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학의 풍경
박지원
고등학교에 다닐 때, 네모난 교실의 좁디좁은 책상 앞에서 나는 대학에 다니는 상상을 했다. 당시 내 꿈은 철학과에 가서 공부다운 공부를 실컷 해보는 것이었다. 하필 밥 빌어먹기 십상인 공부를 하려고 하냐는 타박을 받기도 했지만, 캠퍼스 벤치에 앉아 사색에 빠진 내 모습을 그려보면 수능 문제집을 풀면서도 가슴이 벅차오르곤 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다 보니, 철학과 대신 사범대에 진학하게 되었다. 지금은 내심 좋은 국어교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고, 이 선택에 후회는 없다. 하지만 지금 다니는 학교가 돈이 그나마 적게 드는 국립대이기 때문에 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싶지는 않다. 안타깝게도 대학생활은 책상 앞에서 그린 꿈과는 너무나 다른 날카로운 현실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일 년 동안 나에게는 여러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내 또래의 서민층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같은 마음일 것이다. 사실 대학에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다. 실제로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대학에 가는 것’이 문제였지 ‘대학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막상 대학생이 되고 보니 손에 잡히는 것은 얼마 없었다. 그런데 감당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는 갑자기 늘어났다. 한사람의 성인으로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제쳐두고서라도, 한달 생활은 어떻게 해야 할지, 미래의 밥벌이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그에 비해 우리들 개인의 지적, 사회적 성숙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종전보다 더한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인생의 주인공이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스무살, 아이도 어른도 될 수 없는 우리들은 자의 혹은 타의에 의해 점점더 무기력하고 자기중심적인 20대가 되어가고 있다.
나를 포함한 지금 대학생들의 내면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많이 두럽고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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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이 더 이상 학문의 장이 아니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사실 학생, 교수 할 것 없이 강의 자체를 학점을 주고받기 위한 형식적인 연극 정도로 여기고 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학에 가는 목적이 대학 졸업인 것이다.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대학에서도 상대평가를 기본으로 한다. 또 경쟁을 해야 하다니. 아무리 흥미로운 과목이라도, 열심히 공부를 해도, 옆에 앉은 아이보다 처지면 ‘허당’이다. 따라서 시험기간이면 좋은 학점을 얻기 위한 때아닌 전쟁이 일어난다. 학생들은 교수님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애쓰고 시험기간이 되면 서로 필기 공책 빌려주기를 꺼려하는 일도 다반사이다. 얌체 같은 짓이라 넘기려니 씁쓸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거의 모든 학생은 이렇게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강의를 듣고, 교수는 그에 적합한 만큼의 정성만으로 강의를 하고 학생을 평가한다. 대학수업에서는 과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실제로 전문자료나 책을 뒤져 가며 주어진 과제를 혼자 해결하는 과정에서 얻는 것도 적지 않다.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 때로 밤까지 새우는데 정작 담당 교수님이 그 과제를 끝까지 읽었으리라는 확신은 들지 않는다. 제출한 과제에 대한 평가는 학기말 성적이 되어 돌아온다. 어디가 잘되었으며, 오류를 범한 곳은 어디며, 보완할 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지도는 거의 기대하기 힘들다. 중간.기말시험 또한 마찬가지이다. ‘왜’ 이러한 결과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교수님도 학생도 이러한 사실을 서로 따지지 않는다. 모두가 원하는 것은 수업을 통해 배우고 되새기는 과정이 아니라, 평가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굳이 수치상 평가가 아니더라도 취지에 도움이 될 강의, 안될 강의, 임용고사에 나오는 과목, 나오지 않는 과목 등에 대한 철저한 계산 아래, 강의를 듣는 학생들의 태도는 달라진다. 교수님은 이런 학생들의 눈치를 보고 학생은 성적을 결정짓는 교수의 눈치를 보고, 대학에서 사제지간이란 이렇듯 갈수록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관계가 되어가는 것 같다.
