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대 황제들은 율령에 의해서 성문법을 규정했습니다. 중원을 둘러싼 격렬한 쟁투는 잔혹한 보복을 낳았고 잔혹한 형벌제도를 탄생시켰습니다. 이 잔혹한 형벌들은 중국의 식인문화를 정당화시키는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전세계에 유래가없는 황제의 명령에 의한 인간1의 고기를 먹거나 먹이게 하는 "식육의 형벌" 이 그것이며 그 잔혹한 형벌은 놀랍게도 성문법으로 규정되어 버렸습니다.예를 들어 주나라시대에는 중죄인에게 5가지 형벌을 내리는데 묵형, 비형, 궁형, 월형, 살형이 성문법으로 규정되었습니다. 묵형은 이마에 먹으로 죄인의 문신을 새기는것이고 궁형은 거세를 시키는 형이며 월형은 다리를 자르는형입니다. 사상가인 묵자는 묵형을 받았고 사마천은 궁형을 그리고 병법의 대가인 손자는 월형을 받았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그 형벌은 더 잔혹해지고 가짓수도 대폭적으로 늘어나 나중에는 여자의 생식기를 틀어막아 버리는 형벌까지도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식육의 형벌이 성문법으로 기록되어 실시되게 되며 이는 전 중국인의 식인풍습을 확산시키는데 기폭제 역활을 하게 됩니다.
2.중국의 역사는 살인의 역사
중국의 역사상 대규머적인 내란은 진시황제 이후 1920년까지 160차례이고 소비된 기간은 896년입니다. 즉 3년에 1년은 내란이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봉건영주간의 침탈전쟁은 448차례에 이르고 대규모 전쟁은 222차례입니다. 소비된 기간은 이루 말할수 없을정도지요. 근대에 이르면 이러한 양상은 더욱 격해집니다. 중화민국 정권수립이후 22년 동안 7백회의 내전이 발생했고 그중 사천성에서만 5백회이상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두고 모택동은 중국을 방문한 알바니아 군사대표단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중국인을 가르켜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 했는데 천만의말씀이다. 우리는 투쟁과 전쟁을 사랑하는 민족이다." 양계초라는 인물은 중국인을 육민(戮民)이라 칭했는데 이는 전란에 의한 살육사의 비율이 굉장히 높은 국민이란 뜻입니다. 내란과 기근이 덮칠때마다 소,돼지처럼 죽어가는것이 역사의 숙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은 1989년 천안문 사태에서 또다시한번 증명됩니다.
3.역사상 유래를 찾을수 없는 천재지변과 기근
등운특이란 사람이 지은 중국 구황사란 통계에 의하면 중군은 기원전 18년 부터 1937년 까지 수해, 한발, 메뚜기창궐, 우박, 태풍, 지진, 대설등의 전채만 5천 2백여차례가 있었다고 발표했습니다. 즉 평균 6개월마다 1차례의 재해가 일어났음을 의미합니다.
가혹한 형벌체계의 발전과 성문법화, 그리고 전란의 역사, 그리고 기근의 역사, 대개 심한 기근이 들었을때 전란이 발생하는점을 두고보면 그때의 식량사정이 어떠했을런지는 어렵지않게 짐작이 가시리라 생각되어 집니다. 중국 정사 중 사기(史記)를 비롯한 이십육사등에 기록한 전란, 기근, 형벌로 인한 식인풍습은 220여차례가 기록되고있고 자치통감, 속자치통감, 명통감, 문헌통고, 속문헌통고, 등등의 자료에 기록된 식인풍습까지 계산하면 거의 셀수가 없을정도의 식인사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