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의 생이 노역과 고역이 되지 않는 사회혁명을 꿈꾸는”(「검사의 인정신문 재구성」) 그의 꿈은 언감생심이 아니다. 이 땅에 존재하는 불합리의 현장에 그가 있다. “이 세상의 모든 불의를 바르게 정돈하고 잘못된 구조와 모순을 뜯어고치는 일은 우리 모두의 일이어야 합니다”(「청소용역노동자들의 선언」). 첫 번째 시부터 웅변가 같은 호소력으로 시선을 끌어당긴다. 여기저기 다쳐가며 피로 쓴 시들 앞에 미안해서 고개가 숙어지고 작은 목소리나마 보태고 싶다.
시 편마다 절절한 사연을 품은 소설 같은 이야기다. 이 나라의 어두운 역사를 낱낱이 고발하여 밝은 빛 쪽으로 끌어내 “조금은 더 안전한 세상”(「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을 위한 고난의 발걸음을 마다하지 않았다. 역사의 현장에 함께한 시인이 진짜 시인이다. 사람들의 애환 속을 함께 뒹굴고 어긋난 세상을 바로잡아 보겠노라고 투쟁한 흔적들이 처참하다.
박노해와 전태일, 김남주, 박정만의 시를 읽으며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절의 언어들을 배웠다. 동료, 동지라는 다정한 말, 그들과 함께 이기에 희망은 있다. 그런 20대에는 더욱 마음으로나마 나도 그들의 동료였고, 동지였다.
내 앞가림에만 지쳐 옆도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삶이 부끄럽다. 시민단체 몇 군데 조금씩 기부하는 것으로, 이런 시집을 사 읽는 것으로, 약자 편인 채널을 찾아 들으며 ‘좋아요’를 누르는 소심한 행동으로나마 여태껏 동료라 우기며 살았다. 시인이 들으면 쓰게 웃을 것 같아 나의 소극적 편향이 작고 작아서 초라해진다.
아래의 시에서 시인의 진심을 보자.
인생에 꼭 필요한 사람의 원소들
이 추운 겨울날 저 따뜻한 햇볕처럼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지는 온정과
눈부심을 배달하는 무욕의 택배기사
―「나무에게 보내는 택배」 부분
그가 진짜로 세상에 건네주고 싶은 것들이다. 무너져 가는 세상의 귀퉁이를 바늘에 찔려 손가락에 피를 철철 흘리며, 기워내고 있다. 그런 그가 세상 탓만 하는 사람은 절대로 아니다. 세상을 향해 소리칠 때, 안으로는 더 날카로운 칼날을 벼려 자신을 갈고닦는 사람이다. 끝없이 배우는 삶을 추구했으며 자신을 냉철하게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이다. 다음 시들을 보자.
위만 나쁘다고
위만 바뀌면 된다고도 말하지 말아주세요
나도 바꿔야 할 게 많아요
그렇게 내가 비로소 나로부터 변할 때
그때가 진짜 혁명이니까요
―「우리 안의 폴리스라인」 부분
생각해보니 조명이 집중된 자리나
특출하고 빼어난 것들만 좇아 살아온
내 뒤안길이 모두 그렇게 가벼웠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저급한 인간인지를
내가 얼마나 얄팍하고 얍삽한 인간인지를
―「끝없이 배우는 일의 소중함」 부분
시인의 진정성이란 것이 이렇게 확보되는 것은 아닐까? 극한 상황에 뛰어들어 온몸으로 부딪혀 행동으로 시를 쓰는 것 말이다. 딱히, 시 쓰기의 당사자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생사의 현장에서 투쟁해 온 이런 시인을 가진 우리는 희망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꾸는 꿈도 언감생심은 아니다.
투쟁으로 점철된 그의 삶은 투기꾼 같은 세상을 향한 투정이 아닌, 투사로서의 진실한 삶을 거리에서 투쟁가를 부르며 투한한 투필종융(投筆從戎)[※시대가 필요로 할 때는 문필을 버리고 군인이 되어 나라를 지킨다] 격이다(「‘결’ 자해지」에 빗대어 씀).
첫댓글 새로운 느낌과 감정을 이입해 준 시집 소개해 줘서 고마워요.
가슴 싸움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요?
작가가 우리 전남인이네요.
시집 읽고 리뷰 쓰는 학교 동아리 시집입니다. 현장에서 실천하는 시인이라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