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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니 소설 연구 - '늑대의 유혹'을 중심으로
들어가면서
언제부턴가 사람들 입에 회자되며 일각에서는 열화와 같은 지지를 이끌어내고 있고 또한 일각에서는 그만큼의 공격을 받고 있는 '귀여니'의 소설. 본인은 꼴에 문학 전공자로서 그녀의 소설이 도대체 어떤 소설이기에 그런 극단을 달리는 반응들을 얻고 있으며 문학적으로는 과연 어떤 위치를 가지며 사회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그래서 본인은 본인이 즐겨 사용하는 '암흑의 루트'를 통해서 그녀의 소설 '그 놈은 멋있었다'와 '늑대의 유혹'을 입수했다.
그리고 먼저 '늑대의 유혹'을 읽게 되었는데, 이 작품이 두 작품 중에서 그나마 최근작이라는 사실 때문을 알고 '늑대의 유혹'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늑대의 유혹'이 '그놈은 멋있었다'의 후속작인지도 몰랐다. 그저 먼저 클릭 하게 되었기 때문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글은 '늑대의 유혹'을 다 읽고 나서 쓰게 된 글이다. '그놈은 멋있었다'는 크게 읽고 싶다는 유혹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글은 귀여니의 텍스트중 제본된 것이 아닌 파일형식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쓰여졌음을 밝힌다. 아울러 귀여니에게 책을 사서 읽지 않은 것에 대해 유감스러움을 밝히고자 한다.
소설의 줄거리
그녀의 소설 '늑대의 유혹'의 플롯은 꽤 단순한 편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기가 살던 공주를 떠나 예전에 아버지와 이혼한 뒤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어머니가 살고 있는 안양으로 오게된 숫기 없고 순진하고 마음 여린 고 3소녀 정한경은 이미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던 한 살 어리지만 화통하고 터프한 성격의 동생 다름이로 학교최고의 얼짱이자 싸움도 짱인 그러나 성격은 거칠고 자기 멋대로인 반해원을 '억지로' (단지 남자친구가 없다는 이유로) 소개받게 된다.
내키지 않는 갑작스러운 동생의 소개팅에 난색을 표하며 동네 피시방으로 피신한 한경은 거기서 엉뚱하고 따뜻한 성격의 그러나 얼굴은 역시 꽃미남인 정태성을 우연히 만나게 된다. 정태성은 한경에게 깊은 관심을 보이면서 자기의 '누나'가 되어달라고 한다. 피시방에서 나온 한경은 동생 다름이의 소개로 반해원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고 2면서도 한경이 어리버리하고 순진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말을 까며' 무시한다. 하지만 처음 본 순간부터 해원은 한경에게 깊은 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태성역시 한경에게 계속 연락을 취하고 한경은 두 꽃미남 태성과 해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하지만 이웃에 있는 공고의 싸움짱인 태성과 해원은 이미 한경이 등장하기 전부터 앙숙사이였고 그런 앙숙관계는 한경의 등장으로 더욱 가속화된다. 그런데 여기 한경과 태성의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는데 태성은 한경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아닌 다른 여자 사이에서 갖게 된 배다른 동생이었던 것이다. 태성은 출생의 비밀을 감추고 외할머니와 함께 단둘이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태성은 사실 한경이 배다른 누나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한경에게 누나가 아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태성은 누나 한경과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해원이 사귀는 것을 인정해주고 한경은 태성을 노리는 수많은 연적들의 방해공작을 뚫고 해원과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리고 태성은 자신의 친가로 찾아가게 된다. 태성의 친할머니는 알려지지 않았던 유일한 친손자의 등장에 놀라게 되고 함께 뉴질랜드로 떠난다.
한경은 해원과 사랑을 키워나가면서 태성과 '버디버디'라는 엠에스엔과 비슷한 메신저로 연락을 취한다. 하지만 전화통화는 친할머니의 통제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알고보니 태성은 시한부 인생으로 뉴질랜드에서 숨을 거둔 뒤에 공주의 아버지 무덤 뒤에 이름없는 작은 무덤에 묻히게 된 것이었으며 메신져에서 한경과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은 자신의 죽음을 노출시키고 싶지 않았던 태성이 자신의 친구를 시켜서 내세운 가짜 정태성이었던 것이다. 이런 비극적인 진실을 한경은 알지 못한 채 소설은 끝을 맺는다.
