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 유년시절 부르던 노래다 강남의 제비들은 지금 어데쯤 오고있는지… 내일이 驚蟄이다 오늘 우리는 새 봄소식을 듣고싶어 山行을 南漢山城으로 정했다 이곳은 우리가 年中비교적 자주 오는 산행코스인데 올때마다 집합장소인 산성역 지하철의 깊이가 너무 깊어 원자탄이 터져도 안전하겠다고 한 마디씩 했다 그래서 필자는 궁금해서 도대체 깊이가 얼마일까 조사해보니 우리나라에서 제일 깊은 곳은 부산3호선 만덕역으로 80m(9층)이고 이곳 산성역은 53.93m(55m로 소개된 자료도 있음)로 두 번째이며 서울 지하철은 숭실대 45.5m 신금호 42.1m 이란다 약속시간이 되니 10명이 모였다 우리는 1번출구로 나와 52번 버스에 몸을 실고 九折羊腸 고개길을 넘어간다 고교시절 속리산 法主寺에 가던 말티고개보다는 덜해도 제법 경사가 심한 곳이다 버스밖 차창가 沿邊의 나무와 꽃들은 우릴보고 곧 몸단장 할테니 그때 봐요 수줍게 새봄이 움트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南門길은 협소하여 산책길이고 그 밑 신성턴널을 들어서니 공기가 완연히 다르다. 남한산성은 분지형태의 480m 고도의 산 꼭대기를 쌓아 산 전체가 성벽 구실을 하고 둘레가 12.7Km가 된단다. 이 城은 호국불교의 승려들이 築城하였으며 그들이 거주하기 위하여 당시 산성내에 10여개 이상의 사찰이 있었단다. 우리가 산행하는 것이 단순히 산책 목적만이 아니라 지역에 따라 한번에 다 알 수는 없지만 역사적 유적이나 전설을 조금씩 이해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지나치는 지역마다 소개하고자한다. 남한산성은 이미 초등학교 학생까지도 널리 알려져있는 병자호란 치욕의 역사 현장이다. 임진왜란은 7년동안 전쟁했는데 12월 강추위에 군량미 50일분의 식량을 가지고 싸웠으니 미국만화 Mickey Mouse에서 나오는 한 장면처럼 청나라는 쥐구멍 입구에서 들어간 쥐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형국이고 우리는 식량이 부족하여 45일만에 항복 했으니 이것은 전쟁이라고 볼수없다 우리가 탄 버스는 15여분만에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路 산성리 마을 로타리 종점에 도착했다. 남한산성의 산책코스는 너무 다양하여 등산객이 자기 형편과 능력(시간 거리 高低난이도)에 맞게 코스를 정할수 있어서 좋다. 오늘의 산행 코스는 이상기 부부가 개척한 이른바 이상기코스를 택했다 광주방면 반대편 도로로 행궁을 왼쪽에 끼고 수호장대 방향으로 언덕을 넘어 아스팔트 길을 따라 성곽을 시계방향으로 돌아 산성로타리에 다시 도착하기로 했다.점심식사 1시에 맞추어 정하다보니 대략 1시간정도 萬步내외 정도다 가파른 숨을 쉬며 언덕을 오르니 소나무가 울창하다 登山家라고 할 정도의 많은 산은 오르지 안했지만 이곳은 소나무가 많고 싱싱하며 이와 같이 군락지를 이룬 곳을 별로 보지 못했다 소나무가 자기 보호를 위하여 항균작용 소취작용 진정작용 스트레스 해소를 위하여 품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삼림욕을 하면서 산행하는 것은 여간 행운이 아니다 가다가 보니 왼쪽에 숭렬전이 보인다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 와서 잠을 자는데 백제 온조왕이 꿈에 나타나 주인 허락도 없이 성에 왔다고 꾸지람을 받고 그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제사를 드리는 사당을 지었단다 그런데 며칠후 다시 꿈에 온조가 나타나 혼자 있으니 너무 외롭다고 하여 병자호란 때 순직한 수어사 이서 장군을 같이 모셔 지금 두 분이 봉안 되었다.