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님, 도가 높으신 어른에게 저가 보여드릴 것은 제 몸뚱이밖에는 없사옵니다.”
황진이는 입고 있던 옷가지를 훌훌 벗어 버렸다.
팔등신 육체미가 고스란히 나타나 지족 앞에 다가섰다.
이윽고 여인은 지족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며 옷을 벗겻다.
“대사님을 흠모해 온지 오래되었사옵니다.
저의 사랑을 받아 주시오소서.
이것이 죄가 되는줄 아옵니다만...“
지족은 숨결이 가빠지고 있었다.
난생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지족은 현실을 받아 들였다.
“자리를 펴고 잠자리에 듭시다.
곡차를 몇 잔 했더니 취기가 어리오.”
“네, 그러하겠사옵니다.”
지족은 법당을 향하여 합장하며 승과속의 경계인으로 예를 올렸다.
“나무관세음보살.”
지족 암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불이었다.
빈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지족은 음양의 이치를 알아가며 새로운 세상 속으로 몸을 던지려 한다.
이윽고 타다 남은 촛불이 꺼지고
지족은 색향 짙은 이불속으로 들었다.
이 밤사 귀뚜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도 숨죽이며 듣고 있다.
황진이는 일찍 잠이 깨었다.
아직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이다.
지족은 깊은 잠에 빠진 듯 숨소리 마저 들리지 않는다.
간밤에 지족의 품에 안겨 운우지락을 누리던 때와는 달리
황진이의 마음은 착잡하고 후회스러워 진다.
저 순진무구하고 착한심성의 도인을 파계시킨 죄가
크게 다가와 자기를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다.
‘몹쓸 계집이로다.’
황진이는 더 이상 누워있을 수가 없어 조용히 일어나
두루마기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물이라도 한껏 뒤집어쓰고 싶었다.
샘이 있는 곳으로 가서 두루마기를 벗고
바가지에 물을 퍼서 온몸을 씻었다.
그러고는 샘물 속에 풍덩 뛰어들어 몸을 담갔다.
샘물이 새벽인데도 그렇게 차갑게 느껴지지 아니했다.
물속에 있으니 어느 정도 마음이 평안해 진다.
샘물을 박차고 나와 빨랫줄에 걸어둔 수건으로
몸을 닦고 두루마기를 걸쳤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고 있었다.
황진이는 방안으로 들어와 두루마기를 벗어두고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기왕지사 일을 치렀으니
지족이 원하면 다시 몸을 맡길 생각이었다.
고개를 들어 지족을 살펴보니 잠자는 모습이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여느 남자에게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생긴 모습도 미남이다.
볼수록 따듯하고 정이 가는 사람이다.
잠자리에서도 첫 경험인 답지 않게 남성을 과시하며
운우지락을 마음껏 느끼게 해주지 않았던가.
그가 첫날밤을 치루고 하시는 말씀.
“아, 지족(知足) 하도다. 음양의 도가 이러 하거늘 내 어찌 이제야 알았단 말인가!”
스님이 일어나면 이 부끄러운 모습을 어이 보여 드리랴.
죄스런 마음이 괴로웠다.
여명이 밝아올 무렵 지족은 잠에서 깨었다.
여인이 고개를 돌리며.
“잘 주무셨습니까?”하고 목례를 드렸다.
“잠자리가 불편 했을 것이오.”하며 지족이 반가운 듯 미소를 지었다.
지족이 몸을 일으키며 이불을 걷어 제치는데
여인의 알몸이 그대로 드러났다.
지족은 황진이의 그 곳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더니 빙긋이 웃는 것이다.
“대사님, 왜 웃으시옵니까?”“댁은 누구시오?”
여인은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한다.
지족이 제지하며 “그냥 말씀만 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