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장
엄니 꽃 — 추수 들녘의 삼형제(3)
세 개의 낫이 피워 낸 한 송이 꽃 -
어머니가 심어 주신, 세월이 흘러도 시들지 않는 사랑
벼를 다 베었다고 해서 추수가 끝나는 것도 아니었다.
논에 베어 놓은 벼는 며칠 동안 햇볕에 말렸다.
잘 마른 볏단은 지게에 지고 집 마당으로 옮겼다.
마당 한가운데 볏단이 산처럼 쌓이면, 시간이 날 때마다 타작을 했다.
처음에는 빗살처럼 생긴 도구 사이로 벼 이삭을 훑어 낟알을 떨어뜨렸다.
나중에는 발로 미싱을 돌리듯 탈곡기를 밟아 회전시키며 벼알을 털었다.
볏단을 위에서부터 하나씩 걷어내다 보면 가끔 그 안에서 쥐집이 나왔다.
눈도 뜨지 못한 새끼 쥐들이 빨간 몸을 드러낸 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그 주변에는 곡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으니 쥐들에게는 우리 집 마당이 천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게 쥐는 한 해 동안 힘들게 농사지은 곡식을 축내는 존재였다.
어른들은 새끼 쥐들을 없애고, 곳곳에 쥐약을 놓았다.
어린 내 눈에는 그 새끼 쥐들이 참 불쌍했다.
눈도 뜨지 못한 채 어미의 젖을 기다리고 있을 텐데.
하지만 농촌에서 사람과 쥐는 오래도록 같은 곡식을 두고 살아온 숙명 같은 사이였다.
서로 쫓고 숨고,
먹고 막고,
그렇게 함께 살아왔다.
탈곡이 끝나면 논은 다시 새로운 계절을 준비했다.
소를 앞세워 논을 갈아엎고 보리를 심었다.
누렇게 빛나던 가을 들판은 다시 갈색 흙으로 뒤집히고,
겨울이 오면 그 위에 눈이 내렸다.
눈 덮인 보리밭 사이로 파란 보리순이 올라오면 그것을 뜯어 국을 끓이기도 하고 보리떡을 만들기도 했다.
된장을 풀어 끓인 보리국에 꽁보리밥을 말아 먹던 그 맛도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계절은 쉬지 않고 돌았다.
벼를 베고,
타작을 하고,
보리를 심고,
지나 다시 봄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계절의 한가운데에는 늘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형제를 사랑하라고 길게 말씀하지 않으셨다.
“동생을 도와라.”
“형제끼리 사이좋게 살아라.”
그런 말을 귀가 아프도록 하신 기억도 없다.
그저 우리에게 각자의 몫을 나누어 주셨다.
그리고 우리가 그 몫을 다한 뒤 무엇을 하는지 가만히 보셨다.
누가 먼저 끝내는지,
누가 뒤처지는지,
먼저 끝난 사람이 혼자 집으로 오는지,
아니면 늦은 동생을 기다려 주는지.
어머니는 어쩌면 알고 계셨는지도 모른다.
형제 사랑은 말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일하고,
같이 땀 흘리고,
같이 기다리고,
마지막에 같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배우는 것이라는 것을.
이제 나는 고향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살아간다.
가을이 오면 뉴욕에서도 나뭇잎이 물들고 바람이 서늘해진다.
그럴 때면 문득 내 눈앞에 고향 갯머리의 황금 들판이 펼쳐진다.
이슬 머금은 벼,
길가의 코스모스,
파란 하늘을 가르는 잠자리,
풀숲의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우리 뒤를 졸졸 따라오던 강아지 한 마리.
그 가운데 낫을 들고 서 있는 어린 삼형제가 보인다.
한 아이는 이미 자기 몫을 끝냈다.
다른 아이도 거의 끝나 간다.
그리고 저만치 막내는 아직 벼를 베고 있다.
그러면 앞선 두 아이는 집으로 가지 않는다.
말없이 막내 쪽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세 개의 낫이 다시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각,
사각,
사각.
그 낫질 소리가 지금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다.
나는 이제야 안다.
우리가 그날 벤 것은 벼만이 아니었다.
우리는 그 들판에서 책임을 배웠고,
기다림을 배웠고,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어쩌면 그것도 어머니가 우리 마음속에 심어 놓은 한 송이 꽃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몫을 나누고,
늦은 사람을 기다리고,
서로의 등을 씻어 주고,
같은 밥상에서 꽁보리밥을 나누어 먹으며 피어난 꽃.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시들지 않는 꽃.
내가 고향 갯머리에서 받은 가장 큰 유산 가운데 하나.
그것이 바로
추수 들녘에서 우리 삼형제의 손으로 피워 낸
또 한 송이의 엄니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