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갓난아기의 소리는 응아응아이다. 저 왔어요. 만나 반가워요. 하는 말로 들린다. 잠시를 가만 있질 못하고 팔을 흔들고 발버둥 친다. 부리부리 반짝반짝 눈빛이다. 배부르면 뒤스럭뒤스럭 꼼지락거리며 놀고 허전하면 찡찡댄다. 젖병을 물고 쫄쫄 빠는 모습은 참 귀엽다. 자꾸 물리면 포만으로 게워내는데 이때 좌우 귀로 들어갈 수 있다. 어른은 숟가락을 쥐었다 무심코 뺏으면 쏙 빠지는데 아기는 빠지지 않는다. 팔이 들려 올라온다.
포동포동 젖살이 오르면 뒤척이다가 뒤집으려 한다. 입술을 오물거리면서 말하려 할 때 마마를 많이 외친다. 배밀이 하면서 차츰 바바 하다가 맘마 ㅁ 받침을 넣는다. 지찌를 말해도 발음하기 어려운가 하지 않는다. 엄마 젖이고 아버지라는 뜻과 위험하다는 말이다. 할배, 할매, 엄마, 아빠, 누나, 오빠 언어를 들려주며 따라 하게 해도 그중 엄마를 부르게 된다.
가장 가까이에서 보살피므로 엄마를 일찍 부르게 되는지도 모른다. 양팔로 끌어당겨 배밀이로 부지런히 방바닥을 헤맨다. 엄마를 보면 입을 헤벌리고 엄마 엄마 하면서 뒤뚱뒤뚱 기어 온다. 무거운 머리를 치켜들고 침을 줄줄 흘리며 반갑다고 방바닥을 탁탁 친다. 맘마 맘마 하는 건 젖 달라는 말이다. 젖을 맘마로 익혔고 젖먹이는 엄마도 알았다.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고 곤지곤지 손가락질과 짝짜꿍 짝자꿍 손뼉을 친다. 귀여워서 자근자근 깨물고 싶다. 손목이 너무 예뻐 으스러지게 꼭 쥐었으면 한다. 다리를 주물러 주거나 사타구니를 쓸어올리면 두 다리를 쭉쭉 뻗는 게 한없이 즐거워라. 밤낮 눈을 박고 사는 고달픔은 온데간데없다. 와락 껴안지 않고선 배길 수 없다.
집안엔 검은색과 하양, 빨강, 파랑, 노랑의 다섯 가지 색깔이 만져지고 보이어야 한다. 뭉툭하고 굵은 것이 좋다. 바둑알과 같은 작은 것, 뾰족한 것은 삼키고 찔릴 수 있다. 아기는 만지면 입으로 가져간다. 자면서도 오물오물 먹는 게 일이다. 맘마와 엄마는 모두 유성음이고 울림소리다. 가벼운 입술소리 바바는 한참 뒤에 나온다.
배우는 주의력이 없어도 듣는 말을 기억해 낸다. 저절로 언어를 익힌다. 앵무새가 듣고 따라 하듯 아기도 주위의 말을 빠르게 익힌다. 한두 살 때 알아들을 수 없는 제비 말 옹알이다. 화장실에 멀쩡한 옷가지를 뭉개놓고 상위의 밥과 반찬을 뒤섞어 엉망으로 만들었다. 화난 엄마가 막 야단치면, 엄마 일을 도우려 조금 전 허락하지 않았느냐며 슬피 운다. 두세 살 되면 제법 재잘재잘한다. 어느새 많은 말을 배워 대화가 되고 있다. 저절로 가족 사이에서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엄마 아빠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할배, 할매로 부른다. 어머니는 책에서나 부르지 다 커서도 엄마라 부른다. 젖 먹으면서 빤히 엄마 이목구비를 익혀둔다. 친엄마 새엄마 앞에 붙은 말이다. 낳아 키워준 엄마든 중간에 들어온 엄마든 정겨운 말이다.
