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발검(見蚊拔劍)'이란 말이 있다. 모기를 보고 칼을 뺀다는 뜻으로,
사소한 일에 크게 성내어 덤빔을 이르는 표현이다.
하지만 한밤중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가 얼굴 주변에서 앵앵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쳐 본 사람이라면
이 성가신 곤충을 잡기 위해 뭐든 휘둘러 보고픈 충동을 한 번쯤은 가져봤음 직하다.
불을 켜고 이 놈을 잡으러 나서도 비행 궤도가 워낙 불규칙한 데다 환해지는 순간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바람에
결국은 추적을 포기하면서, 모기가 숨은 곳을 족집게처럼 찾아내는 기계가 발명되길 상상해보곤 했다.
그런데 이런 상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근 미국의 한 국립연구소가 모기의 움직임을 포착한 순간
기계에서 레이저 광선이 발사돼 모기를 태워 죽이는 '요격 시스템'을 개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 개발은 과거 냉전시대 소련의 미사일 공격을 공중에서 레이저로 요격하는,
이른바 '스타워즈' 계획에 참여했던 천체물리학자의 제안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아직도 전 세계적으로 1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말라리아 퇴치를 위해서였다.
냉전을 심화시키던 무력의 기술이 인류 건강을 위한 평화의 기술로 전환된 것이다.
레이저의 강도를 낮추고 다른 곤충에 해가 없도록 하는 과정 정도만 남았다고 하니 실용화도 그렇게 멀지 않은 셈이다.
모기는 1억년 전 중생대에 등장한 이후 인류와의 전쟁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1884년 모기에 물린 노동자들이 황열과 말라리아에 걸려 1천200여명이나 숨지는 바람에
파나마 운하 건설이 중단됐던 건 이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이 때문에 고전적인 모깃불부터 초음파나 자외선을 이용한 첨단 방법에 이르기까지
모기퇴치법은 끊임없이 개발돼 왔으나 별무효과였다.
되레 지구 온난화로 모기의 활동 기간만 길어지던 차에 드디어 레이저 요격술까지 등장한 것이다.
이제 견문발검이란 말도 한물간 표현이 돼 버리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이 현 논설위원 hl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