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유소 알바녀에서 불륜녀를 거쳐 패도(覇道)의 길로… ○거대한 운명에 맞선 ‘착한 의지(Will)'의 표상 ○팜므파탈 ‘미실’의 포스에 맞서는 순결한 선함
방송가에서는 이요원(29)에 대해 '시트콤에는 절대 출연할 수 없는 배우'라고 말한다. 반면 그는 역사물이나 진지한 드라마 등 선 굵은 여배우를 찾는 감독들이 맨처음에 찾는 배우로 꼽힌다. 이런 점에서 그는 한국 연예계에서 보기 드문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 '선 굵은 여배우'를 찾는 감독의 유일한 선택
그는 데뷔한 지 12년이 지난 톱스타이면서도 단 한 번도 연예계의 중심에 선 일이 없다. 대중들은 '이요원'이란 이름은 잘 알고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20대 여배우들에게 집중될만한 신변잡기적 가십의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데뷔 이후 줄곧 수많은 작가와 PD들의 뜨거운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그는 '연기력'을 논하기 이른 10대 후반부터 언제나 주연급으로 발탁됐고, 늘 그 아니면 안되는 운명과도 같은 작품들이 주어졌다.
배우 이요원은 ‘선덕여왕’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우뚝섰다. 그는 또래 가운데 성장 속도가 가장 빠른 배우이자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인 영역을 확보했다. (출처·MBC ‘선덕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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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요원이 주로 맡는 역할은 거대한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절대 비굴하지 않은 꼿꼿한 여성이다. '패션 70s'의 더미가 그랬고 '화려한 휴가'의 박신애가 그랬듯이 말이다(심지어 '다모' 하지원 역, '태극기 휘날리며'의 이은주 역, '클래식'의 손예진 역이 맨처음 오퍼가 간 곳은 이요원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중은 그에게 무심하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을 20, 30대 젊은 시청자들마저도 "왜 그가 매번 주연급으로 발탁되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는 22세에 결혼한 품절녀다. 고현정에 필적할 포스는커녕 가냘픈 이미지에 김태희 같은 미모도 아니고, 이웃집 누나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외모를 지니고 있다. 성품 또한 차분한지라 특별히 사고 칠 일이 없어 연예부 기자들의 주목을 끌지도 않는다. 실제로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공과 사'를 구분할 줄 아는 여배우다.
그런 그가 이제는 한국 여배우로는 전인미답의 '대왕(大王)'역을 연기한다. 국민드라마 '선덕여왕'을 통해서 말이다.
▶ 배우 이요원에 대한 심각한 오해
2009년 11월10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1000년 제국' 신라를 좌지우지 한 미실이 자결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죽는 순간을 전 국민의 절반 가까이가 바로 코앞에서 지켜봤으니, 미실은 죽었어도 영원히 한국인의 가슴 속에 살아남은 셈이 됐다.
애당초 이 드라마는 미실 없이는 성립 불가능한 작품이었다. 고현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실제 미실이 가진 불행한 개인사는 이혼경력을 지닌 고현정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섹시하되 고결하며 아름답지만 칼날을 숨긴' 여인. 역사의 변방에 머문 '미실'을 택해 크게 키울 줄 아는 고현정의 탁월한 선구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고현정이 연기한 미실이란 캐릭터는 앞으로 이요원이 극복해야할 가장 큰 경쟁자이다. |
실제 고현정이 아니었다면 미실이란 캐릭터가 이토록 각광받을 수 있었을까? 그만큼 미실은 서구 고전물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매력과 함께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는 '권력에 대한 치열한 야심'을 촘촘히 드러낸, 캐릭터의 신기원으로 평가받는다. '캔디류'라 정의할 수 있는 '대장금'에 머물러 있던 고전적 여성 캐릭터를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전형을 창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요원이 연기한 '덕만공주'는 실패한 캐릭터인가?
