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스토리문학 2016년 겨울호(통권97호) 발표작
가을밤 외 1편
김무늬
6호선을 타고 가다 삼각지역에서 환승을 하려는데
벤치에 두 신사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잠들어 있다
생각을 놔버린 사람에게는 질서란 의미가 없다
처해진 순간만이 법인 것이다
길게 묶여진 넥타이가 목을 조여올 때마다
세 살 배기 딸아이의 재롱이 눈에 선하다
8개월이 막 지나 산달이 다가오는
아내의 부은 다리가 가슴을 짓누른다
먹고 마시는 동안 그들은 이성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고개를 흔들어도 보았을 것이다
냉수의 힘을 빌어 부장의 시선을 놓지 않으려
제 몸을 차갑게 식혀도 보았을 것이다
진탕 술자리가 파하고 나서야
제 끈을 놓아버린 저 사내들
내장 속에 갇힌 굴욕들을 술이란 놈의 힘을 빌어
기워내고 또 기워냈을 것이다
돌아 갈 차표를 잃어버린 자에게는
시간만이 기대 할 수 있다
노쇠하신 부모님도 분신 같은 가족도 내려놓고
나로서 잠시 꿈을 꾸고 있다
나, 다시 돌아갈래
구멍
언제부터인가 구멍이 없어졌다
쥐구멍이 없어진 밤은 현란하다
끊임없이 유혹하는 편의점 불빛으로 덤이란 놈도 함께 사라졌다
구멍에서 사는 사람들은 구멍을 좋아한다
어쩌면 내가 구멍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나는 엄마 구멍에서 나왔고 우리는 모두가 구멍에서 나왔다
뉘 집 찬장에 밥그릇이 몇 개인지
수저통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가늠할 수 있는 소문의 근원지 구멍가게
옆집에 이사 오는 날 시루떡 한 접시 가져와 정을 나누던
그것이 사람이 사는 일 아니던가
콩나물 오백 원어치 두부 오백 원이면 아 상이 훤해지던 그런 날
밤낮없이 잠을 자지 않는 젊은이들로 인해 구멍이 멀어지니
아, 시대의 젊은이들은 진정한 사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나무도 구멍이 있어서 숨을 쉬고
내게도 구멍이 있어서 사람들이 좋아한다
구멍이 없는 사람은 외롭다
스스로 구멍을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구멍을 내어주자
굳게 닫힌 창호지 문에 침을 발라서 살짝히 구멍을 내어보면 안다
외로움에 얼마나 치를 떠는지를
긴 쇠파이프 담뱃대 길게 물고 앉아만 있어도
위엄이 되는 골목길의 구멍가게 할아버지
로 같은 골목길 구멍가게를 찾아본다
아니, 엄마의 구멍 속으로 찾아들어가 석 달 열흘만 살다 나오고 싶다
김무늬
계간 <스토리문학> 등단, 고려대학교 평생교육원 시창작과정 수료
한국스토리문인협회 회원, 다울문학 동인, 문학공원 동인
2016년 제6회 시부문 스토리문학상 수상
동인지 『별 세다 잠든 아이』, 『달리는 미술관』 외 다수
이메일 : apfh007@daum.net
첫댓글 하튼 무늬선샘 구멍이야기나
그외 가끔 재미나 ㅎㅎㅎ
ㅎㅎ구멍은 소중해요 어떤 것이든 잘 지내시지요 선생님 ㅎㅎ건강하시고 새해는 더 아름다워지시길 요 보고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