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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질 못했다.
산에서 혼자 살면 신선(仙)이고 계곡에서 잡탕으로 어울려 살면
속(俗)인이라 했던가?
신선을 바라는가?
14일 월요일, 평가관련 추진협의회를 했다.
평가보고서 작성하는 내용을 20여분 말했다.
마이크는 내가 잡고 있다.
직급을 떠나(누구말처럼 계급장 떼고 붙어보자) 할말을
하고 싶었는데 쓸데없는 사족이 많았다.
나는 나 말을 하고 그들은 그들 말을 하고
나는 그들을 달고, 그들은 나를 달고? 뭐 내가 그런 대상이기나 하나?
서로의 말들이 길항하여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내기를 바래야지.
내가 그들을 평가하는 것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오직 나의 공부거리임에 안위하자.
반성회를 하고 보리밥집에 가자는 걸 뿌리치고 집에 오니
큰 놈 둘만 있다. 내일 산에 가자고 꼬드겨 보나 어렵다.
돼지갈비를 먹으러 가면서, 난 등산배낭을 챙긴다.
고속도로를 들어선 시각이 9시 20분
과속하는 습관에서 벗어나 보자고 하지만 쉽지 않다.
토요일의 달리기와 음주가 졸음을 부르기도 하지만
어려움 없이 저 어둠 속에 섬진이 있으려니 하며
구례구역앞을 10시 20분에 지난다.
왕시루봉을 가고 싶은데, 비지정 등산로를 처음 야간산행 엄두는
못내겠다.
아침해를 볼 욕심에 결국 성삼재를 오른다.
천은사 못미쳐 매표소는 사람이 없다.
굽이진 길에 차 한대 없다.
'야생동물보호'에 노루와 개구리와
뱀, 그리고 곰이 나타난다. 안개가 약한 산을 점점 오르자 창문으로
오는 바람이 서늘하다. 어둠을 깨고 가는 나 혼자만 폭행을 한다.
700m, 800m, 900m 시암재휴게소에는 불빛이 나온다.
길가에 승용차 몇 대가 정차되어 있다.
성삼재 휴게소의 주차장은 가로막이 쳐저있고, 관리소 불도 꺼졌다.
길가에 차를 세워야 하나 돌아보는데 쇠가로막을 열어둔 곳이 있다.
차를 세우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니 11시 20분이다.
하늘엔 하얀 구름의 흐름이 보이나 세상은 캄캄하다.
어떤 차는 문을 열어놓고 음식을 먹고 있다.
바닥위에도 사람들이 앉아있다.
길을 걷는 이는 나 뿐이다.
배낭이 무겁다. 가스버너 두개에 술을 세개나 넣었다.
서양인들 흉내내려고 납작한 금속병에 양주까지 따라 넣었다.
돗자리 속에 알미늄?덮힌 깔개를 또 넣었더니 그도 무겁다.
복숭아 두 개, 고추 몇 개에 된장 등 반찬그릇, 비옷과 속옷
새로 산 12만원짜리 침낭카바도 든든하다. 그래서 무겁다.
나의 소비와 나의 연약함이 그대로 나의 무거움으로 공격한다.
손전등을 들고 오르는 길에 속도를 늦추질 못한다.
땀이 흐른다.
그냥 아무곳에 자리를 펴고 누운들 어떠랴 하다가 그냥 오른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경사가 심하고 구비진 길을 오르는데 뒤에서 차가 온다.
불을 끄고 길가에 섰는데 멈춘다.
국립공원관리사무소 차다. 젊은이가 창을 내리고
'야간 산행 안됩니다. 내려가십시요.'한다.
'산행은 않고 대피소까지만 갈께요.'
'예약은 하셨나요?'
예, 할까 하다가 그냥 안했다고 처마끝에서 잘 것이라고 한다.
'가셔도 벌금 내셔야 하니 돌아가세요.'
땀을 훔치며 사정한다. 남덕유산 삿갓골 대피소에서 저녁에 ?i겨 내려온 것이 생각난다. 그대로 서 있다.'곰 나오는 거 아시죠?'