실제 미실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덕만'이란 존재는 한없이 초라한 역사 속의 승리자에 불과하다. 신분제도라는 기득권에 기댄 지극히 당연한 승리였기 때문에, 역사의 전복을 꿈꾸며 미실이란 영웅의 죽음에 연민을 느낀 이들은 덕만공주에 대해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중은 언제나 역사의 실패자에게 마음이 쏠리지 않았던가.
어떤 이들은 "선덕여왕의 실제 주인공은 다름 아닌 '미실' 고현정"이라고 정의한다. 심지어 이요원이 연기한 덕만은 '고미실'에 압도됐으니 드라마 제목도 <미실>이 맞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한발 더 나아가 이요원은 '미스캐스팅'이라고까지 지적한다.
물론 이것은 지나치게 성급한 결론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시청자들이 만난 덕만공주는 여전히 '선덕여왕'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펼쳐질 12회(혹은 그 이상 연장될 가능성도 있다)분에서 그가 공주라는 타이틀을 버리고 '여왕'에 진입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밋밋한 평가는 순식간에 폭발적인 긍정으로 뒤바뀔 소지가 농후하다.
또 하나의 반론은 '고미실'의 팜므파탈이 이요원이라는 '한없이 투명한 선(善)함'의 조응 없이 제 빛을 발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요원에 성이 차지 않는다면 덕만공주 위치에 당신이 알고 있는 그 어떤 대한민국 여배우라도 대입해 보면 답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그 누구도 대체하지 못할 전혀 새로운 포스가 존재한다. 그것을 '운명에 맞선 의지'라고 말할 수도, '21세기 신여성의 표상'이라 말할 수도 있다. 어째됐건 감독과 작가의 말대로 그는 20대에 선덕여왕을 연기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유일한 배우다. 이제껏 이요원이 보여준 연기의 성장과정이 이를 입증한다.
이제 공격권은 고현정의 손을 떠나 이요원의 손에 쥐어졌다. 우리는 발레극 <백조의 호수>에 등장하는 '검은 백조'의 연기를 감상했을 뿐이고 이어 펼쳐질 진짜 주인공 '하얀백조', 즉 선덕여왕의 즉위를 기다려야만 한다.
▶ 보이시한 매력, 중성적인가 이중성인가?
이요원의 연기 인생은 '우연'에서 비롯돼 '운명'으로 발전했다.
학창시절(1997년) 응모한 여고생 모델 선발대회에서 입상한 뒤 예정된 코스처럼 잡지 표지모델에서 패션모델로 전향했고, CF모델을 거쳐 학원 드라마를 통해 연기자로 입문했다. 처음에는 단역으로 시작해 "모델치곤 연기 잘한다"는 평가에 고무돼 점차 연기의 세계에 발을 들여 놓았다는 후문이다.
10년전 이요원의 모습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는 미모가 아닌 존재로 승부한다. 동아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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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늘씬한 키(170cm)에 선머슴 같은 외모였지만 대단히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내성적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어린 시절 그의 엄마가 "성격을 고쳐놓겠다"고 벼를 정도였단다. 학창시절 지나치게 평범한 학생이었다는 그는 또래 모델이나 배우들에게 인사조차 제대로 못하고 대기실에 늘 혼자 앉아 있었다고 회고한다.
대중이 기억하는 이요원의 첫 모습은 '주유소 습격사건(1999)'의 깔치 역이다. IMF 직후 '루저(loser)'들의 얘기를 코미디로 승화한 이 작품은 유오성 이성재 유지태 등 쟁쟁한 남자배우가 등장했는데 희한하게도 여배우는 주유소 아르바이트로 등장하는 이요원이 유일했다. 여기서 그는 강금과 협박이란 범상치 않은 상황에 간단히 제압될 법도 했지만 오히려 짜증을 부리는 생동감 넘치는 연기를 선보였다.
