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은 서해안 산골에 내려가 있다.
지금쯤 텃밭에는 많은 나무와 풀들이 싱싱하게 자랄 게다.
추운 겨울을 이겨낸 키 작은 풀들은 꽃을 피워서 씨앗이 영글고 있을 게다.
키 큰 나무들은 꽃을 피웠고, 지금도 피우고 있으며, 또 앞으로도 피울 게다.
내일 쯤 시골에 내려가야겠다.
이것저것 둘러볼 일도 있고, 일반산업단지조성으로 지방도로(606) 아래에 있는 내 논이 또 추가로 토지수용되어 변질되었을 게다. 손바닥만하게 줄어든 다랑이논.
이제는 쳐다보기도 싫다. 통로(출입구)를 막아서 산업단지 안의 도로를 에돌아야만이 내 논에 접근할 수 있도록 농로를 변경했기에.
서낭당 앞산 너머에 있는 어머니 아버지의 무덤에도 들러야겠다.
바로 곁에 있는 선조들의 무덤에도 절을 올려야겠다.
무덤 뒤편 꼭대기에 올라서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서해바다를 내려다보아야겠다. 외연도로 가는 길목의 섬들이 아스란히 보일 게다.
아버지 어머니의 합장 무덤 옆 가생이에는 수선화, 둥굴레, 약쑥 등이 많이도 올라와 있을 게다.
어쩌면 고사리 순이 억세어졌을까? 어린 고사리가 있으면 한 줌 꺾고 싶다.
나는 어쩔 수 없는 건달 농사꾼인가?
서울 송파구 잠실 23층 고층아파트 안에 화분 120개를 올려놓고는 화분-농사, 컵-농사를 짓는다.
햇볕이 들어오지 않는 아파트 구조, 살짝 열어제낀 유리창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 이런 것들이 부족한 탓으로 화목/화초의 성장세는 별로이다.
나는 늘 미안해 한다. 그저 수돗물이나 지나치게 자주 많이 부어준 탓으로 뿌리가 질식사하기도 하고...
오늘 확인하니 알로에 두 포기의 뿌리가 썩어서 능정거렸다.
뽑아낸 뒤 전정가위로 마구 잘라서 내다버렸다. 화가 나고...
내가 수돗물을 지나치게 많이 주었다는 뜻.
수돗물에는 독성-약품이 있어서 물을 하루 이틀 정도 가만히 놔둬서 독성을 가라앉혀야 하는데도 그냥 즉시로 주었더니만 뿌리가 결국에는 상한다.
속상하다. 지나치게 관심을 주면 식물은 죽게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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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꾸준히.
아내가 비 그친 뒤 화요일에나 시골 내려가자고 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었다.
시골에 조급하게 내려가야 할 이유는 없었기에.
내일(4월 20일) 시골 가야겠다는 생각을 접어야 했다.
낡은 자동차를 끌고 고속도로를 달리려면 늘 조심해야 한다.
날씨가 고약해서 도로가 미끄러운 때에는 차 운전을 하지 않는 게 상책.
내가 나이가 많고, 눈 시력이 아주 나쁘다면서 아내는 운전대를 나한테 넘겨주지 않는다.
아내의 눈 시력도 자꾸만 나빠지는데.
그저 느긋하게, 천천히, 교통규정을 지키면서 운전하는 게 최선의 방어운전이다.
날씨가 꾸물거리니까 예전 고향집에서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살던 때가 생각난다.
낡은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 낙수되면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는 빗소리, 비산되어 날리는 빗물.
모든 게 그냥 눅눅하고 축축했다. 조금은 쓸쓸하고, 허무하고.
비 내리는 날에는 할일이 없었다.
부엌에는 내 책상과 책꽂이가 있기에 나는 늘 부엌에서 일기 쓰고, 농업책을 보았다.
안방에서는 아흔 살을 오래 전에 넘긴 늙은 어머니가 쇼파 위에 앉아서 의미도 없는 TV 속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유난아. 저 텔레비젼에 나오는 사람이 지금 우리를 쳐다보니?'
묻었던 엄니. 그 당시에는 치매기가 진행 중이었다.
지방도로 606 뒤편 서낭당 뒷산.
2015년 2월 말에 어머니는 아흔일곱 살 설을 쇤 지 며칠 뒤에 먼 여행길을 홀로 떠나셨다.
1982년 6월에 세상 떠난 아버지의 무덤 곁을 조금 파서 합장했다.
나는 그참 처자식이 있는 서울로 되돌아왔다.
이제는 만5년도 더 지났고, 6년째가 되었다.
오늘은 2020년 4월 19일, 봄비 내리는 날.
내일모레에는 시골로 내려가야겠다.
비 내리는 날에는 내 기분이 우울하지만서도 온 천지가 구질거리도록 훔뻑 쏟아졌으면 싶다.
농사철에는 비가 자주 내려야만이 작물이 제대로 잘 크기에.
비 내리면 여러 가지 잇점이 있다.
서해안고속도로를 질주하면서 내뿜은 자동차 매연과 먼지, 서천화력발전소와 보령화력발전소에 태우는 석탄 석유의 오염물질은 대기 중에 떠돌아다닐 터. 흠뻑 내리는 빗물에 대기와 지상의 오염물질이 씻겨나갔으면 싶다.
첫댓글 자연이 숨쉬는 시골 생활 낭만을 꿈꾸지만 정반대로 힘들지요
노인한테는 시골생활의 낭만?
그런 것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갖춰진 환경이라면 전원생활 시골생활이 조금은 낭만이겠지요.
그런데 현실이 그러한가요?
어떤 시골인지를 먼저 따져야겠지요.
병원, 약국, 행정기관, 시장 등이 가까이 있나요?
이런 곳에 가려면 교통편이 편한가요?
시골집 주위에 이웃이 있나요? 없으면 강도 도둑이 들고, 불량한 이웃이 행패를 부리면요?
혼자 사는 경우, 둘이 사는 경우, 여럿이 사는 경우 등의 숱한 어려운 문제가 있을 겁니다.
시골생활은 돈 많은 사람이 잠깐씩 내려가서 잠깐만 피난처, 여행지처럼 즐기는 것이지요.
대부분 실패하고는 다시 되돌아가는 게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