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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백수, 가수되다.
-사랑이 아닌 것에 이별을 고하다.
*
방안에서 들리는 부드러운 선율.
조금은 애절하지만, 너무 달콤해서 그런 애절함은 묻어 버릴 것만 같은.
그리고 낮은 흥얼거림.
연석은 가만히 방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으로 종혁이 보였다.
이번엔- 꽤 빨리 곡을 끝냈다. 보통 일주일은 고생해야 한곡이 나오는데..
종혁만의 기술이라고 한다면.
우선 베이스를 먼저 작곡하고 그것을 뼈대로 하나씩 붙여 나간다는것.
가장 자신있는 악기가 베이스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니..연석이 생각하기에. 종혁은..그저 머릿속에 있는 악보를 끄집어 내는 사람이었다.
그 머릿속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좀 느린 곡이라고 하면 열이면 열 전부 애절하고 슬프고 비통했다.
반대로 빠른곡은 전부다 엽기적이고..
그랬는데.
이번곡도 그 전과 별반 다르지 않는데.
이상했다. 흥얼거리는 종혁이 빙그레 반쯤 웃고 있어서.
“..좋은데? 제목이 뭐야?”
괜히 어색하게 종혁의 곁으로 다가가며 연석은 그렇게 물었다.
왠지. 벌써 가사에 제목까지 다 붙여 놓았을 것만 같아서.
“어....유(you)'
“you? 너 말이야?”
“으응...”
그렇게 대답하고는 종혁은 보면서 흥얼대던 종이를 쓱싹-감춰버리고 말았다.
“뭔데? 좀 보여줘봐”
“아..안돼..”
“안된다고?”
안된다는 종혁이 당황스러워. 연석은 멍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볼이 빨갛게 물들어 있다.
아- 몰랐다. 이 녀석..피부가 많이 좋아졌어.
상혁은 담배가 도로 늘었던데. 대신 종혁은 줄었나보다.
“미안...나중에.....나중에 보여줄게..”
“어차피 보여줄건데 왜 지금은 안돼? 다 완성된거 잖아.”
정말이다. 이미 가사까지 입력되어 있건만.
종혁은 아주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래서 연석은 종혁을 더 곤란하게 만들고 싶어졌다.(사악하다;)
“어- 외계인이다!”
창문쪽을 가리키면서 연석이 말했고.
역시나 우리의 순진한 오종혁은 “어디?”하면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 틈을 타서-
“어? 아..안돼, 형”
“가만히 있어봐!”
종혁의 감춰놓은 종이를 슬쩍 빼냈다.
동글동글한 이 아이의 글씨체처럼.
참 가지런하게도 씌여있다. 귀여웠다. 이 글씨가.
그리고..내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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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우리 너무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서.
항상 넌 내 곁에 있어서. 그래서 몰랐나봐.
아침에 일어나면 널 볼 수 있고, 잠들기 전에 잘자라 인사하면서도.
너는 한번도 말한 적 없었잖아. 너무나 태연하게. 그래서 몰랐나봐.
너의 마음을 알기에 난 너무 어리석었어.
너의 향기를 알고 있었는데.
네가 힘들때마다 읽었던 책 제목도 알고 있었는데.
늦은 밤, 내 곁으로 다가와 차디찬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던.
너의 사랑을 나는 알고 있었는데.
rap 너의 마음을 몰랐었다 한마디면 이해하겠니.
네게 미안하다 한마디면 용서가 되겠니. 널 사랑한다 한마디면. 널 사랑한다 한마디면.
난 그 한마디를 하지 못해 널 힘들게 하고. 방황하게 하고. 되풀이되는 오해와 싸움으로
상처주고. 미안해. 이 한마디면 용서가 되겠니. 사랑한다 한마디면. 그 한마디면.
너의 향기를 알고 있었는데 (은은했던 너의 향기도)
네가 힘들때마다 읽었던 (알지 못했던)
책 제목도 알고 있었는데(날 바라보던 너의 눈빛도)
늦은 밤, 내 곁으로 다가와 차디찬 손으로 내 뺨을 쓰다듬던 (사랑한다 그 한마디면)
너의 사랑을(사랑한다고) 나는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네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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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가 쓴거 같지 않다”
빨갛게 물든 종혁의 얼굴을 바라보며.
연석은 조용하게 말했다. 후렴부분의 코러스까지 완벽하게 완성된 가사인데.
...정말 종혁이 쓴걸까. 이 녀석의 노래속의 주인공은 늘 떠나고, 죽었는데.
“...이상..해..?”
