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당의 날에 참례하다
송 희 제(아녜스)
'10월15일 본당의 날에 함께 해요' 아직도 이 소리는 귀에 쟁쟁하다. 신자들이 본 행사를 앞두고 미사에 오갈 때 홍보분과장 앞에서 하트를 손포즈 하고 방긋 웃으며 동영상을 찍었다. 우리는 찐여름을 지내고 긴 추석 연휴를 보냈다. 오랫만에 겪는 야외 행사에 여기선 어떻게 성당 생일잔치를 할까 궁금도 하고 기대도 하며 기다렀다.
그즈음에 날씨가 하루에도 가끔씩 비가 오기도 하여 좋은 날씨와 무사히 즐건 날이 되길 저녁 기도 때 기도도 드려왔다.
드디어 본당의 날이 다가왔다. 우리는 92구역이라 9호차에 탑승했다. 마침 며칠 전에 미국사는 교포 언니가 고국을 찾아 왔다. 우리 부부만 참가 신청을 한 후 그 언니를 우리 집에 오게하여 추가 참가 신청했다. 언니도 미국에서 젊을 때부터 타국의 어려움을 신앙으로 견뎌 온터라 기꺼운 맘으로 동행하였다.
하늘도 우리 본당의 날을 축복해 주는지 날씨도 좋았다. 가까운 진산 성지라 예전에도 여러 번 간 적 있다. 우리 가족이 영세한 대사동 시절, 초등부 캠프 때 가서 봉사도 하였다. 그때도 폐교된 상태였지만 지금은 운동장이 꽉 채워져 잘 자란 잔디밭이 누워 뒹굴어도 좋을 만큼 푸르름이 곱고 예쁘다. 우리 구역에 짐을 놓고, 우선 미사에 임했다. 앞자리에 쑥스러워 잘 못 앉는데 언니에게 우리 성당 미사를 더 잘보여 주고 싶었다. 난청인 나도 가까이서 더 잘 듣고 싶어 용감히 맨 앞에 앉았다. 가까이 야외 제대를 보니 마음도 더 경건하고 첫 소풍 나온 아이처럼 설렘과 기쁨이 차올랐다. 언니와 나는 말 없이 서로 손을 꼭잡아 무언의 감정이 교차했다. 시작 성가로 54번 '주님은 나의 목자'로 참례한 모든 신자의 성가가 한마음으로 울려 퍼진다.
오늝 따라 야외 시골이라 그런지 마이크로 들리는 주송자나 신부님 말씀이 더 낭랑하고 청아하다. 신자들도 모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얼굴에 기쁨이 가득하다. 주임 신부님 강론이 오늘은 더 힘 있고 주옥같아 내 맘속에 그 말씀이 새겨진다.
"당신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며 당신의 목숨을 바치신 이유는 단순해요. 인간에 대한 당신 하느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여기 있는 이 나무들도 나무 밑둥과 뿌리와 가지와 잎과 열매와 꽃은 모두 나에게서 비롯된 것들입니다. 뿌리도, 가지도, 잎사귀도, 꽃도, 열매도 다 흙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서로가 아무리 중요해도 흙이 없었다면 존재가 있을 수 없겠죠.우리는 다 흙으로부터 빚어져 각자 역할이 다릅니다. 결국, 흙으로부터 연결되어 있어야 살아 있을 수 있는 존재입니다. 흙은 하느님입니다. 나무는 교회입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며 하느님도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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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자리 언닐 보니 신부님 강론을 듣다 언니는 자꾸 손으로 눈물을 훔친다. 오랜만에 고국의 미사로 이렇게 전 신자들이 꽉 채운 야외 운동장 제대 맨 앞에서 하는 미사에 가슴이 벅차오르나 보다.
미사 후, 우리 구역 자리에 모여 앉았다. 사목 위원들과 구역장, 반장들의 발걸음과 손길이 분주하다. 우리는 손님처럼 편하게 참석하여 그저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 우리 구역은 지난 2년여간은 구역장이 없어 반장들만 있었다. 올해는 서울서 이사 온 자매가 그 중책을 맡아 구역이 더 활성화되어 가고 있다. 미사 후 점심시간이다. 실내 교실 복도에 차례로 줄을 섰다.성지측 봉사자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조금은 날씨에 뜨끈한 육게장에 나물이며 김치 반찬이 꿀맛이다. 구역 자리에 앉으니 반장님들의 잽싼 봉사 손길에 준비한 간식들이 푸짐하다. 우리도 인원이 꽤 많은 구역인데 오늘 참례한 인원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다른 형제님과 간부 자매님들은 봉사하느라 바쁘다. 청소년은 두어 명이 보이고 어린이는 보기가 힘들다. 요즘은 어디를 가나 어린이 수가 적다. 눈앞에 지나쳐 가는 젊은 형제가 유아를 어깨 가마 태우고 즐거워하는 모습이 나도 덩달이 신나고 정겨웁다. 다음 행사 때는 더 많은 신자가 참여하도록 구역에서도 모두 노력해야 할 것 같다.
프로그램에 따라 2부 행사 여러 가지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명랑운동회, 레크레이션이 다양하다. 구역별 대항 윷놀이, 장바구니 고무줄 반바지 입고 굴리며 돌아오기, 플리스틱 양동이 빨리 릴레이로 돌리기, 링 던져 꽂히기, 콩주머니 터트리기, 가장행렬, 장기자랑 등 너무 재미있고 스릴이 넘쳤다. 행사 진행하는 간부님들의 얼굴에 페이스 페인팅한 모습들도 재미있고 새롭다. 우리 구역장도, 신부님의 얌전하고 새하얀 얼굴에도 콧등까지 코믹하게 예쁜 그림이 그려져 흥겹다. 타국에서 신앙생활을 수년간 미국 성당 접방살이를 하다 한인 성당을 신설 때부터 참여하여 다닌 미국 언니는 이 행사를 퍽 재밌고 즐거워한다. 난 더구나 경품 추첨에 당선되어 후라이팬까지 탔다. 마침 팬이 낡았는데 주님이 아셨나 보다. 그동안 우리 본당인데도 나는 가끔씩 소극적 신자로 임한적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오늘 이 야외 본당의 날에 주님은 나의 게을러진 신앙생활에 박차를 가하며 용기를 주어 샘솟는 옛날 그 열정의 힘을 주신것 같다.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우리가 온종일 보낸 진산 성지를 뒤돌아보니 순교하신 순교자님들이 다음에 더 많이 모여 오라고 손짓하는 듯하다.
차 안에서 언니가 부러워하며 말을 건넨다.
"넌 참 좋겠다. 이렇게 일체감으로 모두 하나 된 마음으로 이 행사를 치르는데 흠잡을 부분이 하나도 안 보였어. 신부님과 사목 위원들과 간부 봉사자들이 참 애많이 쓰며 수고하셨겠다."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영세한 첫 성당에서 이런 행사 했던 생각이 많이 떠올랐어. 그때는 젊을 때 우리도 안팍으로 봉사 할때였지. 남편 대부는 가장행렬 때 예수님 역할로 곱슬머리 긴 가발을 썼지. 남편은 마부를 했던가? 난 여기가 내 여생에서 가장 맘이 흐뭇하고 감사한 성당이야. 여기를 내 마지막 성당으로 안착할 거야."
하며 이렇게 은혜로운 날에 짙어가는 창밖 가을 하늘을 보며 감사의 기도를 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첫댓글 송희제 수필 잘 읽었습니다.
필력이 넘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