흔히 충무로에서는 이를 '존재감'으로 표현한다. 등장 시간의 장단과 무관하게 순식간에 관객을 시선을 집중시키는 태생적 배우기질 말이다.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이요원의 얼굴이나 성격은 <주유소 습격사건>의 알바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보이시하고 거친 남자들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강단 있는 품새다.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는 얄밉지만 똑똑한 혜주로 등장했다. 가난으로 여상(女商)에 진학했지만 성공에 대한 꿈을 포기 않는 청춘. 문제는 증권사에 취업한 여상출신이 펼칠 야심이란 우리 사회에 그리 크지 않다는 것. 그는 현실의 높은 벽 앞에서 한없이 좌절하지만 그 벽에 무릎 꿇지 않는다. 고양이로 표상된 '청춘의 꿈'을 잠시 위탁할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는 여성. 여성성과 남성성의 묘한 조화가 바로 이요원의 10대 이미지였다.
▶ 판타지 스타가 아닌, 그냥 직업이 배우
"발랄한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2007년 화려한 휴가 촬영 직후)
적잖은 평론가들이 그에게 '선머슴같다, 보이시하다'는 수식어를 빼놓지 않는 이유는 그가 의외로 여성스럽기 때문이다. 아니, 실제 그는 예쁜 배우 가운데 하나다.
초기에는 잘 성장하면 문근영같은 '국민여동생'의 한 축을 맡지 않을까 했지만 그는 의외로 여성스러운 배역을 택했다.
1차 파격을 일으킨 것은 이경영, 김미숙과 열연한 드라마 2001년작 <푸른안개>. 참신한 이미지에 성숙미를 살짝 얹어 원조교제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드라마에서 국민여동생이 아닌 로맨스그레이족들의 아이콘이자 '제2의 심은하'라는 타이틀까지 따라붙었다.
촬영장을 찾은 팬들과의 즐거운 한 때. 결혼 이후 그는 배우를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
단순한 불륜물이 아니었다. 21살의 여대생이 아버지뻘인 46세의 유부남을 사랑한다는 지금 기준으로도 파격적인 설정이었다. 선배인 심은하가 <청춘의 덫>에서 의도된 복수로 남자를 파멸시키는 전형적인 팜므파탈(요부)을 연기했다면 '이요원식 선택'이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다가와 마치 예고된 것 같은 '파멸'으로 종결됐다.
"투 톤 셔츠 라고 아세요? 몸통부분과 소매 부분의 색깔이 다른 셔츠 말이에요. 마치 그것처럼 제가 알쏭달쏭하게 생겼나 봐요."(2001년 동아일보 인터뷰)
스스로 '투 톤 셔츠'로 비유한 것처럼 그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자유롭게 오갈 줄 아는 이중성을 갖고 있었다. 요즘 <선덕여왕> 촬영장에서는 선배 화랑들에게 아예 대 놓고 '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래야만 덕만의 정서를 놓치지 않기 때문이라는데 너무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2002년작 <대망>에서는 선덕여왕의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당시 권세를 잡은 금평대군에 대항하던 세자와 여진아씨(이요원)의 선택이 엇갈리기 때문이다.
세자는 자신의 때가 오기를 기다리지만 오히려 여성인 여진아씨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세상과 부딪치고 갈등한다(<선덕여왕>에서 김춘추가 음험하게도 미실과의 싸움을 피하는 대목과 흡사하다). <대망>에서 남자가 현실에 순응하고 여성이 갈등한다는 설정은 모래시계 송지나 작가의 의도인지 몰라도 새로운 여성상의 표상을 제시한 것이다.
한 때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었다는 그의 말대로 그는 <서프라이즈>나 <아프리카>처럼 여성성과 강인함이 미묘하게 혼재된 배역에 주로 캐스팅됐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그보다 더 ‘덕만공주’에 적합한 배우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
그러다 한참 잘나가는 시기에 2차 파격을 보였다. 한창 스타대열에 오를 무렵인 22세때 결혼과 함께 무대에서 사라진 것.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말이다.