대학은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운영되는, 일종의 교육 기업이다. 입시철이 되면 소속 대학을 홍보하기 위해 고등학교에 몸소 찾아가는 교수들의 고충도 이해가 된다. 작년에 우리 학교에서는 수십명의 비정규직 교수들이 단체로 해임된 일이 있다. 대부분 무사히 복직되긴 했지만 개강 일주일 전 수강신청이 모두 끝난 시점에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그 파장이 컸다. 대학의 시간강사들은 겨우 중.고등학생 과외비밖에 되지 않는 돈을 받고 수업을 한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다. 대학교수라는 명예로운 이름표를 달고 있지만, 결국 대학 기업의 비정규직 교육노동자인 것이다. 존경받는 교수라도 당장 그들이 몸담은 직장의 실적(사범대에서는 임용고사 합격률)을 높이기 위해서 타협할 수밖에 없다. 교육에 대한 토론 대신 임용고사를 대비한 문제풀이식 강의가 거스르기 힘든 대세가 되었다.
많은 대학이 일정한 토익 점수에 다다르지 못한 학생에게는 졸업자격을 주지 않고 있다. 영어를 못하면 졸업할 생각일랑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도 모자라 일부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때에 따라 원어 강의가 필요한 어문계열 수업만 해당하는 것도 아니고, 학생들 모두가 그 강의를 소화해낼 어학능력을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전공이건 교양이건, 깊이있는 학문을 논해야 할 대학강의가 어학 연습시간으로 바뀌었다. 무엇을 배우는가보다는 얼마만큼 알아들을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한국인 교수들이 한국인 학생을 대상으로 경제학을, 역사를, 과학을, 문학을, 공학을 ‘영어’로 가르친다는 — 이해하기 힘든 이 민망한 일들이 지금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취업을 위해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스펙’은 복잡해져만 가는데 대학이 이를 모두 감당하기는 사실상 힘들다. 그에 따라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거센 사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대학 건물 앞에서 국가고시학원 홍보물을 나눠주는 일이며,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도서관 책상 위에 영어학원 전단지가 놓여있는 일은 아주 흔하다. 대학에서 얻을 수 없는 실질적인 스펙을 위해 학생들은 방과 후 학원으로 향한다. 대학 휴학생들의 첫 번째 행선지 또한 학원이다. 학원에서 학생들은 취업 준비를 위해 필요한 어학능력과 온갖 자격증, 각종 국가고시를 준비하고 심지어 대학 학점을 위해 전공과목의 보충수업을 받기도 한다. 조금이라도 나은 직장을 잡아보려는 발버둥이다. 입에 풀칠을 하는 데 웬 자격이 이렇게나 많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사법.행정.외무 고시, 교원임용고사, 공무원시험 등 국가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 중에도 학원 문 한번 두드려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학원이 길러낸 법관, 공직자, 교사, 기술자. 한국이라는 나라는 도대체 학원이 없이는 제대로 된 전문가 하나 배출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대학 사교육현장에서도 가장 뜨거운 것은 단연 영어공부에 대한 광적인 열망이다. 영어를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정말인지, 미국이 언제까지 세계를 손안에서 주무를 수 있을지 도무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여전히 ‘회화 따로 토익 따로’의 영어공부에 ‘올인’하고 있다. 언제쯤에야 이 지겨운 학원과 영어공부에서 졸업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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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학년이 겨우 스무명 남짓한 작은 시골 초등학교. 중학교를 나왔다. 내 친구들은 하나같이 형편이 여의치 않은 농가의 아이들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하던 우리 반에는 그 흔한 학원 다니는 아이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론 공부를 잘하는 아이도 거의 없었다. 늘 삼삼오오 모여 뛰어놀기에 바빴고, 강으로 들로 쏘다니느라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때의 그 착하고 맑은 아이들은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만 경제력과 학력이 비례하는 사회에 살기 때문인지, 우리는 거의 모두 지방 4년제 대학이나 2.3년제 전문대학에 다니고 있다. 흔히들 일컫는 삼류대학생이고, 동시에 미래의 비정규직 노동자인 셈이다.