'조심하겠습니다'
그도 결국 '무리한 산행하시면 절대 안됩니다.'하고는 올라간다.
차 안에는 젊은 여성들 몇이 앉아 나를 별스럽게 처다본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12시다.
대피소 밖에는 몇 사람이 오가고, 취사장에도 사람들이 있다.
그 부근에는 불을 켜고 덮개를 뒤집어 쓴 사람들도 보인다.
취사장 뒤 작은 계단을 올라 공터의 벤취 아래
한 사나이가 펴 놓은 자리 곁에 배낭을 벗는다.
가스등을 내게 비춰주는 그의 상체가 흔들거린다.
'고맙습니다. 술 한잔 하시겠어요.' 친구가 준 호랑가시열매 술을
컵에 따라주니, 그도 플라스틱 너홉 소주를 따라준다.
그러고 보니 12시가 넘은 이 시각까지 혼자서 술을 마셨나보다.
난, 그의 흔들거림이나 꼬부라진 말 속에서 술에 취했음을 안다.
'선생님이죠?' 나의 몇 마디 말 속에 나의 신분을 말한다.
그렇다고 하고 마흔 일곱살이라고도 한다.
자긴 훨씬 아래라 하고 사천이 고향이며 부산에 살고,
호텔에 근무한다고 한다. 삼천포에 달리기 하고 왔다고 말하나
듣는 척 마는 척한다.
짧은 머리에 단정한 얼굴인데 술에 취해 있다.
다른 사람에게는 거칠게 술주정을 하면서도 나에겐 얌전?하다.
일어나 술잔을 나무 난간 기둥에 올려놓고 기대고 서 있다.
잠자보고 싶었던 침낭커버를 펴고 들어가 눕는다.
하얀 구름이 떠 있고, 그 사이로 별이 몇 개 보인다.
창욱이 제삿날 만났던 달이 백중 보름이었으니
이제 하현이겠다 하는데 노고단 고개 위에서 반달이
창백하게 떠 오른다. 저 별들과 달은 또 흐르겠거니 하고
이제 잠을 청하는데 그 사나이가 돌아와서는 나 위로 덥친다.
상체를 세우고 정색하며 자리로 가라하니 말을 잘 듣는다.
등뼈를 곧게 펴고 하늘을 보던 내 몸은 얼마동안 그러다가
옆으로 돌린다. 밖으로 만져지는 바닥이 금방 흙이고
깔개 위도 물방울이 흐른다.
잠결에 사람의 음절 흉내를 내는 것같은 여우 가족의 소리를 듣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가 보다.
얼마나 잤을까?
3시가 넘어가자 사람들의 발자국이 연이어 땅을 울린다.
3,40명이 떼를 지어 고개로 오른다.
제길, 자리를 잘못 잡았다. 산악회에서 당일 종주를 하려고
도시에서 밤에 출발한 사람들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속에
그래도 자자고 몸을 돌린다.
4시를 넘어가자 희뿌연 기운도 살아난다.
하늘은 청명하지 않으나 비도 오지 않는다.
젖은 침구들을 개고 배낭을 다시 챙겨 고개를 오르니
5시 10분쯤이다. 고개를 숨가뿌게 오른다.
금방 배낭이 무겁다. 몸은 준비되지 않았다.
노고단 고개에는 사람이 많다.
노고단가는 문 앞에 직원과 자우너봉사자가 막고 서 있다.
갈 수있느냐했더니 6시 반까지 내려오란다.
그러고 보니 요즘에는 한시적으로 새벽에도 허용한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다. 계단과 경사로 나뭇길을 경사로 따라 오른다.
노고단 정상에는 사람들이 더 많다.
천왕봉쪽으로는 두겹 세겹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고, 표지석과 돌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화엄사골 계곡과 구례읍 너머 섬진강은 안개에 덮여있다.
노고운해는 기대에 못 미치나 무슨 상관이랴.
5시 30분쯤 해가 뜰거라 생각하는데 구름에 막혀
6시가 되어도 해가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일시에 사라진다.
나는 무엇을 본 것일까?
무엇에 매여 무엇을 확인하고자 하는가?
