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이오(6.25) 날, '안산자락길'을 트래킹 하는 날이다. 2014년도 납회 때에는 20명이 넘는 친구들이 점심식사 후 오후에 산책을 했던 산이다. 아침일찍 서둘러서 교회에 가 예배를 보고늦지않겠끔 배낭을 재빨리 메고 버스정류소로 나왔는데, 꼭 챙겨와야 할 귀중품들을 빠트리고 다시 집으로 갔다가 오는 바람에 약 10여 분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산우들껜 죄송한 일이다.
독립문역 4번출구로 나서니 먼저 온 산우들이 기다리고 있다. 안산자락길의 트래킹 출발점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다. 지금의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7년 일제가 우리나라 애국지사들을 투옥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처음 이름은 경성감옥이었으며, 이후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 서울구치소 등으로 이름이 변경되었단다. 1988년부터 주변에 공원을 만들기 시작해 1992년에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치하 항일독립투사들이 고문을 당했던 현장이었고, 무악재 넘어 홍제동 안산 기슭은 억울하게 유명을 달리했던 사형집행장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몇 년전 단순히 산책하러 다닐 때엔 서대문형무소라는 것만 기억하며, 별 생각없이 지나친 경우가 많았는데, 역사의 족적을 더듬어 보면 서글픈 역사의 흔적을 안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안 후에 모처럼 가서 보니 속마음이 금새 숙연해 진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앞 통곡의 미류나무를 배경으로 단체 인증샷을 남기고 곧바로 출발이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 사이길을 지나 이진아기념도서관 옆으로 해서 자락길로 올라섰다. 한 군부대의 옆에 있는 안산자락길 안내도에서 자락길의 일주코스를 점검하고 다시 출발이다.
안산의 둘레길(자락길)은 노인이나 어린이, 장애인 등 보행약자도 안산에서 삼림욕도 즐기며 편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조성된 경사가 완만한 숲길이다. 장애인, 노약자 등 모든 사람들의 건강한 삶을 위해 서대문구에서 조성한 무장애의 명품 숲길이다.
도시의 중심에서 숲이 주는 혜택은 그야말로 자연이 주는 힐링 중에서도 최고의 힐링이다. 그 최고의 힐링을 수많은 서울시민에게 주는 곳이 서울 한복판에 있다. 무악재를 중심으로 시내 방향으로 오른쪽에 있는 안산이다. 서대문구청에서는 산 주위 깊은 숲길을 나무데크로 길을 만들고, 본래 등산길을 자연의 숲길을 그대로 살려서 만들어 놓은 7km의 친환경 안산 둘레길이자 자락길이다. 독립투사들의 안내판이 독립공원이나 길 옆에 걸맞게 많이 비치되어 있다.
서울에서 산행을 위한 산을 이야기할 때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 청계산 등을 주로 많이 찾고 있으며, 남산, 북악산, 인왕산에 대해 많이 알고 있지만,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鞍山)은 잘 알지를 못한다. 안산은 무악산, 길마재로도 불리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난, 몇년 전에만 하여도 안산을 수차례 다닌 적이 있다.
최근에는 삶의 질이 높아지고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며 안산에도 북한산둘레길과 같은 안산자락길이 큰 호응을 받고 있다. 2014년 3월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안산자락길을 3월달의 추천길로 선정하였다. 그만큼 품격있는 길로 인정을 했던 한 때가 있었다. 2013년 11월, 개통된 안산자락길은 총연장 7km로서 계속 거닐다 보면 다시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고 보행약자도 편하게 산책을 할 수 있는 순환형 숲길로 만들어진 것이 특징이다. 폭 2m, 경사도 9% 미만으로 만들어져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고,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바닥을 평평한 목재데크나 친환경 마사토, 굵은 모래 등으로 조성하였다.
또한 휠체어 교차에도 큰 불편이 없도록 50~100m마다 폭 3~4.5m 쉼터도 만들어져 있었다. 숲길 한 바퀴를 돌아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휠체어로도 2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이 길에서는 소나무 외에 메타세콰이어, 아까시나무, 잣나무, 가문비나무 등으로 이뤄진 숲을 즐길 수 있으며, 흔들바위 너와집쉼터, 북카페, 숲속무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도 만날 수가 있다. 또 날씨 좋은 날, 자락길의 몇 군데 전망대에서는 인왕산, 북한산, 남산, 청와대가 한 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경을 감상할 수가 있다.
