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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20:4-6)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20:4 לֹֽא תַֽעֲשֶׂה־לְךָ פֶסֶל וְכָל־תְּמוּנָה אֲשֶׁר בַּשָּׁמַיִם מִמַּעַל וַֽאֲשֶׁר בָּאָרֶץ מִתַָּחַת וַאֲשֶׁר בַּמַּיִם מִתַּחַת לָאָֽרֶץ
20:6 וְעֹשֶׂה חֶסֶד לַאֲלָפִים לְאֹהֲבַי וּלְשֹׁמְרֵי מִצְוֹתָֽי׃ ס
로 타아세 레카 페셀(לֹֽא תַֽעֲשֶׂה־לְךָ פֶסֶל 절대로 너는 되게 하지 말라... 페셀이)... 페셀이라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우상이나 형상으로 번역될 문제가 아닙니다. 페셀의 어근은 파살(페+싸멕+라메드)에서 온 명사형입니다. 그 뜻은 "자르다, 토막내다, 깍아새겨 모양을 만들다"가 사전적 정의입니다.
이 단어는 (신 10:1)에서 "두 돌판을 다듬어 가지고"에서의 "다듬어"라는 단어입니다. 또한 (왕상 5:18)의 기록과 같이 "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에서의 "다듬고"라는 단어가 역시 페셀입니다. 또한 (합2:18)에는 "새긴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위에 인용한 세 구절의 성구가 말하는 페셀의 의미는 구약의 성막과 성전에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방으로 취급하는 무당들이 그림을 벽에 붙여 놓거나... 또는 절에 부처형상을 금으로 입혀서 놓은 그러한 형상과 관련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표면상으로 보여지지 않는 엘로힘을 보이는 어떤 것으로 표현한 것 뿐입니다. 이것을 우상이라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눈에 보여지는 건물 교회(하나님을 위하여 건축했다는)와 눈에 보여지는 십일조, 헌금, 전부가 페셀인 것입니다.
위의 성경구절에서 (합2:18)이 말하는 "새긴 우상"은 십계명을 기록한 두 돌판 입니다. 그 두 돌판의 계명의 십을 여러분들이 행위로 지키려고 가져가면 전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두 돌비를 우리에게 넘겨주신 목적은 그 안의 계명들을 하나로 알고 깨달으라고 주신 것인데... 돌비 자체로 신앙생활을 행위로 지킨다면 이것이 우상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엘로힘을 만드는 짓이라는 뜻입니다. 이 두 돌비와 성막제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리를 알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짓 스승이 되어 버렸습니다. 보여지지 않는 엘로힘(마음, 뜻, 생각)을 알라고 성막과 성전으로 보여주셨지만... 이스라엘 백성 스스로가 그 교재를 하나님 처럼 만들어 버렸습니다.
진리를 깨달으라고 주어진 가짜이며 교재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거짓스승 역할을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구약의 성전과 성막 자체가 "말하지 못하는 우상" 입니다.
문자로 기록된 그 문자가 여러분의 우상이 되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 말씀은 섬기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문자의 원의미를 깨달아 그 씨심는 죽음을 죽으라고 여러분에게 넘겨진 것입니다. 그 성경을 윤리적이며 도덕적 기준으로 착각하여 그것을 행위로 지키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위로 지키려는 그 순간 여러분은 성경의 진리를 도무지 볼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고 맙니다. 성경은 무엇보다도 마음간직 입니다. 우리에게 없었던 그 마음을 간직하는 것이 씨심는 죽음 또는 진리의 완성인 것입니다.
즉, 페셀이라는 말은 단순히 기존에 여러분이 인식하는 그러한 우상 개념이 아니라... 성막이나 성전의 식양(물두멍, 번제단, 성소, 12떡상, 법궤, 두 돌비, 만나와 만나를 담은 항아리)과 제사에 소용되는 눈에 보여지는 기구들 전체를 말합니다. 이것을 한글성경이 우상이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오늘날로 보자면... 눈에 보여지는 헌금들... 십일조, 건축헌금, 감사헌금, 교회에 대한 봉사와 희생, 회개, 기도, 찬송(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감사, 영광... 전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우리 몸을 움직여서 뭔가 하나님께 드릴려고 하는 열심 전부가 바로 우상입니다. 창세기 1장의 엘로힘께서는 "손으로 짓지 않은 곳"에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성경에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눈에 보여지는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면 그것이 전부 우상이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상이 다른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다른 하나님으로 만드는 것 역시... 현재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기독교인들이 계속해서 만들고 건설하고 있는 중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은 하나님이든 우상이든 자신들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그들은 이미 성경에서 "철의 세상"(번제단 바깥의 세계 / 번제단=놋, 성소는 은과 금, 지성소는 금의 세계)으로 이미 녹스는데 버려진 존재들인 것이라 하나님께서 계산 조차도 하시지 않습니다. 문제는 놋의 세상인 번제단에서만 아우성 치는 현 기독교인들인 것입니다.
