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이봉창 의거 78주년
1932년 1월 8일 오전 히로히토 일왕이 도쿄 요요기 연병장에서 신년 관병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행렬이 궁성 남쪽 사쿠라다문(門)에 다다랐을 때 20미터쯤 떨어진 경시청 정문에 서있던 젊은이가 수류탄을 던졌다. "꽝!" 두번째 마차에 떨어진 수류탄 폭발음과 함께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일왕이 탄 첫번째 마차가 간발의 차로 현장을 벗어난 직후였다.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김구 주석에게서 일왕 척살의 밀명을 받고 온 대한애국단 1호 이봉창이었다.
▶경찰이 우왕좌왕하다 쉰살쯤 된 일본인 남자를 체포했다. 그걸 보고 이봉창이 "그 사람은 아니다. 나다!"고 외쳤다. 다섯명의 경찰이 달려들자 이봉창은 또 외쳤다. "비겁하게 도망가지 않을 테니 난폭하게 다루지 마라." 일왕을 겨눈 이봉창의 거사는 표적을 비켜갔다. 그러나 궁성 앞에서 일본이 신으로 떠받드는 일왕의 목숨을 끊으려 했던 이 의사의 의거는 일제의 간담을 서늘케 하고 독립운동 진영의 기운을 크게 북돋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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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해 홍구공원에서 야채상을 하던 윤봉길은 이튿날 사람들이 신문을 읽고 술렁거리는 걸 보고 이 소식을 알았다. 신문엔 '조선인 이봉창, 일본 천황 저격'이라고 주먹만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곧 김구의 대한애국단에 입단해 4월 29일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 생일 축하 겸 승전 기념 행사장에 물통형 폭탄을 던졌다. 일본군 대장과 일본거류민단장이 즉사했고 제3함대 사령관 등이 크게 다쳤다. 기록 영화를 보면 1945년 미주리 함 함상에서 맺어진 일본 항복 문서 조인식에 지팡이를 짚고 다리를 절면서 나타나 맥아더 원수 앞에서 항복 문서에 조인하는 일본 외교부 장관이 나온다. 그가 윤 의사의 의거로 한쪽 다리를 잃은 당시 일본의 상해 총영사다.
▶장제스(蔣介石) 중화민국 총통은 이봉창 윤봉길의 활약을 접하고 "4억 중국인이 해내지 못하는 일을 한국인들이 해냈다"고 했다. 그가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에게 한국 독립을 약속하자고 우겨 이를 선언문에 집어넣은 것도 이 덕분이다.
▶이봉창이 거사 전 안중근 의사 동생 안공근의 집에서 김구 주석에게 대한애국단 가입 선서를 했고, 윤봉길도 상해에 처음 가서 안공근의 집에 머물렀다. 그게 다 우연이었을까. 오늘이 이봉창 의거 78년 되는 날이다.
조선일보 20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