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향 (名香)
ㅡ홍천 척야산 김창묵어르신 ㅡ
글 德田 이응철
신선한 녹음이 펼쳐지는 오월 초입새였다.
산과 들이 푸른빛깔 속에 담뿍 젖어, 온갖 연두빛과 푸르름 그리고 꽃들의 색깔들이 한껏 자기 위치를 알리더니 이제 하나의 푸르름으로 변해간다.
맹하의 계절이 사립문 밖을 서성인다. 봄나들이 겸 고향을 박차고 달려간 곳은 어떤 향이 기다릴까? 신록으로 성장한 대지의 특유한 내음일까, 아니면 멀리서 불어오는 꽃나무 향기일까? 꽃동산에서 온갖 골짜기나 정상에서 어우러져 풍기는 향기 그 향연이 전부일까?
곡우(穀雨)가 지난 지 얼마 안 되니 아직은 봄날이다. 봄바람이 상큼하게 스친 날이었다. 미세먼지 티끌 하나 없는 청아한 봄날, 연분홍 철쭉이 절정에 불타오르던 홍천 꽃동산을 찾았다.
1919년 4월 3일 김덕원 의사(義士)와 함께 주민 3천여 명이 일제에 항거해 만세운동을 벌인 홍천 내촌면은 삼남 지방의 동학혁명 버금가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해발 403m 높이에 총길이 3141m의 이곳 척야산 15만 평을 사비로 매입 척야산 문화수목원을 조성 아름다운 동산을 탐방객들에게 무료로 개방하고 민족정기 광장을 건립하시어 차세대들에게 민족정기를 고취하는 일에 왕성한 노익장을 펼치신 분이 계신다.
남강(南江) 김창묵 어르신-. 1922년생으로 올해 춘추가 102세지만 나지막한 목소리로 찾아온 탐방객들에게 일일이 안내하신다. 증언이다. 헌칠한 키에 항상 둥근 모자를 쓰시고 겸손하시다. 독립투쟁 항일의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또박또박 전하신다. 그 신념이 전해온다. 간간이 이룩하신 업적을 되짚어 여쭈면 저는 남대문시장에 장사꾼이라며 겸허하시다.
동찬기업을 설립하시고 현재 대표이사, 회장으로 항상 고향 후손들 손길이 바쁘시다. 남강 선생님의 나눔은 실로 놀랍다. 해마다 이 지역의 고교생들이 대학 합격의 경우 빠짐없이 장학금을 지원해 오신다.
겸손으로 나눔을 설명하실 때다. 문득 필득기수(必得基壽)란 사자성어가 떠올랐다. 큰 덕(大德)을 지니게 되면 반드시 그에 걸맞은 지위, 명성과 긴 수명까지도 얻게 된다는 중용의 말씀에 수긍이 간다.
오늘 문학인들이 찾아와 고마워서 오랜만에 가파른 등산로를 함께 오르신다며 덕담을 주신 남강 어르신의 서린 기운을 가까이서 느꼈다. 옥체가 정정하시다. 수많은 돌비석에 새겨진 애국 글귀들이 남강 어르신의 숭고한 정신에서 몸소 만든 것이다.
청로각(淸露閣)에 도착하여 오가는 탐방객들 인사를 일일이 받으신다. 오르는 정자 난간 간격이 넓다고 어느 탐방객이 고하자 즉석에서 시정, 안정을 위해 뒷편에도 널판지로 막겠다고 하시며 수행인에게 전한다.
1919년 4월, 5개 면에서 천여 명이 만세운동을 벌이고 홍천 서석 자작 고개 전투에 참여한 민족 애국 의사 김덕원 님의 방계 조카가 곧 남강(南江)이시다. 민족정기의 공원인 척야산 정상까지 아름다운 꽃길과 정자 비문들이 여러 코스에서 반긴다.
-민중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고 싶거든 물걸리에 와서 보아라! “척야산 푸른 솔, 용호강의 맑은 물, 바람 소리, 산새 소리 풀 내음 꽃향기에 젖어보세요”라고 비문은 전한다. 매일 탐방객들을 맞는 남강 어르신-. 정작 하루종일 거하실 사무실은 비좁은 컨테이너 두어 개가 전부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할 일은 많은 데 시간이 없음을 비유하는 덧없는 삶을 흔히 일모도원(日暮途遠)이라 하지만, 이 어르신에겐 기우였음을 실감한 날이다. 새로 튼 잎이 한창 흐드러질 때 초록의 내음까지 특이한 오월의 향기이다. 척야산 사방에서 어우러지는 초목들이 내뿜는 피톤차드의 성스런 향기, 그리고 주차장 위쪽 광장에 실제 크기의 거대한 광개토대왕비의 또렷한 비문, 발해 석등(石燈)의 재현, 이순신, 안중근, 윤봉길, 김구 애국선열 어록비에서 뿜어나오는 구국의 향기가 종일 메마른 내 영혼을 촉촉이 적신다.
백 세를 훌쩍 넘기시며 만년에 척야산과 살아가는 애국자 남강(南江) 어르신ㅡ!
평생 나라를 위한 붉은 마음에 잘못 이루시는 임이시여! 무종교라 답하시며 모든 종교의 참뜻을 존중한다며 후한 오찬까지 대접받고 손을 흔든 어르신ㅡ. 검소하시게 항상 단벌 옷차림으로 내일도 컨테이너 사무실로 출근하시리라. 베풀고, 나누고, 나라 걱정하며 탐방객을 맞이하며 노 저어 가는 하루에 만족하신다.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라 술잔을 기울이지만, 요즘 말과 행동이 인터넷과 SNS를 타고 순식간에 지구 반대편까지 날아가는 인향만리(人香萬里)의 시대가 아닌가? 구국의 성지에 오늘도 후손들에게 국가관을 재무장시키는 남강(南江) 김창묵 어르신의 척야 산지기, 동창만세운동 기념사업회장의 향(香)이야말로 진정 우리 강원도의 명향(名香)이 아닐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