숭렬전을 지나 가파른 산등을 넘어서니 하얀 눈이 녹지않고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봄을 맞이하러 왔다 겨울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다 모처럼 뽀드득 뽀드득 눈 발자국 소리를 내며 아름다운 설경의 정취속에 황홀감을 느껻다 조금가니 ″아래어정 약수터″가 보인 남한산성의 특징은 물이 풍부하다는 것 이란다.성내 어느곳을 파더라도 물이 나와 필요하면 땅을 파면 되어 1760년대에 우물이 21개 연못이 45개까지 됐단다. 우리는 매번 간식을 하던 수어장대아래 휴식장소에서 막걸리와 과자와 계란을 먹고 다시 시계방향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을 지휘하고 관측을 위한 목적에서 지은 누각이다. 당초 5개를 지었다는데 지금은 하나만 남았다 성곽을 따라 내려가니 한눈에 들어오는 서울 경관은 정말 장관을 이루었다 우리가 젊은 시절 즐겨 운동하던 산 아래 골프장은 자취를 감추고 위례시의 새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 어느덧 北門에 도달하였다 이 門은 인조가 평복으로 청태종에게 황복하러 끌려가던 문이다. 송파 삼전도에 주둔한 청나라 군사들은 승리의 축하연에 이른바 三拜九叩頭禮를 갖추도록 강요하여 이마에 피를 흘리는데 왕을 마당에 꿀어 세우고 축하연이 끝날때 까지 야유와 목욕을 받아가며 구경하고 있어야 하는 인조의 심정은 어떻 했겠는가 역사책을 보면 해가 질려고 석양이 질 때 겨우 宮에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풀려나 송파나루를 울분과 찟어지는 가슴을 안고 나루배를 탓는데 백성들 조차 삿대질과 갖은 욕설을 해도 이를 감수해야만 했다고 한다.북문에서 내려와 오른쪽 방향으로 가면 기독교의 별 큰 지도자이신 故한경직 목사께서 생전에 은퇴후 26년간 생활하시던 곳이다 사치와 낭비, 무절제한 삶,청빈한 삶의 가르침이었다 한목사 사택에는 소박하고 검소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출입구에는 내집 개념의 주거처가 아닌 남의 집을 임시로 몸을 붙여 산다는 寓居處로 여기셨고 자신이 직접 쓰셨단다. 산성 버스정류장을 지나오면 왼편에 있는 세계유산센타 뒤편에 海公신익희 선생 동상이 있다. 선생은 광주시 초월읍 서하리에서 출생하여 이곳 남한산성 소학교에 입학하여 편도 10여Km를 걸어서 학교를 다니셨다고 한다. 광주시는 2001년 선생이 통학하던 도로길에 추모비를 세우고 그의 업적을 기리고 있다.필자는 고등학교시절 대전 원동초등학교 교정에서 조병옥 박사와 신익희 선생이 오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만사를 제치고 연설을 들으려고 방과후 운동장 맨 앞에 앉아 못살겠다 갈아보자 獅子吼하던 그 모습이 감수성이 많은 時期 여서인지 잘 지워지지 않는다. 주차장 근처에 성당과 천주교 순교성지가 있다 당시 남한산성에는 광주 유수의 관청이 이곳에 있으니 천주 박해 때 마다 신자들이 지방에서 이곳으로 끌려와 약 300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순교하였다 지금은 남한산성 천주교 순교성지로 많은 신자들이 성지순례지로 유명하다, 행궁 주차장 옆에 만해 한용운 시인의 기념관이 있는 줄 아는 사람이 그리 많지않다 그의 幽宅은 망우리에 모셔져 있고 이곳에 기념관이있다 이와같이 남한산성은 정치계 기독교 천주교 불교를 막론하고 훌륭하신 분들과 인연이 많다 작가 최인호가 ˝쓴 길없는 길˝을 읽어보면 고종황제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이강)도 독립운동을 하면서 남한산성에서 숨어 살었다고 한다 이곳은 서울 성남 하남 광주가 인접되어 자연적으로 천해의 요새로서 역사 문화가 숨쉬고 있으며 귀중한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의 유산이다 필자는 80년대 이 근처에 10여년간 생활한 덕에 관심이 많았고 남한산성의 역사를 살펴보면 애잔한 슬픔을 느낀다
