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십자가 아래 머물던 여인들
본문 요한복음 19:25-26
이웃이 어려움을 겪을 때 거리를 두고 싶어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 열렬히 따르던 모든 자들이 다 떠났습니다. 그런 중 끝까지 십자가 아래에 머물러 있던 몇몇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 끝까지 함께 했던 이들의 소중한 뜻을 배우며, 그들이 누렸던 뜻밖의 축복에 대해서 나누겠습니다.
십자가 아래 끝까지 머묾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붙들려 심문을 받게 되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게 되었을 때 그를 따르던 수많은 군중이 떠나갔습니다. 제자들마저 예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십자가 아래에 떠나지 않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25절에 나오는 그 어머니와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이들은 끝까지 십자가 아래서 떠나지 않고 예수님의 고통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당시 십자가 처형은 로마 시대에 가장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형벌로 여겨졌지만, 이들은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정심이 작용했을 것이지만 꼭 그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함이 옳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다 떠났어도 그들은 끝까지 함께 했습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어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끝까지 하나님께 순종의 길을 걸었습니다. 바울 곁에 있던 사람 중 대부분이 떠났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고, 그레스게와 디도도 떠났습니다. 구리세공업자 알렉산더는 많은 해를 입히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와 누가는 끝까지 바울 곁에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따르는 길이라고 옳은 길은 아닙니다. 따르는 사람이 적어도 예수님을 따르는 일은 바른길이며 생명 길입니다. 마7:13~14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소수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 바른길이며, 구원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 따르는 일이 외롭더라도 그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이 다 떠나고 끝까지 십자가 밑에 머물기를 바랍니다.
알아주지 않아도 십자가 아래 머묾
여인들이 십자가 아래서 있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확정되었고, 예전처럼 능력을 행하실 일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운명하게 된다면 이들의 위험함을 돌봐줄 자도 없고, 그들의 헌신을 보상해줄 자도 없습니다. 정말 바보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여인들은 십자가가 아래에 끝까지 머물렀습니다. 사람들이 조롱해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아직 여인들은 십자가의 가치를 깊이 깨닫는 수준에 이름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동안 행하신 일들만 생각해도 예수님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죄 씻음과 구원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도 이러한 헌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영광이 분명히 드러난 오늘 시대에도 여전히 십자가 아래 사는 것을 알아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십자가를 싫어하고 십자가 아래 있는 자들을 미워합니다. 그 일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어느 때가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며, 거리끼는 것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럴지라도 낙심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배척받고 조롱당함을 주께서 다 아십니다. 십자가 아래서 핍박받던 에베소교회를 향해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세상은 십자가 아래 사는 우리를 알아주지 않지만, 주님의 시선은 십자가 아래 있는 자들에게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아래 있던 여제자들을 헌신의 순간을 영원토록 잊지 않으십니다. 지금도 주님의 눈은 십자가 아래서 사는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예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시는 분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머무는 것처럼 소중한 시간은 없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머무는 것이 인간의 삶을 가장 가치 있게 해줍니다. 십자가 아래에 머물러 있음이 나를 가장 영광스럽게 만들어 줍니다. 주님이 그렇다고 말씀하십니다.
십자가 아래서 예상치 못한 은총을 누림
여인들은 사형판결을 받아 죽어가는 예수님을 따름으로 어떤 소득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십자가와 거리를 두는 것이 더 유리하고 안전한 일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십자가와 거리를 두고 멀찍이 따랐습니다.
여인들은 어떤 불이익을 오더라도 감수하면서 십자가 아래 머물렀습니다. 예수님이 처형을 당하는 상황에서 십자가 아래에 머무는 일은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여인들은 아직 십자가의 죽음의 의미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했고 부활에 대한 소망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여인들에게 뜻밖에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여인들은 아직 깨닫지 못했지만, 십자가 곁에 있는 순간은 세상의 역사를 바꾼 현장입니다. 사단의 머리를 짓밟는 순간이었고 범죄한 인류의 죄와 허물을 씻어 주시는 역사적 장소였습니다. 타락한 창조의 세계를 새롭게 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요, 온 인류에게 구원과 생명을 선물하는 축복된 장소에 있었습니다. 훗날 이 여인들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라고 감격했을까요? 여인들은 부활하신 이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가 자신들을 위한 것이고,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과 조롱들이 자신들이 받을 저주를 대신한 것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얼마나 크게 감사했을까요? 채찍에 맞으시고 손발에 못이 박히고, 온몸에 피 흘린 일이 자신들을 위해서 행하신 일임을 깨닫게 되었을 때 그 고마움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십자가 곁에서 끝까지 남아 있던 여인들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은혜와 복을 누렸습니다. 이 여인들은 세상 구속을 이루는 현장에 머문 영예를 얻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오늘도 십자가 아래 머무는 자에게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은총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오는 복은 우리가 생각하는 수준의 축복이 아닙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흘러나오는 은혜와 복은 사람의 필설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아래에 머무는 자는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은총을 누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십자가 아래 머물면
십자가 아래에 머물던 여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가 머물러야 할 장소는 십자가 아래입니다. 십자가 아래는 천국이 가장 가까운 곳이며, 천국의 복을 받는 유일한 장소입니다. 십자가는 성령의 거룩한 열매들이 무르익는 곳이며, 가장 달콤한 휴식을 얻는 곳입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와 가장 친밀한 교제를 누리게 곳이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곳입니다.
찬송가 370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십자가 밑에 나아가면 무거운 근심도 사라질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있으면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안전지대입니다. 십자가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십자가 아래서는 세상을 이길 힘과 모든 시험을 견뎌낼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는 우리가 누릴 모든 은혜와 축복이 집결되어 있습니다.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잇게 하는 통로가 되어 줍니다. 십자가 밑에서 더러워진 양심이 깨끗해지고 우리의 영혼이 맑아집니다. 십자가 아래는 죄의 오염에서 구별된 청정지대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우리 구원이 나오며, 영생이 샘물이 솟아납니다. 십자가 밑에는 평화가 있고, 기쁨이 있으며 영원한 즐거움이 있습니다. 십자가 밑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용납해주며,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십자가 곁에 머무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매일 십자가를 묵상하십시오. 기도로 예수님과 동행함도 십자가 아래 사는 일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사랑을 실천함으로 십자가 아래 사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의 태도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머물러 있어야 할 곳은 십자가 아래입니다. 그곳은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곳입니다.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맛보는 은혜로운 장소입니다. 죄에 빠져 낙심할 때 용서와 위로가 넘쳐납니다. 위험할 때 십자가 아래 숨으면 안전하게 할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에 있을 때 영원한 안식을 누릴 것이며,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입니다. 십자가 밑에 있으면 영원한 승리의 면류관을 쓰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십자가 아래 머무는 삶은 세상의 박수를 받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고 축복하시는 삶입니다. 십자가 아래에서 주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 사랑을 나누는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말씀 감사합니다 .
서미정집사님! 반갑고 감사합니다. 복된 주일 맞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