십자가, 십자가를 외치면서도 단 한번도 그 죽음을 죽은 적도 없거니와 그 희생 제물로 춤추는 번제단의 마당에서만 저토록 처절이 열심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은 이사야을 통하여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아직도 선과악의 지식이라는 양심(마음, 두 마음, 이쪽 저쪽으로 갈등하는 마음)으로 보는 하나님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성경을 묵상하고 교회 다니지만... 여전히 그 본질인 선과악의 지식속에 있는 하나님입니다.
이들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자신들의 하나님이라고 철저히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진리의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저들은 오히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우상으로 바꾸어 경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죄가 더 커져버린 것입니다. 이것을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며 간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를 진리의 말씀이라고 사람들에게 전하여 듣는 이들 역시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한 것입니다.
이걸 음행(간음의 마음 상태가 다른 이들에게까지 파급되어 영향을 끼친 것 / 포르네오, 영어로 하면 포르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길 원합니다. 과연 나는 우상을 숭배하고 있지 않은지? 간음자는 아닌지? 그래서 음행을 일삼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빨리 털어버리고 그것에서 떨어져 나와야 할 것입니다.
(시 115:4-8)을 보면 "이방 나라의 우상은 금과 은(눈에 보여지는 성소와 지성소)으로 될 것이며...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구약의 성전) 눈이 있어도 볼 수 없으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이 있어도 소리를 내지 못한다. 우상(온갖 종류)을 만드는 사람이나 우상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두 우상과 같이 되고 말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육신 하셔서 무엇 때문에 귀머거리를 고치시고... 벙어리를 고치시고... 손마른 사람을 고치고... 발을 고치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으며... 앉은 뱅이를 고치셨을까요? 여러분의 생물학적인 몸을 고치시려고 이런 표적을 일으키신 것일까요?
예수께서 이런 표적을 보여주신 것은 이런 표적을 보고 자신의 성전 상태를 깨달으라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오셨을 때 당시의 성전의 상태는 그야말로 귀머거리이고, 벙어리이고, 앉은뱅이이고, 소경이었습니다. 스스로는 서지도 걷지도 못하는 성전들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눈으로 보는 것으로라도 깨달으라고 소경을 고치시고, 입을 고치시고, 귀를 고치셨던 것입니다. 귀를 고쳐야 진리의 말씀이 들려질 것 아닙니까? 눈을 고쳐야 진리의 말씀을 볼 것(호라오) 아닙니까? 다리를 고쳐서 세워야 스스로 걸으며 예배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입을 고쳐야 지금까지 비진리를 말하던 사람들이 진리를 말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은 산상수훈과 다락방 강화 중간에는 전부 이러한 표적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표적들은 많은 무리들에게 동시에 보여주셨던 것이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실 때에는 따로 12제자만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말씀하시든지... 다락방(성전 안에서의 가르침... 안의 가르침)안에서 택한 그 무리(11명)에게만 가르치셨습니다.
스스로 걷는 말씀이 여러분의 귀를 고칠 것입니다. 귀가 열려지면 말씀과 가르침이 들려지게 될 것이고... 자라면 진리의 말씀을 말할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말씀이 여러분을 먼저 영접(발을 씻기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더러워지고 비진리와 섞여 있으면 아무리 진리라고 전해도 역시나 비진리만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미 진리가 들려져서 죽음을 죽은 자들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로 광야교회에 진리를 선포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에게 성경의 부정한 것의 개념인 네발 짐승을 비롯한 것들이 하늘로 부터 내려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잡아먹으라(원문은 희생제물로 바치고 먹어라)고 말씀하셨고... 베드로는 부정해서 못 먹겠다고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내가 깨끗하게 한 것을 네가 더럽다고 하느냐(?)라고 반문을 하십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은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우상의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눈에 보여지지 않는 진리를 눈에 보여지게 나타낸 가짜라는 성전적 개념입니다.
가짜를 주신 목적은 이 가짜를 보면서 진짜를 깨달으라고 하신 것인데 사람들은 오히려 가짜를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상숭배이며, 살인이며, 간음인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말씀하는 우상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우상은 하나님께서 참 진리의 하나님을 깨달으라고 눈에 보여지게 던져놓은 그물입니다. 성전이라는 그물을 쳐 놓고 진리 안에 걸려들기를 하나님은 학수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쳐 놓은 그물에 걸려들기는 커녕 요리조리 빠져 다니느라 여념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 그물에 잡히는 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말입니다.