이런 그에게 결혼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이자 배우라는 직업과는 무관한 일로 비친다. 그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깨어버리고 싶은 것은 결혼을 한 여배우의 이미지"라며 "내 사생활을 보지 않고 연기만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3년 동안 아이를 낳고 대학(단국대 영연과)로 돌아가 여느 학생들처럼 지독하게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갔다. "여배우에 대한 고정관념이 싫다. 나쁜 이미지를 주기 싫어서 기를 쓰고 학교를 다녔다"는 회고가 있었다.
▶ 캐릭터 자체가 '성장' 컨셉. 그는 무한히 커나간다.
복귀 이후 그 연기활동의 정점을 이루는 <패션 70s> <화려한 휴가> <선덕여왕>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작가와 감독, 아니 세상이 원하는 그의 역할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첫 째는 주인공이 배우가 아닌 거대한 역사의 물결이라는 것. 섬마을 평범한 소녀가 화려한 패션시장에 만든 운명의 씨앗은 6.25라는 비극에서 탄생했다. 5.18이란 배경은 그의 사랑을 저 세상으로 앗아가고, 심지어 유약한 그를 지프차에 태우고 "광주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소리치게 만든다.둘째는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는 무한히 성장하는 캐릭터라는 것. 그 배경에는 타고난 '밝음'의 이미지가 존재한다. 롤플레잉(RPG) 게임이란 장르가 있다. 게이머가 새로운 환경에서 능력치를 키워 종국에는 완벽한 존재에 이르는 이른바 온라인 셀프 성장소설이다. 그에게는 RPG게임 캐릭터의 분위기가 풍긴다. 마치 덕만이 선덕여왕에 이르는 길처럼 그의 성장과정은 우여곡절을 겪지만 필연으로 연결된다.
덕만공주는 현실의 제약에 굴복하지 않고 꿋꿋하게 맞서는 용기있는 여성의 표상으로 부각했다. 이는 강력한 적인 미실과 타협하는 남성인 김춘추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출처·MBC ‘선덕여왕’)
| 마지막으로 피할 수 없는 비극적 운명. 덕만이란 캐릭터 역시 언니 천명을 잃고 사랑(유신, 비담)과는 절대 이뤄지지 못하는 비련의 여인이다. 묘하게도 이요원의 사랑은 극중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일찍 결혼하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는지도 모른다. 맥 락은 조금 다르지만 2007년 <외과의사 봉달희>의 봉달희도 정의감을 지닌 여의사가 고군분투하는 모습으로 이 같은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심지가 굳고 통이 크면서도 누가봐도 선한 사람이라는 넘볼 수 없는 '아우라'가 바로 그것이다. 물 론 실패작도 있다. <광식이 동생 광태>가 그것이다. 흥행 성적은 나쁘지 않았지만 이요원의 매력을 제대로 뽑아내지 못한 배역이었다. 광식이가 짝사랑하는 '윤경'은 위에 열거한 조건에 부합되지 않는 말 그대로 지극히 현실적인 여성이었다. 결국 대중은 김아중의 섹시한 모습만을 기억하고 말았다. ▶ 선덕여왕에서 보인 덕만의 매력"이 작품의 시놉시스를 보고 마치 '운명'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선덕여왕 출연 직후) 그 는 이제껏 특정 배역을 따내기 위해 굳이 노력을 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그의 표현대로 '운명'의 냄새가 풍긴다. 그것이 꼭 정치권력이 아니라 가정권력이든, 남녀 사랑 간 주도권의 문제이든 그에게 풍겼던 운명적인 느낌이 이번 <선덕여왕>에 투사된다. 선덕여왕은 이요원의 인생에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전망이다. 그가 가진 거의 전부를 이 작품에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배우 이요원'이 가진 매력들의 백화점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그의 투쟁도 만만치 않았다.
