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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기독교 스크랩 로강17-b
별장회원-이상덕 추천 0 조회 3 14.07.08 08: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둘째로,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는 신적 활동 즉 그 분이 자기 백성을 위해 간섭하시고 구원하시는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히브리 시, 특히 시편과 이사야 40~66장에 나오는 대구법에서 종종 그 분의 '구원'과 그 분의 '의'가 결합되어 있다. '여호와께서 그 구원을 알게 하시며 그 의를 열방의 목전에 명백히 나타내셨도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고 선포하시며, 또한 자신을 '공의를 행하며 구원을 배푸는 하나님'이라고 묘사하신다. 그러나 이러한 본문들에 비추어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의 구원이 동의어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장이다. 오히려 그 분에게 자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오시도록 간청할 수 있다는-그리고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그 분의 의는 그 분이 약속들에 충실하신 분임을 나타낸다. 그 예 가운데 하나가,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이다. 존 지슬러가 말했듯이, '구원은 하나님의 의가 취하는... 형태이다." 에른스트 케제만은 하나님의 의를 능력, 곧 자신의 언약에 충실하사 악의 세력들을 타도하고 그 분의 백성을 옳다고 입증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라는 면에서 본다. 라이트 역시 이와 비슷하다. 하나님의 의는 '본질적으로 아브라함에게, 믿음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전세계적 가족, -그들안에서 그리고 그들을 통해 세상의 악이 파멸될 것이다-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 언약적 정의이다.' 라고 쓴다.

 

 셋째로, 복음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의'는 신적 성취이다. 그 소유격은 더 이상 주관적인 것[하나님의 성품과 활동에 대한 언급에서 처럼]이 아니며 객관적인 것이다 [NIV는 1;17과 3;21에서 그 말을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의'라고 번역한다]. 또한 빌립보서 3;9에는 단순 소유격['하나님의 의']대신 전치사구['하나님으로부터 난 의'(righteousness ...from God)]가 나온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서려 할 때 하나님이 요구하시며, 십자가의 속죄의 희생을 통해 이루시고 복음에서 나타내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의로운 상태를 말한다.

 

 바울이 '하나님의 의'라는 표현을 이 세 번째 의미로 사용한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는 그것을 우리 자신의 의와 대비시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는 대신 우리 자신의 의를 세우고 싶어한다. [10;3]. 하나님의 의는 믿는 자에게 주어지고[3;22] 우리가 가지거나 누릴 수 있는 선물[5;17] 찰스 크랜필드는 이러한 해석으로 1;17을 설명한다. '그 안에서는[즉 전파되고 있는 복음 안에는]하나님의 선물인 의로운 상태가 나타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제공되고]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적으로 믿음에 의한 의로운 상태이다.' 더 나아가 고린도 후서5;21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사실상 '하나님의 의가 되었다'고 쓴다. 로마서 4장에서는 아브라함에게 그랬던 것처럼[3;24절], 우리가 의로 '여기신 바 되었다'['간주되다' 또는 '전가되다']는 것에 대해 쓸 것이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을 볼 때 '우리에게 ... 의로움...이 되신' 분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는 그 분의 신적 속성[우리 하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이다] 혹은 활동[그 분은 우리를 위하여 오신다] 혹은 성취[그 분은 우리에게 의로운 지위를 주신다]로 생각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모두 옳으며 학자들은 각기 이러한 견해들을 -때로는 서로 연관시켜서- 주장해 왔다. 필자는 왜 우리가 이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며, 왜 세 가지를 모두 결합하면 안 되는지 의아하다. 심지어, '하나님은 옳음'[the uprightness of God]이라느 생소한 표현을 사용하고 그것이 '옳은 존재이신 하나님과 그 분의 옳은 행동'을 묘사한다고 주장하는 피츠마이어 교수마저도, 그것이 또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선물에 의해 인간에게 전달된 옳은 상태'인 점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동시에 하나의 특성이자 하나의 특성이자 하나의 행동이고 하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 란, 죄인들에게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의를 주심으로써, 그들과 자신의 관계를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주도권이라고 단언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나님의 의'는 불의한 자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우신 정의, 외롭지 않은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방식이다. 그 분은 불의한 자를 위해 죽으신 의로우신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 일을 하셨다. 그것에 대해서는 바울이 다시 설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 분은 믿음에 의해 -우리가 그 분을 믿을 때 그리고 그 분에게 자비를 달라고 부르짖을 때 -그 일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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