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천국
박 가 경
“난간에서 뛰면 될까요? 안 될까요?”
“돼!”
“아니야, 안돼.”
“아빠, 돼.”
“아니야, 난간에서 뛰면 위험해.”
“안 위험해. 할 수 있어!”
한산한 일요일 오전에 유아 자료실에서 네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딸이랑 아빠가 서로 몸을 기대어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아빠는 딸에게 책을 읽어주고 질문을 했는데, 딸은 아빠를 바라보며, 그 질문에 대해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자신이 옳다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답은 그렇지 못하다. 서가를 정리하면서 그 부녀가 실랑이하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기간제로 일하고 있다. 이용자들이 도서관을 불편함 없이 이용하도록 도와주는 일을 한다. 산동시립도서관은 젊은 부부들이 많은 동네에 위치해서 아이들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잘 갖추어져 있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VR 체험과 다면 체험을 할 수 있는 디지털 놀이터,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마루 놀이터가 있다. 마루 놀이터에는 그림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인형과 움직이는 학습 로봇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레고 놀이와 색칠 놀이도 할 수 있어서 아이들은 도서관에 들어오면 바로 마루 놀이터로 뛰어간다. 뛰면 다친다고 말을 해도 놀 생각에 신난 아이들은 ‘휙’하고 순식간에 지나가 레고를 만지고 논다. 시끄럽게 떠들면서 노는 아이들을 보며 조용히 시켜야 하지만,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기분을 지켜주기 위해 뒤로 물러난다.
아이들보다 엄마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놀이터가 있다. 뚝딱뚝딱 만들며 놀 수 있는 뚝딱 놀이터다. 여러 재료로 스스로 만들고 노는 공간이라서 보호자 없이 아이들만 교실에 들어온다. 아이들은 만들기를 해서 좋고, 엄마들은 잠시라도 아이들로부터 해방되어서 좋아하시는 것 같다.
2주에 한두 번은 뚝딱 놀이터를 맡게 되는데, 열심히 집중해서 만드는 아이들의 작품을 보면 기발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있고, 해석하기 난해한 추상적인 것도 있다. 추상적인 작품은 스스로 만들었다는 의의를 두고 열심히 칭찬했다. 어느 날 그런 나를 향해 한 아이가 “왜 선생님은 무조건 잘 만들었다고 칭찬을 해줘요?”라고 말했다. 속으로 뜨끔했지만, 칭찬은 아이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무기라는 걸 모르는 똘똘한 아이에게 “진짜 잘 만들었으니까.”라고 말하고, 찐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를 위로 올렸다. ‘뭔 소리야?’라는 표정을 짓는 아이도 있었지만, 그 아이의 작품에 대해서도 열심히 칭찬하니 그도 싫어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다른 시립도서관은 자료실별로 분리되어 있지만, 산동시립도서관은 다 연결되어 있다. 빌리지 않는 책을 그 자료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 안 곳곳에서 읽을 수 있다. 도서관 안에 카페도 있어서 커피와 함께 여유로운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오전에는 조용해서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밤사이 식은 도서관 안에 내리쬐는 햇살이 창을 통해 들어와 온기를 가득 채워주고, 고요함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 도서관의 분위기를 나는 좋아한다.
평온한 분위기 속에 막 걸음을 뗀 것 같은 아기가 할머니보다 앞장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아장아장 걷는다. 스스로 한 발씩 내딛으면서 휘청거리지만, 넘어지지는 않는다. 커다랗고 맑은 눈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너무 예뻐서 말을 걸었다. “친구야, 안녕?” 하고 인사하니 말똥말똥 쳐다만 본다. 대신 옆에 있던 할머니가 “안녕하세요. 아이가 낯을 많이 가려요.”라고 대신 대답하신다. 급하게 다가가면 아이가 겁먹을 것 같아서 더 다가서지는 않는다. 아이는 저만치 걸어간다. 그 모습이 평화로워 보여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후 4시부터 하원하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도서관에 들어온다. 유아 자료실은 작고 낮은 소리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엄마의 목소리와 이야기에 푹 빠져 즐거워하는 아이의 소리가 간간이 들린다. 그러다 신이 난 아이가 뛰어다니면서 소프라노 고음을 지르고 무엇 때문에 짜증이 났는지 복식 호흡을 스카타토로 내뱉다가 길게 크레셴도로 울어버린다. 아이 엄마는 우는 아이를 안고 급히 밖으로 나간다. 사방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뛰어다니며 논다. 이곳이야말로 아이들의 천국이 아닐까? 도서관 특성상 소리 지르는 행위를 제지해야 하는데, 아이들의 즐거움을 방해하는 나쁜 사람 같아서 그만 포기하고 만다.
한 뉴스에서 미국의 유명한 CEO가 저출산과 관련해서 한국의 인구가 세대마다 3분의 2가 사라질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우리나라 출산율이 세계 꼴찌 수준이고, 결혼하는 사람도 줄어서 예식장이 줄줄이 폐업하고, 아이 없이 사는 부부도 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정말 그 CEO 말대로 될까봐 걱정했다. 하지만 아직은 많은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고 있다는 것을 산동시립도서관에서 확인받은 것 같다.
가장 놀라운 점은 평일에는 엄마가, 주말에는 아빠가 아이를 도서관에 데리고 와서 책을 읽어주고, 놀이터에서 같이 놀아준다는 것이다. 가부장적인 모습은 사라지고 아빠도 육아를 위해 힘쓰고 있는 모습을 보니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 꿈나무들도 자라서 어른이 되고 반려자를 만나서 아이를 낳고, 자신의 부모님들이 해줬던 것처럼 도서관에 자신의 아이를 데려와 책을 읽어주고 놀아주고 하겠지? 그런 사랑이 순환되어 더 좋은 쪽으로 나아가면 우리가 당면한 많은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