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지 : 신열도 급통훈대부행 사헌부 장령 지O교자 - 순치 9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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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치 9년 : 1652년
황기 2312년 히브리력 5412~54131652년은 월요일로 시작하는 윤년이다.
청(淸) 세조 순치제(世祖 順治帝) 9년
조선(朝鮮) 효종(孝宗) 3년
효종(孝宗, 1619년 ~ 1659년, 재위: 1649년 ~ 1659년)은 조선의 제17대 임금이다.
휘는 호(淏), 자는 정연(靜淵), 호는 죽오(竹梧)이며, 사후 시호는 효종선문장무신성현인대왕(孝宗宣文章武神聖顯仁大王)이다. 이후 존호가 더해져 정식 시호는 효종흠천달도광의홍렬선문장무신성현인명의정덕대왕(孝宗欽天達道光毅弘烈宣文章武神聖顯仁明義正德大王)이다. 청나라에서 내린 시호는 충선왕(忠宣王)이다. 인조와 인렬왕후의 둘째 아들이다
통훈대부 [ 通訓大夫 ]
조선시대 정삼품(正三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정삼품의 하계(下階)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보다 아래 자리로 당하관(堂下官)의 최상이다. 경국대전(經國大典)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과 의빈(儀賓: 임금의 사위)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해당 관직으로는 종친부(宗親府)·돈령부(敦寧府)·봉상시(奉常寺)·종부시(宗簿寺)·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사복시(司僕寺)·군기시(軍器寺)·사섬시(司贍寺)·군자감(軍資監)·장악원(掌樂院)·관상감(觀象監)·전의감(典醫監)·사역원(司譯院)·선공감(繕工監)·사도시(司 寺)·사재감(司宰監)·제용감(濟用監)·내자시(內資寺)·사섬시(司贍寺)·예빈시(禮賓寺)의 정(正), 의빈부(儀賓府)의 부위(副尉)·첨위(僉尉), 규장각(奎章閣)의 직각(直閣), 교서관(校書館)의 대교(待敎),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의 직제학(直提學),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보덕(報德)·겸보덕(兼輔德),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의 좌유선(左諭善)·우유선(右諭善), 성균관(成均館)의 좨주(祭酒), 춘추관(春秋館)의 편수관(編修官), 승문원(承文院)의 판교(判校), 통례원(通禮院)의 좌통례(左通禮)·우통례(右通禮), 사옹원의 제거(提擧), 팔도(八道)의 대도호부사(大都護府使)·목사(牧使) 등이 있었다.직각, 대교, 직제학, 편수관은 모두 예겸(例兼)하였다.
처(妻)에게는 숙인(淑人)의 작호(爵號)가 주어졌다.
사헌부장령 [ 司憲府掌令 ]
조선시대 사헌부(司憲府)의 정사품(正四品) 관직으로 정원은 2원이다.
감찰(監察) 업무를 담당하였다.1401년(태종 1)에 시사(侍史)를 고친 이름으로 장헌시사(掌憲侍史)라 하고, 대사헌(大司憲: 從二品) 이하 집의(執義: 從三品)·장령·지평(持平: 正五品)까지의 사헌부 소속의 관원을 통칭 대관(臺官)이라고 하였으며, 또 장령과 지평을 별칭 대장(臺長)이라고 하였으며, 학문(學問)과 덕행(德行)이 뛰어나 이조(吏曹)에서 대관으로 추천(推薦)된 사람을 남대(南臺)라고 하였다.
모든 대관은 사헌부의 청환직(淸宦職)으로, 문과 급제자 중 청렴 강직하여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옳다고 믿는 바를 굽히지 않고 직언할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하므로, 승문원(承文院), 성균관(成均館), 홍문관(弘文館) 등을 거친 젊고 기개가 있는 인재들이 임명되었는데, 그만큼 직무가 막중하기 때문이었다. 이조(吏曹)의 전랑(銓郞)과 함께 전 조선시대의 사족사회(士族社會)의 틀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였다.
신열도 [ 申悅道 ]
1589(선조 22)∼1659(효종 10). 조선 후기의 문신
• 이칭별칭 자 진보(晋甫), 호 나재(懶齋)
• 출생-사망 1589년(선조 22) ~ 1659년(효종 10)
• 본관 아주(鵝洲,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
• 저서(작품) 선사지(仙?志), 문소지(聞韶志)
• 대표관직(경력) 예조정랑, 사간원정언, 울진현감
본관은 아주(鵝洲). 자는 진보(晉甫), 호는 나재(懶齋). 수(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호조참의 원록(元綠)이고, 아버지는 흘(仡)이며, 어머니는 전력부위(展力副尉) 박륜(朴倫)의 딸이다. 교리 달도(達道)의 동생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10여 세에 경사(經史)에 통달하고 1624년(인조 2)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606년(선조 39)에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7년 정묘호란 때에 인조를 호종하였다. 이듬해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뒤 예조정랑ㆍ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1638년 울진현감을 지내고, 1647년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어 민생에 대하여 상소하였고 뒤에 능주목사를 지냈다.
저술활동
저서로는『선사지(仙槎志)』와『문소지(聞韶志)』나재문집(懶齋文集 )이 있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국조방목(國朝榜目)』『학원집(鶴源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