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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과 달기의 전설
중국의 역사는 기원전 하(夏)나라(2070년-1600년전)부터 시작해-근대까지 이어진다.
그 역사속에 가장 살기 좋았던 하나라의 요와 순임금 시설이 있었던 반면 가장 나쁜 폭군이 존재 하기도 했다.
물론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나라를 망친 폭군이겠다.
기원전 역사속의 하나라 말(末) 걸왕과 말희라는 여인이 있었기에 하나라는 탕왕에게 자리를 물러주고, 400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된다. 그 다음 나라였던 상나라(은나라)는 탕왕에 의해 세워져 550년간 이어지다가 은왕조 마지막 주왕때 제후국이
었던 주나라의 무왕에게 멸망하게 된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강태공이 주나라의 문왕(文王)을 도우고 그의 아들이었던 단(무왕 武王))에게 나라를 물러주게 되어
무왕이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세운다.(주나라 5만대 은나라 70만 싸움)...
새벽녁 자가용으로 청송에 도착하여 자가용은 인근 주차장에 세워두고 택시로 용전천 발원지가 있는 청송군 부남면
중기리 옻밭골로 찾아간다.
이른 아침부터 사과나무를 심고 계시는 귀농하신 부부 두분을 만나 이야기 나누고
길도 없는곳으로 꾸역 구역 올라 간다.
지난날 걷던 금호강(팔공지맥)북쪽 마루금이라...하지만 몇번을 지나 갔어도 계절에 따라 변하는 산천이 야속하기만 하니
어디가 어딘지 기억에도 없다.
지나 갔어도 지나간것 같지 않으니 이 길을 지나갔다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고,이러니 어딜가도 돌팔이 소리를 듣는건
당연한게 아닌가 생각 해본다.
마루금 742봉에 올라 왔지만 눈에 뵈는건 차가운 바람을 잡으려 두팔 벌려 서있는 참나무 뿐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2,5km만 가면 낙동정맥길의 가사봉이며, 가사봉은 대구시민의 젖줄인 금호강 발원지 이기도 하다.
742봉 마루금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금호강이 되어 포항시 죽장면-영천-경산-대구를 거처 달성군 다사읍 강정 마을에
서 낙동강으로 흘러들게 되고,빗물이 북쪽으로 흐르면 청송땅을 거처 파천면 어천에서 임하댐으로 흘러 들면서
잠시 반변천이라 이름으로 흐르다가 안동시 용상동에서 낙동강에 합류되는 강이된다.
용전천은 반변천 제1지류이며 반변천은 낙동강 수계중 100km 이상의 강 중에서 남강, 금호강, 위천, 황강 다음으로
긴 109km의 강이다.
반변천으로 용전천과 그리고 길안천이 흘러들게 된다.
낙동강 동쪽으로 흐르는 강으로는 길안천만 남아 있으니 이번주에 가보면 될듯
인증 담고
용전천은 용이 전설을 간직한곳이며
청송읍 보광산 앞의 용머리 현비암에서 유래가 된 강이름이다.
용전천은 부남면 중기리 마을 뒷산에서 발원하는 물줄기가 이곳 보다 100m가량 길게 내려 온다.
중기리 마을 뒷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약 100m가량 더길다.
하지만 742봉에서 옻밭골로 내려가는 계곡 물줄기가 원(源) 발원지로 추정되어
용전천길은 원 발원지따라 내려 가보기로 한다.
지나간 경로와
강길 47번째 누적거리 5,334키로
낙동정맥길은 대부분 참나무가 무성한데 이곳 역시 참나무가 무성하다.
지난해 떨어진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어 내려가기 좋고
강의 근원이 되는 발원지를 찾아 내려가는길은 이런 너덜길이 많은편이며
다른 발원지와 다를 바 없이 너덜길이 형성되어 있고 푸른 이끼가 가득하다.