내년 즈음이면 전문대에 다니는 내 친구들이 졸업을 한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겼을 뿐인데 벌써부터 병원의 의료조무사로, 작은 회사의 경리로 실습을 나간다. 그 모습이 의젓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짠하다. 스타벅스 커피를 생각없이 마셔대는 유복한 도시내기 아이들보다야 내면적으로 훨씬 단단하고 어른스러운 아이들이지만, 그들은 풍족한 가정에서 자라 좋은 대학을 나온 아이들보다 더 적은 월급에, 더 못한 대우를 받게 될 것이다. 아니, 그런 대우라고 좋으니 직장이라도 잡기 위해 늘 몸부림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네 부모님들이 그러하였듯 가난을 친구 삼아 가정을 꾸리고 근근이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친구들이 누구보다도 ‘착한 이웃’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좋은 대학에 가서 열심히 스펙을 쌓아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면 성공, 삼류대학을 나와 비정규직으로 밥벌이에 전전긍긍하는 것은 실패. 공과 실패를 이런 기준으로 정확히 나눌 수 있다면 나와 내 친구들은 아마 실패한 인생에 속할 것이다. 내 인생이 누군가에 의해 성공 혹은 실패로 규정될 수 있다는 것은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이다. 대체 우리가 좇아야 할 ‘성공’은 무엇이며, 더불어 모두가 두려워하는 ‘실패’는 어떠한 모양을 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저마다 지극히 고유한 삶을 살아간다. 나는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그 어떤 순간에도 절대적인 행복, 절대적인 절망은 없었다. 단편적인 기준만을 가지고서 결코 극단적으로 성공과 실패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나를 비롯한 우리들 젊은이들이 도달하지 못해 버둥대는 성공도 결국 모두 허상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그리 썩 용감한 젊은이는 아니다. 촛불집회며, 이런저런 집회에 참석한 적도 있지만, 용산참사 이후 철거민 유가족들의 애타는 투쟁이 이어지 f때에도, 등록금 인하를 위해 전국 대학학생회장들이 농성을 벌일 때에도, 4대강을 굴삭기로 갈아엎을 때에도 나는 강의를 듣고, 열심히 시험 준비를 했다. 부끄럽지만 지금 나는 눈치를 보고 있다. 대학생인 우리들도 분명 이 터질 듯 팽팽한 경쟁구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저들의 어마어마한 부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한 결과라는 것을, 어머니 같은 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격동적인 무리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의 무게가 너무 크다. 자신을 깊은 불안의 늪으로 밀어넣으면서까지 정직한 비주류를 자청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개인주의에 깊이 빠진 또래를 마음속으로 비난하는 것을 작은 위안으로 삼으면서, 사실은 내 자신도 나와 이웃에 대한 철학에서 자꾸 멀어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2학년인 나에게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은 여전히 곤란하기만 하다. 언제부턴지 이렇다 할 꿈 하나 가슴에 품지 못했는지…. 안개처럼 뿌옇기만 한 미래지만 그래도 초조한 마음으로나마 기대를 걸고 싶다. 그래도, 아직은 젊지 않은가.
-<녹색평론>(2010년 3~4월)에서
* 학기초 고려대 자퇴생 김예슬 씨의 대자보가 나붙고, 그에 대한 여러 논란이 이어지고 있지만
이게 현재,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우리 대학의 모습이라는 걸 부인하진 못할 겁니다.
명문대생이라서 주목받는 문제가 아니라, 또 아주 특별난 소수만이 느끼는 것이 아니라요.
김예슬 씨 전에, 이미 <녹색평론>에 이런 글이 실려 있었어요. 글쓴이는 부산대 박지원 씨입니다.
80년대에도 아무 고민 없이, 버거움 없이 학교를 다닌 건 아니지만, 2000년대의 대학인들은
그때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더 어지러운 세상 속에 던져져 있는 게 틀림없는 것 같군요.
한숨만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