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작별한 후에 이력서가 주는 교훈
세상에 이름을 남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세상을 작별한 후에
비로소 그의 진면목(眞面目)에 대한 재평가를 받는다.
그가 살아 생전에는 그의 삶의 깊은 부분까지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지만
그가 일단 세상을 떠나고 나면 그의 생애를 되돌아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숨겨진 얘기들까지 속속들이 알려지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 면전에서 주어진 한 생애를 살아낸다는 것이 이런 뜻이었구나
하고 다시 한번 더 인생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마음이 숙연해지고 그 어떤 감사한 교훈까지 얻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67세를 일기로 타계하신 황수관 박사님도 그 좋은 경우라고 생각한다.
그는 14년 동안 웃으면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는
‘신바람 건강법’으로 대중들에게도 잘 알려진 분이시다.
황 교수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오래 전 TV프로에서 행한 그의 강연에서 였다.
그가 오늘날 연세대학교 의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지나온 삶의 간증 얘기를
들었는데, 지금까지도 내 기억 속에는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지방의 모 대학 교수가 어느 날 갑자기
연세대학교 의대 교수가 된다는 것은 꿈같은 일입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아니면
절대로 불가능한 그야말로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라고 말문을 연 그는 다음과 같은 신기한 얘기를 이어 갔다.
“나는 어느 날 목욕탕에서 우연히 어느 특별한 유명 인사와 함께
목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와 나는 잘 알지 못하는 사이였는데
같이 목욕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지극히 평범하게 내 소개를 했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불쑥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당신을 머지않아 연세대학교 의대 교수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사실 이름도 없는 지방의 모 대학 교수와 연세대학교 의대 교수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인데 정말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 믿기지 않았습니다.
나의 이력으로는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일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나는 대구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했고 경북대학교에서 교육대학원을
그리고 국민대학교에서 보건의료 전공으로 학위(체육학)를 한 것이 전부인데
어떻게 연세대학교 의대교수가 될 수 있습니까?
그런데 얼마 후에 꿈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나는 연세대학교의 부름을 받고 그의 말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는 덧붙여 말하기를
“이런 것이 바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하심이요, 하늘의 복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얘기를 들을 때만 해도
황 교수의 지나온 삶에 대해서 별로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허 참 신기한 일도 다 있네! 하나님을 섬기는 그가 말하는 것을 보니
거짓말 같지는 않은데 아무튼 뭐가 있기는 있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그가 갑자기 타계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그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져서 그의 지나온 삶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더니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렇게 쓰신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구나 하고 비로소 의문이 풀렸던 것이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소년’이란 제목의 글이 널리 퍼져 나가면서
지금도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여기 소개해 올려 본다.
{"그 주인공은 지난해 12월 30일 급성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난
‘신바람 전도사’ 황수관 연세대 외래교수(67세).
그의 부고를 전한 뉴스 대부분이 생전 약력과 의대 교수로서의 활동,
신바람 전도사가 된 사연 등에 집중한 것과 달리 이 그림 파일은
어린 황수관이 의대 교수가 되기까지의
입지전적(立志傳的) 삶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담고 있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경북 경주 근처 안강 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한 소년이 있었다.
소년은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중학교에 다닐 돈이 없었다.
학비를 벌기 위해 1년 동안 산에서 나무를 해 적으나마 학비를 준비했다.
그러다 포항에 가면 공짜로 공부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게 됐다.
소년은 세 시간이나 걸어서 학교에 갔다.
하지만 교장선생님은 “너무 머니 포기하라”고 했다.
소년은 끝까지 우기고 애원해 입학할 수 있었다.
그 후 매일 오전 4시에 책 보따리를 짊어지고 먼 길을 통학했다.
고등학교를 어렵게 졸업한 그는 사범대학에 입학해 잠시 교사 생활을 하다
더 큰 꿈을 품고 대구대학 사회복지학과에서 공부를 했다.
그러다 의학에 관심이 생겨 의대 청강생으로 들어갔다.