허벅지 이상으로 빠지는 낙엽길이 이어지다가
계곡으로 접어 들면서 낙엽고 없고
해발 642미터 지점에서
해발 600미터 정도 내려오니 바위틈에서 물이 졸졸 흘러 내린다.
갈수기지만 물이 제법 많이 나오는곳이라 용전천 발원지라 해도 전혀 속색이 없을 듯하다.
이곳에서 흘러 내리는 물은 청송땅을 적시며 낙동강으로 흘러들게 되지만
근본이란 늘 깨끗함이다 하지만, 흐르고 지나다 보면 근본은 흐리게 된다.
고목나무 아래 바위틈에서 물이 나오는곳
이제부터 계곡 물길따라 진행
발원지 바로 아래로 흐르는 물
멀리 742봉이 보이고
용전천 발원지 따라 내려오다 보니,4미터 정도의 폭포가 하나 보인다.
지도를 보니 낙동정맥 가사봉에서 흘러 내려온 물줄기 같다.
옻밭골 최상류 민가집 앞의 폭포
전나무 숲을 지나고
추운날 발원지로 올라 갔다가 내려오니 노랗게 질린듯한 물통이 반쯤 누워 반겨준다.
옻밭골 중기마을
중기마을 간이 버스 승강장
물길은 청송땅으로 파고들며 청송사과를 더욱 맛있게 만들어 주는듯
물이 흐르는 동안
물은 변하게 된다.
고이고,흐르며
더러운것과 지저분한것
무두 담아간다
그렇다고 흐르지 않으면 고여 스스로 썩게되니
중력의 법칙대로 위에서 아래로 흘러든다.
무명암
청송 주왕산에는 주왕의 전설이 있다
주왕은 당나라때 진나라를 재건하기 위해 반역을 일으킨 주도이며, 반역은 실패로 끝나고 주도는 쫓겨 이곳 청송 땅까지
오게된다.
당나라는 신라에 주도를 잡아 달라고 요청하자 신라는 마일성 장군을 보내 주왕굴에 숨어있던 주도를 잡아 당나라로
보내 참수 시켰다고 전한다.
별로 재미없는 주왕의 전설 이야기 하지만,
이곳에 청송땅에 왔으니 국립공원 주왕산도 있고 달기 약수라는곳도 있으니, 중국 역사속의 주왕과 달기라는 이야기를
좀 적어 볼까 한다.
주왕은 은나라의 마지막 왕이며 절대가인의 애첩 달기가 있었다
하나의 국가를 망하게 할 정도의 경국지색이라던 중국의 4대미인 중
당나라 최고의 미인 양귀비.
춘추 전국시대때 월나라의 서시
한나라의 초선과 왕소군 이들 네명은 중국 4대미인이라 불리운다.
하지만 이들 네명도 은나라의 달기 앞에서는 꼬리를 내려야 할 정도로 달기는 경국지색이었고 절대가인 이었다.
달기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하면
은나라의 마지막 주왕이 녹대에서 자살하고, 달기는 무왕에게 사로잡여 처형 당하게 되는데
망나니(사형 집행자)의 서슬 퍼런 칼날이 달기의 목을 치는 순간, 망나니는 달기 얼굴을 보고 너무 이뻐서 목을 칠 수
없었다고 한다. 몇명의 망나기가 동원 되었지만 한결같이 달기의 아름다움에 넋이 나가자 사형집행 대장이 망나니 중 가장
나이가 많은 90대 할배을 시켜 보지만 그 노인도 달기의 미색에 빠져 죽이지 못하자 무왕이 직접 활을 쏴 죽였다고...
부남면 양숙리 마을앞
크고 작은 산들이 많이 보이고 강가로는 갈대가 무성하다.
강 물은 주왕산에서 흘러 내린물과 만나기 위해 열심히 흘러간다.
다시 주왕 이야기
은나라의 주왕 잘 하는게 많음, 하지만 같은 남자라서 주왕께는 큰 관심은 없고
달기 실존 인물인지 만들어진 인물인지 모르겠으나 경국지색이라 하니...