작년 가을이던가? 종석대 지나 건너의 만복대를 갈까하다가
임걸령에 가서 아침을 먹자고 마음을 돌려 먹는다.
노고단 고개에서 사람들이 나뉜다.
천왕봉쪽으로 가는 이는 드물다. 길은 편하다.
꽃을 본다. 동자꽃에 초롱인가
모싯대인가? 우리 동네 뒷산에서 본 딱주(잔대)는 아닐테고.
저건 양지던가? 아니 둥근이질풀이지.
저리 흐드러지게 많은 저 분홍꽃은 이름도 쉬 생각나지 않는다.
완만한 내리막 돌길 끝 지나 노고단 허리를 벗어나는 길에
왕시루봉 입산금지 표시가 있다. 통제기간은 영구다.
사람이 개다래덩굴을 헤쳐본 흔적이 보이나 길이 없다.
돼지평전 쪽으로 가다가 섬진강 구름을 내려다 본다.
동자꽃에 양지꽃 거기에 노란 원추리가 또렷한 암수술을 세우고
봐 달라고 고개를 내게 내민다.
다행이 사람들이 많지 않아 사진을 찍곤 한다. 그러며 숨을 고른다.
추월해 가는 젊은이들이 '우리도 저것들 보아야 하는데'한다.
주능선을 가면서 아직도 갈 길이 정해지지 않았다.
임걸령에는 7시 30분무렵 도착했다.
많은 이들이 같이 앉아 마주보며 아침을 먹고 있다.
바위뒤로 돌아 자리를 잡는데 배설물들이 방해한다.
매마른 배설물을 보다가 그냥 그 옆에 배낭을 벗는다.
야영과 취사가 금지라지만 그냥 쌀을 씻는다.
육개장 1인분을 작은 코펠에 넣고 끓인다.
여전히 밥이 되었는지 여러 번 뚜껑을 열어본다.
물을 다시 붓곤 한다. 아래가 검게 탄다.
된장에 고추를 찍고, 육개장을 마시니 별미다.
술 생각이 난다. 혼자 폼을 잡고 입에 병채 대고 마신다.
독한 기운이 좋다.
앞쪽에 50초반의 중년여인이 혼자 배낭을 푼다.
태극종주 나흘째라고 한다.
무거워 반찬을 버렸더니 허기가 지고 반찬이 그립단다.
꿀꿀이죽을 끓여 먹는 그 분에게 다가갈까 하는데
옆자리의 4명 일행과이야기를 나누니 끼어들지 않는다.
백두대간이니 태극종주니 고수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뒷산이라도 부지런히 다니지 뭐. 그러고 보니 무등산 간지도 오래 되었다. 장불재에서 내려오는 물은 다 마르지 않았을까?
챙겨 일어나니 8시 20분이다. 만복대는 잊고 반야봉에 다녀오기로 한다.노루목 오르는 길이 생각보다 길다.
뛰듯이 앞서가는 젊은이들이 부럽다.
난 천천히 간다. 9시 20분 쯤 노루목에 도착하여 배낭을 이정표 아래에
벗는다. 새끼 배낭을 떼어 물을 넣고 들쳐맨다.
모양이 우습다. 바위를 오르는데 벌써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피었다.
반야봉에는 사람이 많다. 삼각대에 돌을 매달아 놓고
웃옷을 말려놓기도 했다. 술도 간식도 가져오지 않았다.
심심하다. 아까 임걸령에서 본 고수일행은 심원 쪽으로 내려간다.
통제구간이라는데 가는 이들도 많다.
내가 지나야 할 길 중의 하나다
천왕봉은 보이지 않는다. 그쪽을 향하고 셧터만 눌러본다.
반야봉을 10시에 내려온다.
오를 때 보았던 꽃들이 반갑다고 인사한다.
바쁠 일이 없다.
노루목에서 배낭을 둘러매고 내리막길을 간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피하느라 길 옆으로 비켜서곤 한다.
임걸령에서 물을 마신다.
복숭아 과일 안주에 남은 술을 마신다.
더운 열기로 힘이 솟는다.
