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기술 ‘쓰임’에 내 가치관 더해 직업 탐색
“블록체인을 이용, 은행 없이 개인끼리 거래할 수 있는 신기술은 무엇일까?”
교실에서는 얼핏 과학 수업이 아닐까 싶은 내용의 질문과 답이 이어진다. 좀 더 지켜보니 다른 수업임을 알 수 있다. 신기술의 원리나 그를 응용한 문제 풀이 대신 ‘쓰임’에 집중하는 학생들 때문이다.
대림중 3학년 학생들의 <진로와 직업> 수업 풍경이다. 학생들은 근 한 달간 교과서는 물론 영상 자료와 미래 기술·직업 카드 등을 활용해 2030년의 사회를 바꿀 여러 요인을 살핀 후, 미래에 유용하게 쓰일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고, 이 기술을 활용하는 신규 직업을 찾아본 후, 기존의 기술·직업과 자신의 꿈을 더해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포스터로 표현했다.
포스터에는 빅데이터 전문가의 신체에 착용해 움직임을 파악하는 웨어러블 기기를 의학에 접목해 사람의 중독 증상이나 심리 문제를 해결하는 전문 치료사, 홀로그램 기술을 이용해 직접 만나지 않고도 환자의 치료 방법을 상담·설계해 의사와 협의하는 홀로그램 의료 코디네이터 등 학생들의 상상력이 고스란히 담겼다. 무엇보다 새로운 직업을 찾는 데 그치지 않았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포스터에 그림 말고도 하는 일, 되는 길, 관련 자격, 관련 학과, 직업 가치관, 내가 지금 기울여야 할 노력 등 이 담겨 있다.
김 수석교사는 “미래 기술과 직업을 고민하면서 1학기 수업에서 찾은 자신의 가치관을 더해 미래의 자신의 삶에서 어떤 가치를, 어떻게 실현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학생들은 이미 다양한 미래 기술을 접했거나, 실제 쓰고 있다. 이를 직업과 연결, 요리사가 아니라 ‘외국인 전문 한식당 컨설턴트’처럼 전문화·세분화·다양화되는 현대 직업의 원리를 게임을 통해 알려주면 자연스럽게 미래 직업을 찾고, 자신의 진로와 연결해본다.
이 과정에서 대학원까지 다닐 필요가 있는지, 해당 직군의 고위직 여성 인력 비율, 신입 사원의 평균 연봉 등을 찾아보며 구체적으로 진로 정보를 탐색한다. 직업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연관 분야 진로·직업 탐색 시 도움된다”고 설명한다.
실제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몰랐던 직업 세계를 알게 되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는 소감을 전한다. 김설령 학생은 “카드 게임을 통해 모르던 직업들의 이름이나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알게 돼 재밌었다. 생각보다 직업이 다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직업들을 더 알아보고 싶다”고 말한다. 이가빈 학생도 “과학 기술의 발달 등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는 데 영향을 주는 요인들까지 배워 뜻깊었다”고 밝혔다.
내 길 스스로 찾는 방법을 알려주는 교과
<진로와 직업> 교과는 2011년 고교에, 2012년 중학교에 도입됐다. 다른 교과에 비해 역사가 짧은 편. 또 선택 교과라 2017년 기준 전국 중학교 77.5%, 고교 44.5%에서만 수업을 진행한다. 성적을 P/F로 산출하고 있고, 채택하지 않은 학교는 주로 창의적 체험 활동 시간에 진로 교육을 하고 있어 교과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 여기에 자유학기제 도입 후 체험만 한다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진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금, 정규 수업에서 체계적인 진로 설계를 배우는 교과를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 교사는 “일부에선 특정 학교나 직업, 분야의 유·불리를 따져보거나 입시와 관련된 편협한 교육을 한다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로와 직업>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교과로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에 대한 대처법을 배우고, 개인의 성향이나 적성을 파악하면서 앞날을 설계하는 능력을 키우는 교과다. 잘 닦인 길이 아니라,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교과서만 봐도 기초 지식을 쌓고 활용하며 상위 개념을 배워나가는 다른 교과와 차이가 있다. 대개 ‘Ⅰ.자아 이해와 사회적 역량 개발’ ‘Ⅱ.일과 직업 세계의 이해’ ‘Ⅲ.진로 탐색’ ‘Ⅳ.진로 디자인과 준비’ 등 4단원으로 구성돼 나를 이해하고, 일과 직업을 구분해 세간의 정보를 파악하며, 내가 흥미 있는 분야나 직업을 찾아본 후 구체적인 방향을 설계하게 돼 있다.