사기(史記)에 따르면 달기는 은나라 제후국이던 유소씨의 딸이며 잘 하는것도 많고 억수로 이뻤다고 전한다.
주왕과 달기
주왕이 달기의 아름다음에 빠져 그녀가 원하는것과 하는말은 뭐든 들어 주게 된다.
궁궐인 녹대 1km의 길이에 높이 3미터 그곳으로는 온갖 금은 보화가 가득 했고
그중의 주지육림(酒池肉林).포락지형(炮烙之刑)은 달기가 좋아하던 것이다.
연못을 파서 술을 가득 채우고, 나무에는 고기를 매달아 선남 선남 선녀가 발가벗고 술과 고기를 먹게 하는데
손을 사용해서 먹으면 손 모가지를 잘라 버렸고, 죄인이나 충신들이 충언을 하면 구리 기둥에 기름을 바르고 그 아래는
이글거리는 숯불을 피워 맨발로 구리 기둥을 건너게 하는 중벌을 내렸으니 대부분 떨어져 죽음
은 왕조를 살려보려 충언(忠言)을 하는 신하들은 대부분 뼈를 바르고, 살을 발라 젖갈을 담아 인근 제후국들에 보내주는
악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지나가는 임산부의 배속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배를 갈라 성별을 확인 했다고 하니
주왕과 달기는 천생연분임에 틀림없다
양숙리 마을앞
멀리 지나온 지맥길 능선
청송은 논 농사보다 대부분 사과 농사며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과수원이다.
사과꽃이 하햫게 피는 날 이곳을 지난다면 사과 꽃향기에 흠뻑 취할 수 있을터
이곳에서 물 한번 건너주고
부남면 양숙리 에덴 농원
년봉 1억 5천의 사과밭 사장님
이제는 돈도 싫고
그래서 사과 밭 하나 사라고 하신다.
평당 20만원
사과밭은 4천평 그리고 별도로 하천 부지 2천평....돈이 얼마야
아주머니 사과밭 한켠 저온창고에 고개를 들이 밀어보니 보기좋은 사과가 한통속에 들어 앉아 있다.
사과 하나 맛보자 하니 아무거나 하나 골라서 주신다.
사과 한입 베 물어 보니 사과가 이런 맛이었나 싶을 정도로 맛이 뛰어나다.
수십년 동안 먹어 보던 사과중에서 제일이라 생각
청송 사과는 대부분 이런 맛 일테지만 수송 과정에서 수분이 빠져나가 집에 도착하면 맛이 변하게 되는것 같다.
주문 하실분 계시면 주문 하십시요
단, 저온창고에서 나오면 사과는 수분이 빠지며 배달되는 시간에 일정 부분의 수분이 없어져
맛이 없을 수 있습니다.
낙동정맥 간장고개에서 흘러오는 노부천이 용전에 합수되는 곳
낙동정맥 간장현-질고개에서 흘러온 노부천
부남면의 삼치교
삼치교 아래 홍원리 가는길
인생은 굽이 돌아가는 길처럼 한치 앞을 보른다.
다시 달기와 주왕
주왕에게 충언을 하던 비간'이란 숙부의 심장을 꺼내기도 하였으며
비간의 임신한 부인의 배를 갈라 태를 보기도 했다
강호라는 충신의 눈알을 빼내고 그 살을 발라 젖갈을 담아 제후국이던 주나라의 서백후 창(문왕)에게 보내자
서백 창이 충신의 살을 발라 보낸 젖갈을 보니 애통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에 젖갈을 가지고 온 신하가 은나라의 주왕에게 창이 눈물을 흘리더라며 간언을 하니
주왕은 창(문왕)을 유리 감옥에 가두게 된다.
