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공기 사고 90초의 룰 ◑
얼마 전 국군대전병원장이 된 이국종 교수는
중증 외상 분야의 국내 최고 권위자 이지요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해적 총에 맞은 석해균 선장,
2017년 판문점 JSA 귀순 당시 다섯 곳에 총상을 입은 오청성씨를 살려
국민의 박수를 받았어요
그가 15년 동안 수술실에서 쓴 메모를 바탕으로
2018년 펴낸 책이 ‘골든아워’이지요
중증 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사고 후 금쪽같은 ‘1시간’을 뜻하고 있어요
한국과 일본에선 ‘골든 타임’이란 국적 불명의 용어가 많이 쓰이고 있지요
골든아워 사수를 위해 도입된 것이 ‘날아다니는 응급실’로 불리는 닥터 헬기지요
정초에 부산에서 흉기 테러를 당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서울대병원으로 이송할 때도 등장했어요
육상엔 닥터 카가 있지요
2022년 핼러윈 참사 당시 한 국회의원이 사고 현장으로 향하던
닥터 카를 집 근처로 불러 배우자와 함께 탑승했다가 구설에 올랐어요
어떤 사고에도 골든아워가 있어요
해난 사고는 통상 1시간이지요
유독 짧은 것이 항공기 사고인데
그래서 ‘90초 룰’이 있어요
추락·충돌로 불길에 휩싸인 비행기가 견딜 수 있는 시간으로
그 안에 대피를 끝내야 한다는 뜻이지요
1960년대 미 연방항공청이 실험을 통해 정립한 규칙인데
일정 규모의 항공기는 90초 안에 전체 출입문의 절반만 사용 가능한 상황에서
승객 전원이 탈출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하지요
비행기 연료 탱크의 위치와 구조, 실내 조명, 좌석 배치가
그냥 정해지는 게 아니지요
작년에 한 사람이 공중에서 여객기 비상문을 여는 아찔한 사고가 났어요
“너무 쉽게 열린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이 역시 90초 룰 때문이었지요
비행기를 타다 사고가 날 경우 ‘반말·고함 지시’를 듣게 되지요
비상 상황 시 승무원들은 “머리 숙여! 자세 낮춰!”를
목청껏 반복적으로 외치도록 훈련받고 있어요
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과 항공사별 객실 운영 교범에 따른 것이지요
존댓말에 익숙한 한국인에겐 생소하겠지만 그걸 따질 상황이 아니지요
2016년 한 방송사에서 실험해보니 존댓말 안내 땐 탈출에
104초가 걸렸지만, 반말 지시 땐 71초가 걸렸어요
얼마전 도쿄 하네다공항 활주로에서 JAL 여객기가
일본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해 큰 화재가 발생했지요
여객기가 화염에 휩싸여 대규모 인명 피해가 우려됐지만
승객과 승무원 379명 전원이 무사했어요
승무원들이 90초 룰에 따라 신속히 대피시켰다고 하지요
기내 자신의 짐을 포기하고 통제에 따른 승객들도 귀감이 됐어요
한국사람도 그랬을 것이란 견해와 아닐 것이란 의견이 엇갈리고 있지요
우리라면 과연 어땠을까요?
-* 언제나 변함없는 녹림처사(一松) *-
▲ 얼마전 도쿄 하네다공항 활주로에서 JAL 여객기가 일본 해상보안청 항공기와 충돌해
큰 화재가 발생하자 승객들이 대피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