정을 쏟아 붓는다고 해도 결과가 두렵다.
만약에 다음 작품도 참담한 결과로 끝난다면 자신은 본격적으로 잠수해 버릴 것 같다. 남 탓을 하겠지. 나는 그런 인간이다. 마음이 넓지 않다.
아이코는 컴퓨터 전원을 껐다. 지금은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았다.
이라부의 말대로 소설은 당분간 쉬자. 반년 정도라면 자리는 남아있을 것이다. 에세이나 기행문으로 적당히 때워도 될 것 같다.
책상에 엎드렸다. 울고 싶었다. 너무나 고독했다.
갑작스럽게 대담에 나가기로 되었다. 아이코가 ‘쓸 수 없다’고 다나카에게 연락하니 전부터 말이 있었던 대담기획으로 페이지를 메우기로 되었던 것이다.
사진 페이지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 좋다고 했다. 새 옷을 마련한 직후여서 옷 자랑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헤어스타일도 정했다. 잡지에 나가게 되면 여자 특유의 아드레날린이 온 몸에서 솟아난다.
상대는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젊은 여성 작가였다. 작품을 읽어보니 주니어소설을 조금 벗어난 정도의 연애소설이어서 안심했다. 이런 것도 팔린다는 사실에 화도 났지만.
“레이나라고 합니다” 호텔 객실에서 다나카의 소개를 받은 레이나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리광 섞인 혀 짧은 목소리였다.
“성씨는 어떻게 돼요?” 없다는 걸 알면서 물었다.
“이름 뿐이에요. 그 편이 기억하기 쉬울 것 같아서” 얌체 같은 필명이다. 땅딸막한데다 뚱뚱한 주제에. 차림새를 재빨리 훑어보니 에르메스 신 모델 정장을 입고 있다. 40만 엔은 할 것 같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멋진 옷이네요” 라고 하는 레이나. “뭐, 그쪽이야말로” 라고 응수한다. 잠시 상대방의 옷 칭찬을 주고받았다.
우선 룸서비스로 시킨 도시락을 먹으며 셋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아유, 다나카군은” 레이나가 다나카를 향해 끝없이 아양을 떨어댄다.
“호시야마 씨, 있잖아요. 요전번에 어떤 시사회에서 이 사람이 조는 거 있죠.”
어라, 난 초대받지도 못했는데. 다나카를 보니 어색한 미소를 짓는다. 다나카의 순위가 단번에 내려간다.
“레스토랑에서 와인도 골라주지 않지. 이런 남자, 문제 있는 거 맞죠?”
앞으로 다나카가 의뢰한 원고는 교정 마지막 날에 보내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