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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을 모시는 보람 | ||||||
[우리신학 산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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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도는 정확히 나를 꿰뚫었다. 나는 좀 더 뚜렷하게 역사의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공관복음서, 특히 가장 먼저 쓴 마르코복음을 좋아했고, 신학으로 덧칠된 요한복음서는 별로였다. 그런데 요한복음 공동체를 교회 제도화에 문제제기한 ‘급진적 자유주의자들’로 해석한 김 목사의 책을 읽고 나서 요한복음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김 목사는 내가 요한복음을 낯설게 만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고맙고 축하한다. 내가 이 책이 부러운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김 목사는 머리말 “여행을 시작하며”와 마무리글 “여행을 마치며”에서 이 책을 쓴 내력을 밝히고 있다. 그 출발점은 22년 전 안병무 선생님의 ‘요한복음 세미나’였다고 한다. 1987년 1학기 때 김 목사는 선생님의 세미나에 참석했고, 그 뒤 2년 동안 비공식 조교로 이 수업을 들었다. 이 수업에서 선생님은 “그 말씀은 ‘육신’(싸륵스)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1,14)는 구절을 요한복음의 핵심이라고 보고, 이 관점에서 요한복음의 여러 텍스트를 제시했고 선생님의 관점에서 간략한 해석 또는 해석의 가능성을 예시하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은 <요한복음>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이미 병약한 몸으로 책을 읽는 것도 쉽지 않았고 손이 떨려서 글도 쓰기 어려운 사정에 있었으니 이 문서에 대한 선생의 발견은 문제제기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226쪽). 그 뒤 20년 동안 선생님의 발견은 김 목사를 통해 “끊임없이 반추되면서 목회, 강의, 저술을 통해 다듬어지고 보충되어” 책이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사실상 선생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고, 거기에 약간의 뼈를 새로 대고 살을 입히고 화장을 한 것이라는 얘기다. 하여 독자들이, 나의 바람으로는, <언포게터블>을 부른 냇 킹 골과 나탈리 콜의 아름다운 듀엣 느낌을 여기서도 느껴주었으면 좋겠다.” 책을 펴내는 김 목사의 바람이다.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아름답다. 김 목사는 평생을 도둑질하고 살 수 있는 큰 스승을 만났으니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장회익 선생님은 자신이 공부한 내력을 담은 책 제목을 <공부도둑>이라 붙였다. 맞는 말이다. 모든 공부는 도둑질이 아닌가. 민중신학에 관심 갖고 공부하면서 부러웠던 것은 민중신학 2세대가 민중신학 1세대의 성과를 이어받으면서도 비판하는 모습이었다. 김 목사의 이번 책도 그 열매로 보아도 좋을 거다. 가톨릭청년신학동지회 시절, 우리는 한국가톨릭 안에 안병무 선생님과 같은 진보신학자가 없음을 아쉬워했다. 1997년 가톨릭정통교리에 어긋나는 오설을 퍼뜨린다는 이유로 동시에 제재를 받은 정양모, 서공석, 이제민 신부님은 사회현실을 신학 성찰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고 교회 안에 머물러 계셨기에 혁명을 꿈꾸었던 젊은 우리의 목마름을 적셔주지 못했다. 스스로 번역노동자라 여기며 끊임없이 해방신학 책을 정성껏 번역한 김수복 선생님도 우리를 안내해준 큰 은인이었지만 공부도둑질의 대상은 아니었다. 우리신학을 한다고 나선 나는 어느 스승을 도둑질할 것인가? 그 고민에서 시작한 게 정양모, 서공석, 이제민 신부님의 글을 함께 읽고 공부하는 ‘교회와 사목 세미나’였다. 석 달 동안, 단 여섯 번 모임으로 정양모 신부님 글을 읽는 것을 마치고, 지금은 서공석 신부님의 글을 읽고 있다. 충실히 공부하지 못하지만, 중간에 연구소 후원회원 몇 분이 들어와 함께 하니 더욱 좋다. 정 신부님은 여의도 성천아카데미에서 신약성경 강의(1993~2003년)를 하던 어느 해인가 다석 류영모에 관한 책을 보시고 큰 충격을 받으셨다고 한다. 동서고전을 두루 살펴보고 당신 나름대로 소화한 다석의 고결한 영성이 번쩍번쩍 빛났기 때문이란다. 그 뒤 정 신부님은 다석 선생님을 공부하셨고, 그 결과를 <나는 다석을 이렇게 본다>에 담았다. 정확히 몇 년도에 다석을 만나셨는지 모르지만(2001년에 펴낸 정 신부님의 은퇴 기념 논총에 쓴 “자전적 수상 - 예수 찾아 사십 년”에 언급이 없는 걸 보면 그 뒤인 모양이다), 은퇴 뒤 새로운 스승 다석을 만나 공부하셨으니 정 신부님은 정말 대단한 공부도둑이시다. 정 신부님은 책 마무리에 이렇게 썼다. “내가 역사 비평과 해석학적 성찰로 힘겹게 도달한 경지에, 다석 선생님은 동서고전 공부와 명상으로 훨씬 빨리 훨씬 높이 올라섰던 것이다. 학인은 도인을 못 당한다. …… 영원하신 분이 허락하신 앞날이 얼마가 되었든 나는 두 분 스승을 모시는 보람으로 살고 싶다. 예수와 다석은 기성 종교전통의 속박을 미련 없이 떨쳐버리고 하느님 아들의 영광스런 자유를 쟁취하셨다. 두 분은 하느님 아빠를 깊이깊이 깨닫고 맑게 맑게 드러내셨으니 지행합일의 화신이시다.” 지난 우리신학연구소 정기총회 때 한마디 훈수를 부탁했더니, 김진호 목사는 ‘우리신학’에 관한 담론화 부족을 꼬집었다. 아팠다. 연구소 사명선언문으로 되뇌는 “지금 여기 우리의 하느님 체험을 쉬운 말로 풀어내는” 일을 더 이상 남 일로 미루어둘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사목신학을 한다면서 신학 책보다 여러 분야 책들을 두루 읽은 지 오래다. 이제 다시 신학 책을 집어 든다. 당장은 역사 비평과 해석학적 성찰로 높은 경지에 오르신 정양모 신부님을 부지런히 도둑질해야겠다. 그 다음에는 서공석 신부님, 그 다음에는 이제민 신부님, 그 다음에는……. 그러다보면 내게도 떳떳하게 ‘스승을 모시는 보람’을 고백할 수 있는 날이 올까? 박영대 (우리신학연구소 소장,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