그러자 창의 아들 백읍고가 제물을 들고 아버지를 풀어 달라고 하자 무왕은 백읍고를 죽여 살을 발라내고 곰탕을 만들어
창(문왕)에게 먹게하니 창은 알면서도 모든 분노를 삼키며 단숨에 아들의 살이 담긴 곰국을 마신다.
주왕은 누구든 까불거나 대들면 잡아 죽여 살을 바르고 포를 뜨고 젖갈을 담 그거나 곰탕을 만들었으니...
누가 감히 주왕에게 대들거나 까불소냐
지나온길
물은 깨끗하게 흘러가고
모퉁이 돌아서면 청송군 상수원 보호구 역이라며 온통 휀스를 쳐두었다.
홍원리 마을 앞 절벽
지나온 홍원리 방향
먼발치에서 국립공원 주왕산을 보고 싶었지만 아직 주왕은 보이지 않고
작년에 수확하지 않은 산수유가 새로운 자식을 품으려 꽃을 피웠다.
홍원리 개오동 나무 (천연 기념물 401호)
1690년에 심어진 것으로 추정 되며 높이8미터 둘레 4미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용전천길에 천연 기념물인 이곳 부남면의 개오동 나무와 파천면의 애절한 전설을 간직한 왕버들 나무가 있으니
하나는 가는길에 찾으면 될듯
홍원교에서 본 가야할 강길
부남면
물은 이곳에서 조금씩 청태가 보이며 더러워 지는듯
신발 벗기 싫어 검은색 비닐 봉투을 신고 후다닥 건너오니
뒤에 트럭이 온다 조금 기다렸다가 타고 올걸 그랫나...
부남면 감연리에서 물 한번 건너고
낚시꾼을 두고 우리는 강태공이라 부른다.
강태공 이름은 여상이며
강태공은 주나라의 무왕을 도와 은나라를 멸망하게 한 인물이니
그의 나이 70세에 문왕(서 백창)만나지만 은나라를 공격하기전에 문왕은 병으로 죽고
그의 아들 단(무왕)을 도와 병력 5만으로 70만의 은나라를 공격한다.그의 책으로는 육도(六道)병서가 있다.
훗날 공이 인정되어 제후국인 제나라의 왕이되어 나이 130세까지 살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백이,숙제 형제가 폭력은 폭력을 났는다며 "주나라 땅에서 나는것은 어떠한 것도 먹지 않겠노라"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고사리 뜯으며 살다가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이무렵 이야기다.
주왕산면 상평리의
범드메(範巖)바위
범이 올랐다는 바위
범덤 ...범더미로 ...범드메로 바뀐듯
범드메 아래로는 시퍼런 물이 고여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覆水 不返盆
주나라의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 하는데 일등 공신인 태공망이 출세 후 자기 부인 마씨를 두고 한말이다.
태공망은 나이 70세까지 관직에 나가지 않았으며 공부만 했다고 한다. 부인이 태공망 뒷바라지 하다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가게 된후에 태공은 남의집 허드랫일을 도우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게 된다.
공부와 곧은 낚시 바늘로 고기를 잡는 절대 신공을 펼치다가,이후에 사냥을 하던 훗날의 주나라 문왕(文王)의 눈에 뜨여
중용되게 되니,그후 주나라의 제상이 되었고 제나라의 공(公)으로 봉해진다.
태공망이 남긴 유명한 명언으로 복수 불반분(覆水 不返盆) 한번 엎지러진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뜻이다.
태공망의 전 부인 마씨는 강태공이 주나라 문왕을 만나기전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태공망을 떠났는데 훗날 태공망이
성공 했을때 다시 돌아와 아내로 맞아주길 요청했다. 이에 강태공은 하인을 시켜 물을 떠오게 한후 물을 땅에 쏟으며
그 물을 다시 그릇에 주워 담으면 부인으로 맞아 주겠다고...
어지간하면 참고 살지 나이 70에 집을 나가시면 어쩌란 말이고
그동안 정을 생각해서 좀 봐주시지 않으시고...