“...이상하다는게 아니라...그냥 좀...그래서”
연석의 말에 종혁은 하하-웃으며 들고 있던 종이를 가져갔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읽어본다.
별로 이상할게 없었다. 좀 유치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전부다 내가 부를거야...코러스도 랩도..전부다”
“.......”
“실장님이 다음 앨범에 개인곡 하나 넣어도 괜찮다고 했거든”
“..그래서 이거 넣게?”
“왜..? 마음에 안들어, 형?”
연석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는데. 종혁은 그 이유를 알면서도..
말갛게 묻는다. 마음에 들 리가 없을텐데.
“...김상혁이잖아, 이거”
이거. 이 곡의 주인공.
제목의 you가 바로 “그”라는 사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다시 써”
“형!”
“안돼”
“아니라고 했잖아!! 그냥 쓴거야...그냥”
“종혁아!”
정신 좀 차리라고.
연석은 종혁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솔직히 나. 지금도 전전긍긍해. 모르겠어? 너랑 상혁이 사이를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서
그래서 겁난다구. 그런데 이런걸 써서 발표하면...종혁아. 너희는 연애를 하는게 아니야.
곡예를 하는거라구!! 그래..사랑이라고 해두자. 그 다음엔 뭐가 있는데?
외줄타기 밖에 안된다고......“
“그래!! 누가 알겠어!! 내가 곡예한다고 누가 생각이나 하겠냐고!!
형만 모른척 하면 돼! 형이랑 태형이형만 모른 척하면 끝이라고!!
세상에 널린게 사랑노래야. 널린게 이런노래라고! 그런데 어쨰서..“
“그렇게!!”
부여잡고 있었던 종혁의 팔을 놔버리며.
연석은 벌떡 일어섰다. 참을수가 없었다.
“그렇게.....상혁이가 좋냐, 너?”
“..............”
“꼭 묻고 싶었던 거야. 대답해. 그렇게 좋아? 이런걸 쓸만큼?”
“..............”
“종혁아”
“..............”
“더 이상은 안된다는거..니가 더 잘 알거야. 너 상혁이 마음 알고 나서..
하루라도 편했던 적..있었어?“
“...........”
“마음 키우지마.”
“..........”
“안된다는거 알면 그만두라고”
“........”
“상혁이는 절대 너 포기 안할거야. 그래...지금은 괜찮겠지. 적어도 이 집안에는
안전할테니까. 나도 태형이도..아니 우리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안다고 해도..
다 이해해줄테니까..하지만 종혁아“
“...........”
“..그게 끝이야”
“.......”
“더이상은 없다고. 이해해줄 사람은 없어.”
“..........”
“.....상혁이에게 매달리지마. 너..점점 더 그 자식한테 매달리고 있어.”
지현씨에게 했던 것처럼.
그게 상혁이 아닌 다른 사람이였다 하더라도...
오종혁은 오종혁이니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똑같이 집착하고 매달리고...늘 매달리다 차이면서. 끝까지.
고개를 푹 떨군 종혁이 안쓰러웠다.
바삭하게 마른 목덜미가 가여웠다.
며칠을 고생하며 만든 노래를 없애라는 연석의 말이.
아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러나 종혁은 화를 내지도. 뭐라 변명을 하지도 않았다.
연석은 그것이 더 불안했다.
전부다..인정한다는 거니까.
“....그 노래는 안돼. 가사를 다시 붙이던가 아예 발표를 하지 말던가..”
“...싫어”
내내 아무말이 없던 종혁이 고개를 들어 연석을 바라본다.
눈물이 가득차서 맑게 일렁이던 눈동자의 눈물이.
중력을 견디지 못하고 또로록-
싫어- 그 한마디에 굴러 떨어진다.
“...싫어?”
“그래. 싫어”
“오종혁, 너!”
“싫어!! 내가 보여주기 싫다고 했지!! 안된다고 했잖아!! 약속했단 말야!
상혁이랑 약속했다고!! 이거...준다고....만들어서..준다고 그랬는데..
처음으로 나도..뭔가를 해주려고 그랬는데......“
“종혁아..”
“형이 뭔데.....뭔데 하지 말래..? 그래..나 바보야. 바보에 병신이야..
그래서 하나도 몰라. 사람들이 어떻게 우릴 보는지 모른다고..
그래서..? 그래서 모르면 안돼? 그런건 계속 모르고 살아도 되는거잖아..“
“......울지마라..”
운다.
막 운다..우는 종혁을 보는건 쉽지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연석은 종혁의 머리를 끌어 안아주었다.
“...매달리는 거라고 해도 괜찮아...집착이라고 해도...좋아......
