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역사, 문화, 그리고 한국인> 3차시 2강 생각해봅시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요즈음은 정치인들 또한 연예인 못지 않은 대중성과 스타성을 지녀야 한다. 그런데 최근 윤석열 내란사태를 지나쳐오면서 법조인들 또한 연예인 이상의 스타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는 계몽되었습니다.”
이 말은 윤석열 측 변호인 김계리가 헌법재판소 최종변론에서 한 말이다. 그 뒤에 시민들은 유행처럼 이 말을 패러디했다. 계몽이라니? 계몽주의는 17~18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사상운동으로, 인간의 경험과 이성을 통해 시민에게 더 나은 사회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계몽주의 시기에 계몽된 시민들은 시민혁명의 주체가 되어 이전 시대, 중세와는 다른 근대를 열었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를 부정하고,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계몽이었다. 한마디로 왕과 귀족이나 평민들이 모두 평등하다는 급진적 사고로 계몽하는 일이었다.
그녀가 계몽의 의미를 알까? 김계리가 생각하는 계몽과 필자가 생각하는 계몽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것은 대다수의 깨어있는 시민을 바보로 만들어, 헌정질서를 어지럽힌 윤석열과 그 일당에게 복종하도록 하는 게 아마도 계몽으로 보았던 것 같다. 김계리와 윤석열 측 변호인들은 단어 선택을 잘못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반동일 뿐이다.
이들을 사회적으로 격리해, 다시는 준동하지 않도록 하고 법치주의의 근간을 지켜내, 민주주의의 위협 요소를 제거하는 게 급선무이겠으나, 사실 필자를 더더욱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정치인과 관료 집단의 "비겁함"과 다수 시민의 시대에 대한 "무책임"이다.
자신의 도덕적 책임을 부정하거나 희석하는 심리적 과정으로, 대중 앞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행태를 심리학에서는 ‘도덕적 회피’라 한다. 스탠리 밀그램의 ‘복종 실험’(1961년)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함’ 개념에서도 나타나듯이 권력자는 자신의 책임을 구조적 요인으로 전가하며 도덕적 판단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
“어쩔 수 없었다”라는 식의 비겁함이다. 우리나라 최고 통치자마저 12.3 게엄을 선포하면서 내란을 합리화하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책임을 외부 요인에 돌렸다. 이에 맞서는 야당 지도자들 또한 자기 안의 반민주성에 관해서는 반성하지 않는다. 예컨대, 22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 정당의 의석 독점을 방지하려는 것이 목적으로 제정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색케 하는 위성정당 논란이 심화될 때,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21대 총선 직후 ‘위성정당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정치개혁을 논의하겠다’는 약속을 '멋지게 지면 뭐하나?' 라고 스스로의 논리를 부정하고 위성정당에 동참했다.
소수정당의 의석을 도둑질하는 이와 같은 행태는 세계 정당사에서 보기 드문 한국형 정당문화이다. K컬쳐, K방산 등 세계인들이 한국의 문화와 민주주의 저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12.3 내란으로 하루 아침에 무너져 내렸고 이에 맞서는 야당 정치 지도자들 또한 부끄러운 'K정당정치' 퇴행에 앞장서면서 'K민주주의'는 길을 잃었다.
또 하나 다수 시민의 시대에 대한 "무책임"이다. 무책임한 시민이 정치인과 관료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이, 전체주의를 부른다. 독재자를 부른다. 12.3 내란사태가 석 달을 치나치면서 내란수괴 윤석열과 관련 공직자들과 군인들을 동정하는 여론이 우려스럽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은 말했다. “우리는 법과 명령을 충실히 따랐을 뿐이다”라고..
지극히 제한적인 평온을 되찾은 지금, 모든 것을 망각하고 시민이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순간, 우리 안의 <악의 평범성>은 싹트고 한국의 민주주의는 위협받는다. 행여 나는 그들의 의도대로 계몽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한국의역사,문화,그리고한국인 #이나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