교과 성격상 1·2학년보다 3학년 때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보다 구체적인 진로 설계를 할 수 있고, 고교 선택 시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 김 교사는 진로 탐색에 참고 자료가 되는 적성검사 결과 역시 생애 발달 주기를 고려하면 중3 정도의 연령이 돼야 신뢰성이 확보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한다.
실제 대림중은 3학년에 교과를 편성했으며, 교과서의 순서도 재구성해 Ⅰ단원-Ⅲ단원-Ⅱ단원 순으로 배운다. 나에게 중요한 세 가지 가치를 찾아 선언문을 만들고, 3학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해보는 것에서 출발해 다양한 고교 유형과 입학 방법까지 알아본 것. 또 미래 기술과 창직, 직업 윤리를 다루는 Ⅲ단원은 시사와 관련 깊고 학생의 진로 직업에 대한 시야를 넓혀준다는 특징이 있다. 확정되지 않은 진로에 대한 불안을 덜어주면서, 고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겐 서류 준비에까지 도움이 된다. 김 교사는 “진로 설계는 적성만큼 가치관이 중요하다.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관을 알면, 한결 쉽게 진로 방향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7월과 방학 기간에 여러 고교가 학과 체험, 찾아오는 설명회 등을 진행하고 고입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서류 준비를 시작한다. 사전에 어떻게 활용하고 대비할지 알아둘 필요가 있다. 이를 고려해 자신을 알고, 가치관을 찾는 수업 뒤에 고교를 중심으로 진로 탐색을 하도록 수업 순서를 바꿨다”고 밝힌다.
학생들도 이 같은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문지수 학생은 “댄스 등 대중문화에 관심이 큰데 수업을 통해 진로를 구체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 특히 무엇을 해야 더 나은,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김태우 학생은 “막연히 신체 능력를 활용할 수 있는 경호원 같은 일을 하고 싶었는데, 수업에서 재활 치료사나 체육 교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신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아직 특정 진로를 정하지 않았지만, 어떤 직업에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어떤 고교·대학에 가면 좋을지, 또 다른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은 없는지 생각할 수 있어 좋다”고 전한다.
TIP
□ 자녀의 가치관에 관심을 가져주세요 “꿈이나 진로가 곧 진학과 직업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진로 찾기만큼 자녀의 가치관을 파악하는 게 중요합니다. ‘자유’롭고 싶은 학생이 판사와 같은 공직에 설 경우 충돌하게 되거든요. 아직 어린 중학생이니, 가치를 표현하는 단어를 여러 개 제시하고 자녀가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끌리는 단어를 찾아보게 하면서 함께 가치관을 찾아보세요. 자녀를 파악하고, 진로를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겁니다.”
□ 모든 것을 기억하지 않아도 괜찮아 “외부에서 진행하는 대규모 진업·진로 체험은 학생들이 여러 부스를 돌아다녀야 해 내용을 다 기억하기 어려워요. 학교에선 3개는 꼭 기억하라고 하고 소감문을 작성하도록 해요. 관심 분야를 찾지 못한 학생에게도 이 과정은 유용해요. 결과물을 모아보면 기억에 남거나 재밌는 활동이 특정 분야인 경우가 많거든요. 적성이 드러나는 셈이죠. 개인적으로 참여할 때 학교 활동지의 양식을 참고해서 기록을 남겨보길 권합니다.”
□ 체험보다 쓸모 있는 기록을 지켜라 “자유학기제로 중학생들의 진로 활동이 많아졌지만, 많은 학부모들이 학교의 사후 활동이 부족하다고 인식해 안타까워요. 사실 절차상, 모든 진로 활동은 사전 활동-본 활동-사후 활동의 과정을 거쳐야 해요. 다만 학생들이 이런 내용을 가정에 잘 공유하지 않고, 학교에서도 시간상 수업 내에서 미처 완결을 짓지 못해 가져갔다 분실하면서 기록에서 사라지는 일이 많아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두면 대처할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권해주세요. 부모님도 아이의 인쇄물을 사진으로 남겨 둔다면, 기록도 남기고 자녀와 관심사를 공유하는 등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