나무테크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한 참을 가다보니 전망대가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앞에 보이는 인왕산과 북한산을 바라보며, 작이표 견과류와 한 총장표 사과로 입맛을 다시고 종훈 친구가 선물한 앵두와 보리수의 발효식초를 시원한 냉수를 타서 한 잔씩 마시고, 다시 걷기를 계속하였다.
한 시간쯤을 걸었을까? 너와집쉼터를 지나 또 하나의 전망대를 지나면 길 옆에 박두진 시비가 있다. 이 시비에는 "푸른 숲에서"라는 박두진 선생의 시를 높이 2m 10cm, 폭 1.2m 크기의 세 개의 비석에다 새겨 놓았다. 동반시로 선정된 "푸른 숲에서"가 새겨진 시 앞에서 금년들어 처음 참석한 근호 산우에게 동반시 낭송을 권하자, 근호 산우는 낭랑한 목소리로 시를 낭송하였다.
"푸른 숲에서" / 박두진
찬란한 아침 이슬을 차며
나는 풀숲 길을 간다.
영롱한 이슬들이 내 가벼운
발치에 부서지고,
불어오는 아침 바람 - 산뜻한
풀 냄새에 가슴이 트린다.
들장미 해당海棠꽃 시새워 피고,
꾀꼬리랑 모두 호사스런 산새들이
자꾸 나를 따라오며 울어준다.
머언 산엔 아물아물
뻐꾹새가 울고,
- 금으로 만든 날갯죽지...
나는 이런 풀숲에 떨어졌을
금 날갯죽지를 생각하며, 옛날 어릴 적 동화가 그립다.
- 쫓겨난 왕자와 공주의 이야기 -
떨기 고운 들장미를 꺾어
나는 훈장처럼 가슴에 달아본다.
흐르는 물소리와
산드러운 바람결
가도 가도 싫지 않은
푸른 숲속 길.
아무도 나를 알아 찾아주지 않아도,
내사 이제 새삼 외로울 리 없어...
오월의 하늘은
가을보다도 맑고,
보이는 곳은 다아 나의 청산
보이는 곳은 다아 나의 하늘이로세.
박두진 선생은 서대문구와 관련이 깊은 시인이다. 이화여대, 연대 교수를 지내고 연희동에서 40년 이상 거주한 서대문구의 토박이로 그는 아마도 안산을 오르며 자연의 오묘함과 자연의 신비함을 노래하였을 것이다. 박목월, 조지훈과 함께 청록파로 잘 알려진 박두진 선생은 60여 년간 자연, 인간, 사회를 노래하며, 한국 시단의 거목 역할을 했다. 시비 건너편에는 장수정(長壽亭)이 있어서 잠시 쉬어갈 수가 있었다.
박두진 선생의 시비가 있는 길 맞은편의 정자 옆에는 나무판에다 쓴 박노해 시인의 시 "너의 하늘을 보아"라는 시판이 세워져 있다. 잠시 발길 멈추고 시를 낭송해 보았다.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다시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워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 시인은 전남 함평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장흥, 벌교 등지에서 자랐다. 15세때 상경하여 선린상고(야간)를 졸업, 섬유·금속·정비 노동자로 일했으며, 경기도 안양에서 서울 개포동까지 운행하는 98번 버스를 몰기도 하였다. 유신 말기인 1978년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고, 사회주의 혁명을 목적으로 한 남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의 중앙위원으로 활동하다 1991년 3월 10일 안기부에 검거가 되었다. '반국가단체 수괴'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며, 1998년 8월 15일 정부수립 50주년 경축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석방이 되었다.
얼마를 걷다 보니 소나무 숲길, 잣나무 숲길, 메타세콰이어 숲길로 이어진다. 전남 담양이나 남이섬, 그리고 서울에서는 양재천 북길, 양재 시민의 숲, 하늘공원 아래의 월드컵공원에 메타세콰이어의 길이 있다. 이처럼 길가나 공원에다 심은 것은 가끔 보았어도 산기슭에 군집하여 자라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안산자락길은 더욱 운치가 있어 보인다. 메타세콰이어 숲속으로 난 테크길에 숲이 햇살을 가린다.