점심식사는 산성주차장에서 9번 버스를 타고 납한산성 입구 향토음식집에서 한방 오리탕으로 모처럼 몸 보신하기로 했다 AI로 꺼림직 했지만 몸에 좋다는데 이유가 있을 수 없다 老親네들 수다도 많이 떨고 혹시 주책도 있었는지? 우리끼리니까 다 이해되고 용서되는 즐거운 하루였다
우리는 서로 친구 아인가
※ 지면상 설명 부족한것 양해바람니다
등산참여자: 한 현일 최 기한 임 승열 송 희경 송종흥 박 희성
박 찬 운 주 재원 정만수 송구헌 (10명)
다음등산일정 : 3월 7일(화요일) 10시30분 우면산(전철3호선남부터미날역)
3월 10일(금요일) 10시30분 안산(전철3호선 독립문역)
첫댓글 남한산성을 그렇게 여러번 방문해 봤지만 우리는 너무 무심해 산성 내 구서구석에 이렇게 많은 사연이 숨어 있는 줄 몰랐네요. 앞으로는 남한산성을 오를 때 좀더 숙연한 마음을 가지고 흘러간 역사를 반추하며 걸어야 할 것 같네요.우둔한 회원들을 조용히 일깨워 준 정만수 장군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글 중에 인조 대왕이 청나라 진영에서 온갖 모욕과 비아냥을 당했다는 장면을 읽을 때 문득 박 근혜 대통령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한 경직 목사님 같은 큰 인물이 절대로 필요한 이 시대를 생각하며 어느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납니다.
대형 교회를 시무하는 여러 목사님들이 문안 인사를 와서 "저희들에게 꼭 필요한 가르침을 주십시오"라고 하며 큰 기대를 갖고 기다렸더니 딱 한 말씀만 목사님들에게 주었는데 그 내용이 이렇습니다."목사님들 예수 똑바로 믿으세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오늘 산행기는 우리 역사와 인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정만수 친구가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고, 산성역에서 한회장께 내 생각을 전달하기도 했는데 역시 기대한 만치 알차고 유익한 내용의 산행기를 접하게 되었네요. 장문의 산행기를 신속히 올려준 친구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정만수장군이 아니고 정만수박사라고 해야 옳겠네요 , 나는 집안가사로 불참하였지만 너무나 자세하게 옮긴 산행기에 감격하였다오.
카톡방에서 한 회장이 올린 설경 보고 또 고산의 등산기록을 보고 노익장 아닌 설중매라 했어요. 그리고 석양의 노인일수록 가끔은 그런 유격훈련해야 해요. 내가 87년도 자동차 운전면허 소지자로서 자동차를 예시해요. 아무리 중고차라도 복잡한 시내의 청계천이나 남산만 서행하면 않되고 가끔은 고산도로나 고속고로를 주행해야 모든 노폐물을 날려 사동차의 성능을 높힐 수 있어요. 그런줄 알았으면 나도 집에 있는 알프스산 등산 장비 하고 갈수 있었는데...
정만수친구의 남한산성 역사 이야기 감사해요, 많은 내용들을 정리 수합한 노고 다시 감사드려요, 한편의 국사 교과서 같네요.
정 장군이 같 입대하여 비정규직으로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때 나는 이미 그의 지장과 덕장의 문무 겸비를 높히 평가하고그가 장차 백수회에서 큰 그릇이될 것임을 예견하여 한 회장께 정규직 승진을 품신하니 한 회장이 장고 끝에 내가 신원보증 하는 젓을 조건으로 정규직 기용했어요. 이제 한 회장도 이를 계기로 내 말을 잘 들어요. 이 기회 제안하는 바는 출신별로 금수저 은수저 구별말고 필기시험과 실기시험 다시 보아서 실력별로 신분구분해요. 이것이 문재인 시대정신에도 부합되요. 그리고 정 장군도 올챙이적 생각하여 비정규직의 권리신장에 앞장서요. 10년 비정규직인 사람 눈물 닦아주어요.
누구라 지목은 않지만 현 체제는 나만 못한 실력자도 자기 아버지 신분으로 정규직 된 사람도 있어요.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03.04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