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서 가을에 이르기까지 고사리, 취나물, 참나물, 호박고지, 무시래기, 토란대 등의
묵나물을 준비해 두었다가 한 해를 시작하는 정월에 오곡밥과 함께 먹어 원기를 돋우었다.
껍질이 딱딱한 견과류나 콩을 먹는 풍습도 있다. 이것을 '부럼 깬다'라고 한다.
식량이 부족하던 옛날에는 영양실조로 인해 부스럼, 다래끼, 종기 같은 피부병이 자주 났다.
그래서 땅콩, 잣, 호두, 은행, 해바라기씨 같은 견과류를 이날만이라도 듬뿍 먹어
피부 건강에 필수적인 지방과 단백질을 보충한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각종 항생제, 성장촉진제, 농약 등을 먹고 자란 가축을 먹으면
이 영양소가 보충되는 줄 알고 고기를 지나치게 자주, 많이 섭취하고 있다.
보름 음식 중 귀밝이술도 빼놓을 수 없다.
귀밝이술을 먹어서 귀가 밝아진다고 하면 놀라는 사람들도 많지만, 정말로 귀가 밝아진다.
막걸리는 술 이전에 유산균 음료다. 많이 먹으면 술이 되고 적게 먹으면 약이 된다.
감식초, 현미식초, 요즘 많이 먹고 있는 채소 효소, 막걸리, 동동주 등은
모두 식초나 술이기 이전에 유산균 음료다.
병중에 약을 많이 복용하면 귀가 먹먹해지거나 어두워지기도 한다.
이런 때에는 귀밝이술을 먹으면 낫는다.
단, 이때 마시는 술은 집에서 약품을 넣지 않고 만든 술이어야 한다.
또 수술 후에 귀가 먹먹해지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수술을 잘 못해서가 아니고
각종 항생제가 몸에 축적되어서 나타나는 증세다.
보름날 귀밝이술을 마시는 것은 유산균으로 몸에 있는 불순물을 청소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대보름날에는 아이들에게도 귀밝이술을 먹였던 것이다.
또 보름날에는 해 뜨기 전에 누가 자기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지 않는 풍습이 있다.
이 날 아이들은 새벽부터 돌아다니며 동네 사람들 이름을 부른다.
이때 대답을 하면 "내 더위 사라"하고 외치는데, 이를 '더위를 판다'고 한다.
만약 깜박 잊고 대답을 해 남의 더위를 샀으면 다른 사람에게 같은 방법으로 갚아야 한다.
여기에는 한 해를 시작하는 이른 봄 아침부터 정신 못 차리고 약속 못 지키면
무더운 여름에 더위 먹고 고생하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보름날 전날에는 대청소를 한다.
마을 어른들은 공동 우물을 다 퍼내고 청소를 한다.
아이들은 허락받고 어른들 앞에서 불놀이를 하면서 논밭 청소를 한다.
그러고 나서 목욕하고 황토를 파 대문 양쪽에서 큰길까지 깐다.
이렇게 정월 대보름날은
1. 오곡밥과 부럼 같은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어 한 해 동안 일할 수 있는 원기를 돋우고,
2. 여러 놀이를 하면서 겨우내 쉬었던 몸을 풀고,
3. 귀밝이술을 먹어 체내 소독을 하고,
4. 더위를 팔면서 정신을 차리고,
5. 청소를 하면서 한 해 농사와 살림을 준비하고,
6. 쥐불놀이를 하면서 논둑 밭둑을 태워 온 나라가 동시에 살균, 구충 작업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