왜 십대들은 이 소설에 열광했는가
이 소설을 읽고 본인은 왜 귀여니의 소설이 십대들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본인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십대 소녀가 자기 주변에서 벌어졌던 마치 소설 같이 기구한 이야기 혹은 어제본 드라마 내용을 자기 친구들에게 재밌게 들려주는 광경을 떠올릴 수 있었다. 왜 중학교나 고등학교 때 같은 이야기라도 재밌게 하는 친구들 즉 입담 좋은 친구들이 꼭 한 명씩 있지 않은가. 그녀 귀여니는 바로 이런 재주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그녀 소설의 문학성은 둘째 치더라도 그녀의 책에 대한 십대들의 열광과 판매부수에 대한 의문은 풀렸다.
늑대의 유혹만 놓고 봤을 때 그녀의 소설 플롯은 여러 드라마나 만화에서 주로 쓰이던 진부한 소재들의 재조합으로 보인다. 사실 그녀의 첫 번째 소설 '그놈은 멋있었다' 역시 일본만화 '꽃보다 남자'의 설정을 많이 빌어왔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많은 안티 귀여니들의 공격을 받았다. 물론 그녀와 그녀의 팬들은 그 사실을 적극 부인했고 심지어 '그놈은 멋있었다'가 '꽃보다 남자' 보다 먼저 나왔다는 그녀(혹은 그녀의 팬)의 주장은 안티들의 거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그 비난의 거센 정도가 음악계의 문 모씨에 대한 비난의 정도와 거의 맞먹고 있으며 인터넷의 여러 유머 모음 사이트(대표적으로 웃긴대학이나 디시인사이드)에서 가수 문모씨와 함께 많은 네티즌들에 의해서 '음악엔 무뇌충 소설엔 귀여니'라는 등식을 통해서 희화화되고 있다.
솔직히 두 사람의 무지에 가까운 망언들을 돌이켜 볼 때 본인 역시 그러한 비난이 일견 합당해 보일 때도 있다. 하지만 그 비난과 조롱의 정도가 너무나 심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에 이르고 있다. 본인은 문모씨는 잠시 미뤄두더라도 그녀의 소설에 대해서는 인정해줘야 할 가치는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부터 본인은 그녀에게 가해진 수많은 비판과 비난에 조금이나마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그녀의 소설이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미덕에 대해 분석해기로 한다.
귀여니 소설에 대한 심층 분석
자기 유사성
우선 귀여니의 소설들은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자기 유사성이란 무엇인가? 언어학의 지프의 법칙, 경제학의 파레토의 법칙, 베키의 법칙(Becky's law)과 무수한 power laws. 이들은 모두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바로 평등과 불평등이다. 경제나 맥주 소비, 웹 페이지 사용 빈도, 도시 인구 등 시스템은 다르지만 각 시스템은 대부분 특정한 몇몇 개체에 대부분의 숫자가 몰려 있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 역할(빈도)은 미약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양상은 어떤 스케일에서 관찰하든 똑같은 패턴을 보인다는 특성이 있다. 예를 들어 지프의 법칙의 경우, 한 책에 등장하는 단어들에서 이런 특성이 보일 뿐 아니라 영어로 된 모든 소설, 혹은 모든 문학 작품, 혹은 더 넓게 모든 활자매체의 글을 조사해봐도 똑같은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스케일에 무관하게 같은 구조를 되풀이하는 것을 '자기 유사성'이라고 부른다.
지프는 1949년 <인간의 행동과 최소 노력의 법칙(Human behavior and the principle of least effort)>에서 인간의 행동은 최소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는 특징이 있으며, 언어는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언어를 사용할 때도 인간은 최소의 노력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문법을 변화시키고 말의 패턴을 조절해 왔을 것이라고 가정했다.(정재승 「과학콘서트」pp.116-117)
귀여니 소설의 문체적 특성과 자기 유사성
귀여니의 소설은 언어학적 측면에서 자기 유사성을 대표하는 이러한 지프의 법칙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귀여니는 최소의 노력으로 상황을 묘사하는 데에는 이모티콘(-_-, -o- <- 뭐 이런 것들)을 사용하고 문법 역시 자신의 임의대로 최대한 변형시킴으로서 말의 패턴을 조절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 및 묘사의 간결화라는 패턴의 제어는 기존 문학 장르의 하드보일드파의 소설에서도 나타나지만 그 목적은 매우 다르다. 생물학적으로 감정표현과 상황에 대한 묘사와 같은 언어학적 능력은 여성 쪽이 더욱 풍부하다고 알려져 왔다. 그렇기 때문에 하드보일드와 같은 감정적 묘사가 최대한 제한된 장르의 소설은 주로 남성들의 전유물로 알려져 왔다.