동료배우 및 스태프와 함께 식사하는 이요원(가운데). 그는 이번 출연을 통해 30대 원숙한 배우로 거듭나고 있다. | <선덕여왕> 제작진 한 관계자는 "이요원이 아역이 끝나는 8회부터 대사가 주어졌지만 그 전에 이미 덕만의 대사를 달달 외우고 있었다"며 "그래야만 극중 덕만의 캐릭터가 연속성을 지닐 것 같아서 그랬다는 답을 들었다"고 놀라워했다. 가냘픈 몸으로 남장배역을 소화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고충이었다. 그러나 그의 화랑 연기는 이전의 보이시한 배역의 연장선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선택이었고 시청자들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그러나 그의 혼신의 힘을 다한 연기가 제대로 이해받지 못하고 끊임없이 저항세력을 불러 오는 것도 극중이나 현실이나 매한가지라는 점이 흥밋거리다. 그 의 배역의 적합성을 놓고 논란이 일자 <선덕여왕> 제작진이 나서 그를 옹호했다는 것 또한 그의 비극적 요소와 운명론적인 승리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이는 마치 <패션 70s> 정성희 작가가 나서 "이요원 만큼 (섬처녀) 더미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배우는 없다"고 단언했던 상황과 비슷하다. "이요원의 연기력이 문제라고요? 고현정의 20대 시절 연기와 지금 이요원의 연기를 비교해 보세요. 이요원만큼 연기력의 성장이 빠르고 존재감 있는 배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먼 훗날 이요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연기자로 성장하리라 확신합니다."(스포츠동아 김재범 엔터테인먼트부장)
선덕여왕 초기 남장을 한 채 경주 보문단지 도투락 목장을 뛰어다니는 모습. 이 촬영은 군대 제식훈련을 포함한 실제 PRI 훈련에 버금갔다고 하고 이요원은 군말없이 따랐다고 한다. | ▶ 하야오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닮은 선덕여왕<선덕여왕> 이후 그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권 력을 장악하는 여제를 그린 선덕여왕의 효과로 향후 제 1공화국, 제 3공화국, 제 5공화국 등 기존 한국정치드라마에 이은 현대정치사 드라마가 나온다면 여성 정치인을 연기할 후보연기자 1순위가 아닐까. 어찌됐건 그는 여성의 정치권력 이미지를 획득했으니 말이다. 이요원을 수식하는 표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기껏 해봐야 '포스트 심은하'가 잠시 떠돌다 사라졌다. 그만큼 그의 이미지는 독보적이고 비교 불가능한 새로운 것이다. 이요원의 이미지에는 본인이 원하든 아니든 젊은 여성이 지니는 발랄함보다는 '운명적' 비극의 요소가 담겼다. 그와 닮은 캐릭터를 찾던 중 일본 애니메니션의 거장 미아자키 하야오의 초기작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떠올렸다. 바람계곡의 공주로 태어난 나우시카. 자신에게는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조건이다. 이런 그는 그 어떤 가식적 귄위나 폭압적 권력도 거부하며 태생적 선함의 상징이자 비극을 거부하지 않는 인물이다. 제국의 폭압에 맞선 나우시카는 희생을 통해 왕국은 물론 세상을 구원한다.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온 예언대로 말이다.
미아자키 하야오가 꿈꾼 여성 지도자의 모델 나우시카. 덕만공주는 이와 흡사한 운명론적 지도자에 가깝다. 출처·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만화판.
| 지금도 <선덕여왕> 최고의 명작면으로 꼽히는 일식 예언 장면. 태양이 머금었던 달을 토해내며 그 최초의 빛을 지상에 내린 순간 그 자리에는 씩씩하면서도 한없이 선한 이미지의 덕만 공주가 서 있었다. 백성들은 그에게 경배하고, 이를 바라본 미실의 표정은 한없이 어두워져 간다. 우리는 어쩌면 예언서에 적혀있는 '나우시카'와 같은 <토함계곡의 덕만공주>를 시청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