뽀얀 백발의 머리에 우글쭈글 갈라진 얼굴의 호호 할머니를 이제 늙은 아들과 딸이 엄마- 하고 부른다. 돌아가시면 관을 잡고 엄마! 엄마! 울부짖는다. 평생 불러도 그립고 정겨우며 참 아름다운 말이다. 영어론 마더, 중국어는 마이, 일본어는 오까상이다. 이제 엄마를 부를 수 없어 어쩌나.
나도 아내를 마털이라 부른다. 어디 갔다 들어가면서 안방을 향해 마털 하면 “예, 왔어요.”대답한다. 딸은 도털, 아빠는 파털, 아들은 멋쟁이라서 젠털 한다. 우리 집은 털털이 가족이다. 이웃에서 아내 부르는 말은‘어어’‘여기’‘봐라’그러다가 딸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돌아보고 반응하게 된다. ‘여보’ 이런 말은 잘 안 쓴다. 겸연쩍어서일까. 요즘 젊은이들이‘여보’라는 말에 익숙해져서 잘들 한다.
문학 모임에서 팔순이 넘은 시인이 자기 아내에게 들어가면서‘엄마’나왔어요. 한단다. 그 말이 쉽게 나온다니 놀랍다. 나갈 때는 엄마 어디 갔다 올게요. 그럴까 생각이다. 그러는데 옆에 있던 수필 여류도 친구 남편이 자기 아내를 엄마하고 부른다며 편을 든다. 하기야 나도 마털 하니 그 말이 그 말 아니겠나.
한밤중에 갑자기 좌측 아랫배가 아파 느닷없이 병원에 입원하게 됐는데 들어간 병실이 어찌 늙은이들 뿐이다. 모두 치매로 대소변을 받아낸다. 말도 어눌해서 헛소릴 해댄다. 내가 젤 젊다. 곧 갈 사람들이다. 그사이에 들앉았다. 옆 병상은 정신이 없어선가 간호하는 아내를 엄마, 엄마 한다며 간호사들이 깔깔 웃는다. 늙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있잖은가.
정신이 없긴, 그 얼마나 정다운 말인가. 늙수그레하면 아내가 엄마가 된다. 이것저것 반찬을 집어주고 물을 떠주며 마시게 한다. 과일을 깎아 입어 넣어준다. 자다가도 커튼을 쳐주고 자는 머리를 들어 베개를 바로 해 준다. 나가면 신발을 골라 신겨주고 아래위 옷이 맞지 않는다며 엘리베이터까지 뛰어나와 잡아당겨 방으로 간다.
이게 엄마가 아니고 뭐겠나. 친구 만나러 자주 나간다. 늦게 들어온다. 잡비는 쥐꼬리만치 주면서 잔소리가 많다 많아. 쥐꼬리가 얼마나 긴데-. 머리에 휘두른 가마가 앞뒤에 있다. 그래도 두 번 장가들진 않았다. 뒷머리는 늘 떠들썩하다. 외출 때마다 물 묻혀 빗질해 준다. 춥다며 목도리를 감아주고 다니다가도 앞가슴 옷깃을 여며주며 토닥거린다.
하늘, 바다, 엄마 하는 말이 얼마나 좋나. 스카이, 씨, 마더 하는 말은 정나미가 떨어진다. 깜짝 놀라거나 죽음이 닥칠 때 엄마! 하고 부른다. 몹시 아플 때 아야 아야 하다가 엄마 하면 좀 덜하다. 엄마 손은 약손이라더니 정말 부를 때마다 찾아오는 따스한 손길이다.
첫댓글 진료 잘 받으시고 퇴원하셔서
또 재밋는 글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물을 끼고 한 달 넘게 고생,얼마나 불편했어요
정 초에 액 땜 하셨으니 금년 한해 잘 넘어 갈 겁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아내를 엄마라 부르는 걸 보고 놀랐습니다.
드물고 희한한 일이라 여겼는데 여기저기서 보고 놀랐습니다.
건강이 회복되셨다니 다행입니다.
병원에서 신기한 체험을 하셨군요.
엄마.... 정말 그리운 사람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이제 멀쩡합니다.
그리 아팠는데 감쪽같습니다.
여기 들어오시니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