하드보일드 장르의 소설들이 짧고 간결하며 무감각하고 비정한 문체를 사용하는 이유는 '대부분' 객관적으로만 상황을 묘사하여 작가 자신이 그 상황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가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귀여니의 경우에는 감정표현은 풍부하면서도 극단적으로 짧은 문체를 구사한다. 귀여니의 소설의 문체는 짧고 간결하지만 그러면서도 기존의 하드보일드 소설과는 달리 풍부한 어떻게 보면 극단적인 감정표현을 보여주는데 그러한 감정표현은 기존의 문자가 아닌 이모티콘(emoticon)이라는 그림문자를 통해서 나타난다.
즉 하드보일드 소설과는 짧고 간결한 문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귀여니의 소설은 그 짧은 문장 속에서 최대한 주관적인 묘사, 즉 작가 자신의 감정에만 극단적으로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극단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을 독자에게 적극적으로 이입시키고 동의를 얻기 위해서 이모티콘과 속어가 난무하는 극단적인 구어체(口語體)를 빈번하게 사용한다. 그 덕분에 거의 환타지에 가까운 소설의 이야기 구조는 이모티콘과 극단적인 구어체에 익숙한 독자층들에게는 어느 정도 최소한의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귀여니의 소설은 하나의 새로운 장르의 출현으로 봐도 무방한 것이다.
귀여니 소설에 대한 부정적 반응에 대하여
귀여니의 소설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있다. 크게 귀여니 소설에 열광하는 부류와 귀여니 소설과 소설에 대한 열광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는 부류, 그리고 관심이 없는 부류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중에서 귀여니 소설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파코 언더힐의 '부딪힘 효과(butt-bush effect)'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뉴욕시 센트럴 파크 근처에 위치한 블루밍데일 백화점을 시장조사하다가(1층 중앙 현관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입구 바로 앞 넥타이 코너에 렌즈를 고정시켜, 바쁜 시간대에 고객들이 어떻게 출입구를 오가는지 관찰) 넥타이 코너로 가던 사람들이 백화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부딪힐까봐 잠시 걸음을 멈추고 멈칫멈칫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한두 차례 부딪힌 손님들은 대부분 넥타이 구경을 포기하고 출구로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물건을 구경하거나 매장 사이를 돌아다닐 때 뒤쪽에서 누군가와 부딪치거나 접촉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그런 부딪침을 피하는 과정에서 관심 있는 상품이라도 멀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귀여니의 소설은 기존 문학의 모습과는 무척 다른 것으로 어떻게 다른지는 앞서 언급한 바 있다. 이런 기존의 소설과 전혀 다른 귀여니의 소설은 자연스럽게 기존의 소설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당연히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한 거부감의 표현은 대체로 기성문학에 대한 호감에 비례하는 편이다. 하지만 기성문학에 최대한 적게 노출된 독자들이 귀여니의 소설을 접했을 때는 이러한 거부감-기성문학에 대한 호감에 비례한-들이 거의 작용하지 않는다.
즉 넥타이 코너가 귀여니의 소설이라고 가정한다면 백화점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바로 기존문학에 대한 호감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기존문학에 최대한 적게 노출된 독자들에게 이러한 부딪힘 효과는 거의 작용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십대들이 그녀의 소설에 열광하는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녀의 소설을 지지했던 독자들은 그녀의 소설에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반응을 보여줄 것이다.
첫 번째 반응은 사회적 혹은 개인적 욕구에 의해서 접하게 되는 기존문학을 통해 그 동안 비교적 자유로웠던 부딪힘 효과를 결국 경험하게 되고 자신이 귀여니 문학에 열광했다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게 되는 경우다. 이런 독자들은 기존문학에 적응하게 되면서 귀여니 소설을 강력하게 저주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반응은 귀여니 소설에서 독서가 멈추게 되는 것으로 이러한 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귀여니의 문체나 플롯에 독자의 상황인지능력이 최적화 됨으로서 귀여니 소설 이상의 플롯이나 묘사에 결국 적응 못하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반응은 첫 번째 반응처럼 부딪힘 효과를 결국 경험하게 되지만 첫 번째 반응을 보이는 독자들처럼 그 열광이 저주로 바뀌지 않고 자연스럽게 기존문학에 적응하면서도 귀여니 소설을 그저 어린 시절 재미로 읽었던 또래문학으로 인지하는 것이다.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이 세 번째 반응이 가장 바람직한 반응으로 생각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취향에 근거한 판단이고 혹자는 첫 번째 반응이 가장 올바른 반응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귀여니 류의 인터넷 십대 소설의 미래와 귀여니 소설에 대한 짧은 평가
도전과 응전
세대를 막론하고 (심지어 십대라도) 기성문학에 충분히 노출된 사람들은 귀여니와 같은 십대들이 쓴 인터넷 소설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이런 문학이 모든 십대들의 주류 트렌드로 자리잡기라도 하면 큰일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소설 판매 부수나 다음 까페 회원 숫자는 이런 우려에 상당한 근거를 부여한다. 본인도 그 숫자에 살짝 놀랐다. 하지만 본인은 이러한 현상이 기성문학에 대한, 특히 기존의 청소년 문학에 있어서는 아주 좋은 도전이라고 본다.