선과악의 지식으로 몸부림치는 물고기는 이 그물을 어떻게든 피해다닙니다. 잡히기 싫거든요. 자신의 본질 그대로 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겐 방법이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계속 관망만 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페셀(눈에 보여지는 약속으로 가르치는 것)을 가나안 땅의 우상제조법과 관련하여 연상을 하거나... 바벨론의 마르덕 신과 관련된 칼로 새긴 우상들을 말하는 것으로 신학자들과 많은 목회자들이 연상지어 설교를 하는데... 원문은 이 고대근동의 대장장이들이 새겨만드는 그런 우상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열왕기상 6:7절을 보면 성전 건축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뜨는 곳에서 치석하고 가져다가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라는 기록입니다.
즉, 성전 안에서 성전건축을 위한 돌을 각 뜨거나 소리를 내면서 성전 건축을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성전건축을 할 때에 성전 밖...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 돌을 깍아서 만든 것을 가져다가 돌을 돌 위에 쌓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원래 다듬은 돌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위적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라는 돌 위에 기름을 붓는 것이 맞는 방법입니다.
Anyway... 신상(페셀)이라는 말은 성전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너는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라는 이 두 번째 계명은 쉽게 말하면 “너를 위한 하나님”을 만들지 말라는 말입니다. 너라는 본질이 선과악의 지식이기에 그 본질 가지고는 성전 건축(눈에 보여지지 않는 성전을 세우는 것이 부활성전임)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페셀을 새겨만든 신상으로, 맛세카를 부어만든 우상으로, 테무나를 그림모양의 우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새기고, 붓고, 보이는 모양의 그림이 바로 구약의 성전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새기고, 붓고 녹이고 해서 만든 성전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라는 성전은 칼을 대고 조각하여 만드는 성전이 아닙니다. 여러분이라는 성전은 성령의 전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는 성전은 들려짐으로 자연스럽게 성령의 전이 되는 세번째 성전인 것입니다.
손으로 지은 곳에 있지 않는 성전이 바로 여러분이라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여러분 안에 성령(깨끗한 말씀)께서 계시면 바로 여러분이 세 번째 성전인 “성령의 전”(부활체, 말씀이 육신이 됨)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페셀(새긴 신상)이라는 말은... 파살이라는 기본동사로부터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새기다, 잘라 만들다, 깍아 만들다, 다듬어 만들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짓지 않은 성전에 계십니다. 손으로 지은 성전이 구약의 성막과 성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먼저 성막제도를 주셨지요. 보이는 교재로 말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받은 두 돌비도 하나님께서 친수로 써 주셨습니다. 다듬기는 모세가 다듬었지요. 구약의 십계명도 명령으로 주어졌습니다. 명령은 사람들 그 누구도 지킬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전부 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첫번째 받은 두 돌비가 부셔져 버린 것입니다.
십계명은 율법을 행위로 지키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원의미를 깨달으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지키려고 죽을 고생들을 했던 것이구요. 그것이 마음 상태의 문제이고, 간직하는 문제였던 것을 사람들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로 지키려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인 것이지요.
성경 자체도 대략 40여명의 저자들에 의해 오늘날의 66권이 되었습니다. 성경도 새긴신상입니다. 그 새긴신상의 내용은 모르고 그냥 믿어버리면 여러분에게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써 준 이혼증서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리의 죽음을 죽게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하나님과 이혼하는 책이 되는 것입니다. (창 1:1-2:3)의 엘로힘께서는 손으로 짓지 않은 곳에 계십니다. 즉, 쉽게 말하면 말씀 창조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창 2:4-3:24)의 말씀은 야챠르(진흙을 반죽하여 손으로 크게 만드는 작업)로 표시되는 손창조의 역사입니다. 주인공은 "여호와 엘로힘" 입니다. 이 하나님이 여러분이 제일 처음 만나는 하나님인 것입니다. 즉, 눈에 보여지는 하나님인 것이지요.
그는 곧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눈에 보여지는 하나님인 것이지요. 그가 안에 가지고 있던 것은 창세기 1장의 엘로힘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대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십자가를 통과하여 자신의 십자가를 내적 상태로 간직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은 계속 놋의 세상인 연단과 정죄의 광야교회에 머물 뿐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보배함이 열린 말씀입니다.
아멘
아멘
아멘!
주님 감사 합니다.
아멘 ! 감사합니다.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