다시 오르막을 올라 길을 재촉한다.
더 먼길을 갈 건데 그랬나.
노고단 고개에 이르자 12시를 지나간다.
대피소의 취사장은 자리가 없다.
쏟아지는 햇볕 속에 깔개를 펴고 배게에 바람까지 넣어
눕는다. 다리가 시원하다.
지나는 사람들 때문에 잠자지 못하고 일어나 라면을 끓인다.
아침에 남긴 밥에 말아 먹는다.
지나는 이들이 '라면 먹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미안하지만 모자를 푹 눌러쓰고 국물을 마신다.
술도 보탠다.
성삼재까지 내려가는 길은 퍽퍽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이란 동물적인 것에서 얼마나 많이 떨어진 것인가?
길가의 꽃도 찍으며 서서히 그늘 쪽으로 걷는다.
차에 이르러 문을 여는데 너무 뜨거워 기다린다.
주차 영수증도 없는데 만원을 내란다.
어젯밤 천은사 매표소 그냥 넘어와 좋아했더니, 그도 아닌가?
나는 얼마나 돈에 매여 사는가?
시암재에서 등산화를 등산 샌달로 갈아신고, 내려온다.
고속도로 타지 않고, 김재수 교수님 송별 선물을 소개한 박영대가
소개해준 빈도림 밀랍꿀초를 찾아가보기로 한다.
곡성에서 삼기초 앞을 지나는데, 면민 체육대회한다고 더위 속에
사람들이 그득하고 길 양쪽도 길게 차가 주차되어 있다.
동면초등학교도 오늘 운동장 확장 기공식을 겸한 면민체육대회를
한댔다. 더운데 고생하겠다.
우리 교사들이란 지역의 방문자처럼 봉급만 받고 일하고 떠나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은지도 모른다.
대덕면 소재지 만덕초등학교 앞에서 미라를 생각하며
차를 왼쪽으로 틀어 길을 따라간다.
돈 많은 이들이 마을 가운데 큰 집을 지어 두었다.
계곡에서 피서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완만한 골짜기를 길게 올라도
빈도림꿀초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층위는 몇 단게나 될까?
담양에 그림그리는 작업실을 마련하겠다는 영대의 안내를
받아 다시 올 수 밖에 없겠다.
고개를 넘어 백일홍 화사한 길을 따라가니
연수원에서 온천 넘어가는 대덕 삼거리다.
이렇구나. 우린 의도하지 않은 곳에서 새로움을 얻는다.
길이란 것이 많이 가서 넓어졌댄다.
그 길이 어느 새 우리를 한 치 옆도 돌아보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도덕에 갇혀있는지 모른다.
송창욱은 '길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아니 준환이와 대원이가 했다.
우린 길을 잘 따라가고 있는가?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고 있는가?
독수정을 들르려고 남면 우체국 앞에 차를 세웠는데
초등학교 오르는 계단이 코앞이다.
학교에 오르니 교문에 선 동산의 철쭉이 마음대로 커 흐드러지고
벚나무 가지가 땅에 닿을 듯하다. 그 아래 몇 대의 차가 있고 돗자리에 여자들이, 남자들은 운동장에서 공놀이를 한다.
한바퀴를 돌다가 여기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양용석을 떠 올려 전화한다. 저녁 약속을 정하고 내려와 200미터 독수정을 찾아간다.
다리를 건너 숲이 우거진 구부러진 길을 잠깐 오르니 언덕 위에 독수정이 있다. 5공의 독재자와 성씨가 같아 그덕에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충민사나 독수정을 찾는 이는 그와의 인연을 모르다가 왔다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배롱나무와 소나무 팽나무 등이 아름드리 우거지고, 썩어가는 나무기둥을 보수공사했다.
거기에도 가족이 피서 중이다.
고서 사거리 통과하면서 포도사는 사람들인지 집으로 돌아가는 차들인지, 한참 밀리다가 창평쪽으로 운전한다.
명옥헌은 아름답다.
양용석과 감나무 집에서 오랜만에 왔다는 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보신탕을 먹고 왔다.
출처 : | 지리산(智異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