메타세콰이어 길은 싱그러운 공기가 살갗을 감싸는 느낌이다. 줄기가 쭉쭉 뻗은 메타세콰이어 숲길을 지나면 숲속무대가 나온다. 의자와 테이블이 놓인 쉼터다. 제법 넓은 무대여서 공연도 가능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안산자락길 숲속에서 무대를 만난다는 것도 뜻밖이었다. 제법 많은 사람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쉼터의 의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떡을 내어 놓은 산우가 있다. 막걸리라도 한 잔 마시면 한결 더 좋을텐데, 오늘 안산 트래킹은 모두가 그냥 걷고만 싶었던 모양이다. 숲속무대 쉼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곳 메타세콰이어숲 쉼터는 이따금 공연장으로도 활용되는 만큼 안산에선 아주 넓은 쉼터이며 주변환경이 아름답다. 의자에 앉아서 쉬는 산객들은 서로서로가 가지고 온 야식들을 먹으며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능안정'(陵安亭)이란 정자에 왔다. 몇년 전에도 와 잠시 쉬며 머문 곳이기도 하다. 위에는 '능안정의 유래'가 있다. "영조 26년(1750년) 사도세자의 장남 의소(懿昭)가 세자로 책봉되였다가 사망으로 이곳 북아현동에 장사되였다. 왕의 신분을 갖춘 사람의 묘를 능이라 칭하여 그 후 북아현동을 능안(陵安)이라 전해져 왔다"라고 되어있다.
1948년에 서삼릉(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37-1번지)으로 이장했는데, 그후 중앙여고를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으나 그런 사실과 이곳에 멀리 떨어진 정자이름 '능안정'과는 줄거리가 애매하다.
안산자락길을 걷다 보면 안산 정상(봉수대)으로 올라가는 길을 만날 수 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데크길이 아니라 일반 등산로다. 흙길, 바윗길이 섞여 있다. 오르막길에는 계단도 있다. 안산 봉수대에 올라가면 시야가 훤하고 서울시내를 볼 수가 있다. 현재의 봉수대가 있는 곳이 '무악산동봉수대터' 이다. 조선시대에는 동쪽과 서쪽 두 곳에 봉수대가 있었다고 한다.
봉수대에 올라서서 서울을 내려다 보면 한눈에 담기가 벅차다. 남쪽에는 한강이 보이고 용산, 여의도, 목동 등 서울의 남부지역에 빌딩숲이 펼쳐진다. 멀리 관악산 줄기도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남산이 보이고, 명동쪽에는 높은 빌딩이 보이기도 한다. 북쪽으로는 서울성곽이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인왕산이 보인다. 북한산도 희미하게 보인다. 날머리는 서대문독립공원 입구의 순국선열 '현충사'의 옆으로 내려왔다.
오후 1시 30분, 뒤풀이 장소인 옛 행촌동의 '동영숯불갈비' 식당에 도착했다. 한 총장은 미리 전화를 하였는지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승렬이 산우가 한 번씩 들렸다며 추천을 하였단다. 막걸리라도 준비를 했었으면 안주로는 가오리무침과 과메기가 그만인데, 문형과 해황 산우는 뒤풀이 때에 내어 놓는다. 점심식사 때에는 갈비탕에 술 안주가 그득하다.
막걸리와 소·맥주를 한 잔씩 하며, 한 총장님은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협찬을 해 주신 산우들에게 감사를 표한다. 지난번에 선물이 남아 주지를 못한 산우들에게 큼직한 젓가락을 선물로 돌린다. 다음 산행은 "수락산"('서울둘레길1코스')임을 확인하고 많은 참석을 요청하며 16시까지 산행계획을 잡았으니 당구를 좋아하는 산우들은 당구장에 가시고, 노래를 좋아하는 산우들은 노래연습장엘 가자고 한다.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는 네 산우들은 영천시장옆의 통일노래연습장을 찾아가 1시간 동안 노래를 하였다. 약 2시간50분 동안 안산자락길의 구간구간마다 아카시나무, 가문비나무, 잣나무, 메타세쿼이어 등이 골고루 심어져 있어 숲내음, 피톤치드가 활력도 주었고, 숲 그대로의 힐링 산책을 하였다.
건강에 제일 좋다는 걷기 운동을 적당히 한 것 같아 상쾌한 기분이었다. 무더위가 시작되는 여름철에 다음 산행때에도 산우들 모두가 즐거운 산행이 되시길 빌면서 안산자락길 산행기를 맺는다.
2017년 6월 27일 김종화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