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마강 기슭에서 꿈을 키운 옥호자
◎ 어린시절에 부모님을 조실하다.
하언공은 출생한지[1702년 11월18일] 3년만에 부친 정무공을 여위[1705년 1월 24일(숙종31년)]었으며, 부친이 유언으로 집에 간직한 모든 서적을 다 물러 받았다. 그 후 모친 노부인도 2년 후에 돌아가시니 하언공 나이 4살에 두남매(하언공과 누이)는 고아(孤兒)가 되었는데 세상 물정도 모르는 철부지 어린 나이에 마침 배다른 형님 댁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어 형님으로부터 평생 갚을 수 없는 큰 도움을 받았다.
하언공은 형(하성)의 도움으로 충청도 부여현 옥호동(규암면 규암리 수북정(水北亭) 밑 청풍정(淸風亭) 부근)에서 주거를 시작하면서 형님의 보살핌과 형수(안동김씨)양육에 힘입어 주경야독하면서 조선의 예송과 조선중화주의를 공부하였으며, 갖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면서 이를 극복하는 불굴의 헝그리 정신으로 열심히 공부하면서 백마강가에서 원대한 꿈을 만들어 나갔다.
◎ 하언공은 성장하여 어릴적 일을 회상하며 높은 효심 발휘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낸 하언공은 성장하여 중년이 되었을 때도 당시 어려울 때 도움을 준 일을 잊지 않고, 효심을 키워가면서 항상 가족들에게 우애를 갖도록 노력하였다. 하언공은 성장하여서 서형이 손이 곤궁하고 외로운 때에 모든 힘을 다하여 도와드렸다. 서형이 늙어서 가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하언공은 모든 의식(衣食)의 수용(需用)을 적극적으로 돌보아 자기 자신과 다름없이 하였다. 정하성형님의 부인(안동김씨사망으로 남양홍씨 형수님)과 과부로 늙으신 친 누나(조선 중기 문신 안동김씨 김범갑의 부인)을 모셨다가 30년동안 부모님처럼 지극정성으로 잘모시다 보니 하언공이 생애를 마감할 때 생질 김산후(여동생 아들)가 말하기를 하언공의 행실은⌜중국의 사마공이 그 형을 부양한 것과 동일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언공의 가족 간의 우애는 매우 깊었다고 말 할 수 있다.
[하언공이 성장한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옥호동의 현재 모습)]
◎ 하언공은 수북정, 백강의 물결을 보며 어린시절의 원대한 꿈.
하언공이 어린시절을 보냈던 부여 지방은 옥호동(수북정 인근)의 주변 환경을 살펴보면 매우 화려하다. 즉 강창(江倉)이 자온대 옆의 암석이 기괴함과 백강의 물결을 보면서 하언공은 학문에 전념 하여야 한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자랐다. 집주변인 옥호동에서 조룡대를 따라 내려가서 고란사‧ 낙화암‧ 부산을 지나 자온대 아래에 배를 매고 놀면서, 영조의 문화융성기 시대에 펼쳐진 서적들을 고란사에서 찾아서 책과 씨름하며 학습을 계속하였다. 하언공의 성격을 보면 겉으로는 대범하고 소탈 한 것 같으나 마음은 매우 섬세하면서도 명랑하였다고 한다
다음편에 기재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