의대 교수들은 그에게 온갖 수모를 줬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중간고사 때 시험지를 주지 않자
“나도 한 장 달라”며 항의하는 뻔뻔함도 있었다.
그리고 의대생들보다 더 훌륭한 답을 써서 교수들을 놀라게 했다.
그렇게 고인은 10년 동안 의학 수업을 청강했다.
졸업장도 못 받는 수업을 10년이나 청강했던 것이다.
그리고 의대 졸업장도 없이 연세대 의대 교수 공개채용에 지원했다.
마침내 유학파 출신, 명문대 의대 졸업생 등 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당당하게 실력으로 연세대 의대 교수가 됐다.
‘우리는 그를 신바람 박사 황수관이라 부른다.’
거칠고 조잡한 그림과 수식어도 별로 없는 글이 담긴 이 파일은
며칠 새 소셜 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타고 빠르게 확산됐다.
누리꾼들은 항상 웃던 그의 모습 뒤에
이런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놀라는 반응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모욕을 참아 가면서
10년이나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했던 의지에 찬사를 보냈다.
더는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한 누리꾼은 “그에게 있어 웃음이란 건강뿐만 아니라
어려움을 이기는 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고인의 별세 이후 누리꾼들은 이 그림 파일을 자신의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퍼 나르며 애도를 표했다.
또 고인이 지난해 12월 12일 병원을 찾았을 때 그를 알아본 병원 측이
‘급행’진료를 제안했지만 이를 고사하고 일반 환자와 똑같이
순서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추모의 열기는 더 깊어졌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돌보다 사고로 숨진 ‘철가방’ 김우수 씨,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을 먼저 내보내고 화재를 진압하다 숨진
김형성 소방장, 그리고 황수관 교수….
세상이 왜 이렇게 됐느냐고 비난과 푸념만 하기엔
아직도 세상은 너무도 아름답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있다.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을 내다' 라는 뜻의
절차탁마(切磋琢磨) 인생이라면 하늘도 돕지 않겠는가!
그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도 진지하고 성실하게 삶을 대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특별한 인도를 은혜로 주신 것이 아닌가 한다.
하나님은 불가능의 가능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시고 뜻하시면
세상 사람들이 다 안 된다고 할지라도 되는 법이다.
그런데 평소에 신바람 건강법으로 웃음을 전파하던 그가
너무도 아쉬운 나이 6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 듯 어울리지 않고 애석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이고 이런 것이 인생인 것이니 어쩌란 말인가.
올 때는 순서가 있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다.
오직 생명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만이 생명의 열쇠를 쥐고 계신다.
우리도 언젠가 멀지 않은 그날,
하나님 보좌 앞에서 선악 간에 공정한 판단을 받을 것이다.
이는 틀림없는 사실적 진실이다. 그 날에
“너는 저리 어두운 데로 가거라. 너와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라는 하나님의 두려운 심판이 있을까 심히 떨린다.
“그동안 참으로 수고 많았다.
너의 천국을 향한 열심과 끝까지 참는 믿음과 깨끗한 영혼을 내가 아노라.
이제는 천국의 안식에 들어와 그만 편히 쉬거라.
나와 함께 내 상에서 영원히 떡을 먹으며 살자.
내가 네 눈에서 눈물을 씻겨 주고, 내가 네게 합당한 상을 주리니....”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하심과 축복하심이
그날에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빌고 또 비는 것이다...
첫댓글 좋은 글로 한주를 시작할 수 있어 감사드립니다...황수관 교수님의 열정의 기를 받은 기분입니다...
무언가 동기가 유발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 하와이에서~
황수관박사님, 너무 일찍 돌아가셨지요? 광고 모델 일로 이래저래 작은 인연이 이어지던 분이었는데--.
정말 훌륭한 웃음전도사셨는데..아쉽네요..그러나 우리 희망나무가족들이 함께하면~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니다!!!!
그런데 왜....?
고인의 명복을 다시한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