뭐 어때..상혁이는 5년이나 나만 바라봤는데.....사실은..더 많이 해주고 싶어..
그치만 어떻게 해야 할지..그걸 모르겠어서.....“
‘그냥 내 옆에 있어만 준다면 만족해.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아....
...더 바란다면 나쁜놈이야, 나는’
언젠가 상혁이 했던 말이 겹쳐져.
연석은 더 착찹한 마음이 되고 말았다.
*
새벽 4시.
문소리와 함께 술에 취한 그림자 하나가 익숙하게 집으로 들어온다.
혹시나-하고.
거실의 불을 켜본다. 없다.
뭘 기대하고. 뭘 바래서. 뭘 더.
쓰디쓴 웃음과 함께 상혁은 털썩-하고 쇼파에 앉아버린다.
씻기도. 옷을 갈아입기도, 방으로 들어가기도 귀찮다.
모든 것이 다.
“.................”
아니, 귀찮지 않은게..한가지 있긴 하다.
모든게 다 귀찮지만..꼭 하고 싶은거.
부스스하게 일어나 종혁이 자고 있을 방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방문 앞에서 휘청이는 몸을 기대서서 한 5분.
망설이다..망설이다.
끼익-
“..............”
어렵사리 문을 연다. 환한 거실 덕분에.
조금 새어 들어간 방안에서 불규칙적이고 작은 숨소리가 들린다.
이불을 둘둘 말고 잔뜩 웅크려서는.
“.................”
그런 종혁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한다.
멀찌감치 떨어져 그냥 바라만 본다. 이렇게 볼 수만 있어도 만족하려 했는데.
사람 욕심이란 끝이 없지...
“으흑......”
가슴이 아팠다. 사실은 아까부터 울고 싶었다.
소리내서. 소리내서 울고 싶었어. 너에게 매달리고, 널 부여잡고..
제발..날 어떻게 좀 해달라고..
날 좀 살려달라고.
이젠..네가 없으면 숨조차 쉬기가 어렵다고.
너에게 다가갈수록 공기는 희박한데. 멀어지면 내 폐는 멈춰 버린다고.
끼익-
그러나 상혁은 한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그냥 방문을 닫아 버렸다. 아주 조심스럽게.
종혁이 깨지 않도록..
*
“..어제 또 술마셨지?”
멍하게 오전이 다 지나서야 일어난 상혁의 부스스한 얼굴에.
종혁은 한마디 했다.
차디찬 물에 술깨는 약을 갖다 주면서.
“아주 먹고 죽으려고 작정을 했어? 진짜 알콜 중독자라도 되고 싶어서 그래?”
“...........”
그러면서도 종혁은 알약을 상혁의 손에 쥐어준다.
빨리 먹으라는 표정으로 아예 그 앞에 앉아 버렸다.
하지만 상혁은 종혁이 쥐어준 그 알약을 먹지 않고.
말갛게 그를 바라본다.
많이 풀린 자신의 눈동자와.
맑은 종혁의 눈동자.
스윽..
가만히 손을 뻗어 종혁의 목덜미에 손을 집어 넣었다.
따뜻했다. 늘 이렇게..한번쯤은 만져보고 싶었다.
사슴같이 긴 이 사람의 목덜미를.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그 누구보다 부드러운...이 사람의 몸을.
“왜..그래..간지러워..”
그러면서도 종혁은 가만히 있는다.
이 사람은 원래 이렇다. 너무 착해서..거부하질 못한다..
매몰차게 거절하지도. 빼내지도 못하고.
키스하면 키스하는대로. 이렇게 만지면 만지는대로 그냥 둔다.
너무 착해서. 그래서 자꾸만 믿게 돼.
“....종혁아”
“응..?”
“....그 스캔들이..맞아”
“어?”
상혁의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종혁은 제대로 듣질 못하고. 귓불을 만지작대는 상혁의 손길에 정신이 팔려서.
어? 하고 되물었다.
“...그 여자랑 사귀는거 맞다고”
상혁이 그렇게 말한 그 순간.
쿵쿵- 발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왈콱- 열렸다.
매니저형이었다.
“김상혁! 너 심영애네 기획사랑 계약했어??!!”
매니저에 말에.
그리고 상혁의 말에 완전히 굳어버린 종혁..
아직 목덜미에서 걷어내지 못한 손길에 느껴지는 떨리는 감촉.
덜덜...떨리는 종혁의 몸이 애처로웠다.
하지만, 상혁은 그 손을 걷어냈다.
자신을 바라보는 종혁의 시선도 무시했다.
아니, 그려려고 애썼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