금세기 최고의 역사학자인 아놀드 토인비 박사는 그의 걸작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의 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법칙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이집트는 나일 강의 선물이다. ' 라고 말했다. 해마다 겪게 되는 나일 강의 범람 때문에 태양력과 기하학, 건축술, 천문학이 발달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를 영국 역사가 토인비(A. Toynbee)는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서 설명하였다. 즉 다시 말해서 자연의 도전에 대한 인간의 응전이 바로, 인간 사회의 문명과 역사를 발전시키는 바탕이 된다고 한 것이다.(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본인은 이 '도전과 응전의 법칙'이 문화에도 대체로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소설에 열광하는 이들 만큼 (인신공격에 가까운 비난은 제외하고라도) 그녀의 소설을 정당하게 비판하는 사람들의 숫자 역시 상당한 편이다. 이들이 비판에서 멈추지 않고 청소년 문학에 대한 더욱 진지하고 생산적인 담론을 만들어 기존의 가볍기만 한 인터넷 문학에 응전하게 된다면 귀여니의 소설은 한국 청소년 문학 및 인터넷 문학에 있어서 긍정적인 자극을 한 셈이 되지 않을까?
총평
애초에 귀여니 소설은 인터넷에서 본인의 유희충동에 의해서 쓰여진 또래들 사이에서 소비되기 위한 문학이었다. 이것의 엄청난 조회수를 보고 기존의 출판사가 수익성을 판단하여 출판하게 되었고 그 판매 부수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서 비판의 강도는 점점 거세지게 되었다. 그리고 성균관대학교 특차입학 조치에서 그 비판은 거의 분노의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수많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귀여니는 그녀의 팬들과 함께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나는 이 광경을 보면서 그녀의 소설이 애초의 유희충동에 충실했던 인터넷 문학으로서만 소비되었다면... 하는 생각을 한다. 분명 귀여니가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이런 소설을 쓴 것은 잘못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가 타인의 사적인 노트에 되어있는 낙서를 보고 그 낙서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듯이 말이다. 물론 공개되어 있는 인터넷상에 그런 소설을 업로드했다는 행위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애초에 제한된 장소에서 상당한 분량으로(물론 기성 문학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주 가벼운 분량이지만) 게시한 텍스트를 애써 시간 들여가며 읽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귀여니 소설은 단지 십대라는 제한된 연령 중에서도 또 기성문학에 적게 노출된 십대들 사이에서만 보편을 획득한 '또래문학'일 뿐이다.
물론 기성문학에 충분히 노출된 독자들의 비평은 그녀의 소설의 팬들에게는 '오만'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반응일 것이다. 그리고 종종 그녀의 팬들은 귀여니 소설에 대한 비평에 아주 강하게 부정하는데 그 것이 많은 이들의 빈축을 사고 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을 쉽게 '무뇌아적'인 행동이라고 일소一笑에 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귀여니 소설의 광적인 팬들 역시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파코 언더힐의 '부딪힘 효과'에 직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귀여니 소설에 대한 비평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비평에 대한 팬들의 반응을 인간 이하의 언행으로 비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귀여니의 성대특차입학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짧게 적고 이 글을 끝내기로 한다. 성균관대학교는 한국의 그 어떤 대학도 쉽게 내리지 못하는 용단을 내렸다고 평가하고 싶다. 그래도 한국의 대학순위에서 상위권을 차지한다고 평가되는 대학이 한국 대학 평준화를 위해서 엄청난 부담감을 감수하고 '낮은 데로 임하신 것'이다. 이미 가수들을 입학시킴으로서 많은 대학들이 대학 평준화에 노력해왔건만 여전히 대학 평준화는 그다지 녹녹치 않은 일이었는데 이번에 귀여니의 특차입학조치로 성균관대학교는 대학 평준화에 대한 이 사회의 강한 의지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대학 평준화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학벌이 파괴되는 살만한 세상이 멀지 않은 것 같아 가슴이 다 설레인다.
p.s 아시죠? 심각하게 읽으시면? ^^
첫댓글 믿을만한 소식통에 의하면 귀여니도 개벽이님에게 성령받아 방언으로 소설을 썼다고 하는 군요. 대단한 개벽이님... 사바나에 유코오 란라란~ 하이에나 이빠이~ 귀여니 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