사과 나무는 한줄로 그아래는 잔디가 곱게 자란다.
상평교와 낙동 정맥 트레일런길
용전천은 성형중
블도져로 갈대를 싹 밀어버린 모습이다.
공사 하는것도 좋지만
모래는 강바닥에 그대로 남겠지만 작은 흙 알갱이는 아래로 흐르며 진흙 뻘을 만들기에
강물속 자갈 위로 그대로 쌓여 굳어 버린다.
주왕산면 지리동에서 본 주왕산
국립공원 주왕산을 못보고 가면 어쩌나 했는데 멀리서라도 이렇게 볼 수 있음에 감사 드린다.
주왕과 달기 이야기는 중국의 은나라 시대 이야기
저곳 주왕산의 이야기는 주왕과 마장군 이야기가 별도로 전한다.
달기 약수는 낙동정맥 대둔산과 먹구동에서 흘러 내리는 괘천에 자리하며
옛지명이 청송군 부내면 달기동이라 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약수물로 닭백숙을 하면 맛있는데
강따라 오면 막다른 길에서
이곳을 건너야 하는데 시맨트 수중보에 이끼가 너무 많아 미끄러지면
저 아래로 곧바로 직행 할것 같다.
주왕산에서 흘러온 주방천물이 용전에 합수되는 부분에서 물을 두번 건너게 된다.
주왕산에서 흘러온 물과 용전천이 만나는 합수지점
청송군 청운리로 가는길에 갈대밭 속으로 들어가 물 한번 더 건너고
깨끗해 보이지만 물이끼가 많아 무지 미끄럽다.
청운교에서 본 용전천
잠수교에서 본 강
오다보니 어느덧 청송읍이다.
용전천과 달기 약수물이 내려오는 괘천이 만나는곳
지나온 용전천
우송당
조선 고종때 통정 돈영부 도정을 지내신 파평 윤씨 우송(友松) 윤두석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손자가 만든것이다.
돈영부:조선시대 종친부에 속하지 않은 종친과 외척을 위해 설치된 관서,(종친 사무를 보던 정 3품 벼슬)
망미정(望美亭)
고종 26년 당시 군수로 재임하던 장승원이 강가의 기암절벽을 보고
아름다움을 본다는 뜻으로 만든정자다.
이곳에 놀러오신 분께 부탁해서 인증 담고
이곳 청송에 왔으니 잠시 소헌 공원에 가본다.
소헌 공원은 2011년 4월에 청송군에서 지역 주민들의 문화 공간으로 할용하기 위하여
사적 공원으로 지정 하였으며, 조선시대 가장 어진 왕후로 칭송을 받은 내조의 여왕 세종대왕비 소헌 왕후 심씨의 시호를
따서 소헌 공원이라 부른다.
청송은 소헌 왕후 심씨의 본향(本鄕)이라는 연유로 세조 8년(1459년)에 청송군에서 청송 도호부로 승격되었다가 437년뒤 고종 32년 갑오 경장때 다시 청송군이 되었다.
외씨 버선길 안내
운봉관
운봉관은 청송의 객사로 세종 10년에 하담이 건축 하였다.
객사는 조선관리들의 숙소 기능과 고을의 부사가 임금께 예를 올리던곳
찬경루
세종 10년에 지청송군사 하담이 만든건물
찬경루의 명칭은 청송 심씨 가문에서 소헌왕후가 탄생 하였고, 이 누각이 청송 심씨 시조 묘소를 바라보고 있어
"우러러 찬미한다"는 뜻으로 찬경루라 하였다고 전한다.
루각 안에는 한철유가 쓴 송백강릉(松栢岡陵)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그리고 송시열,서거정 김종직 글도 있고
찬경루
청송군의 강수욕하는 현비암
강가로 모래와 작은 자갈이 가득하다.
여름철에 인근에서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 오시는듯
강 수욕하는곳에 자리잡은 늙은 수양버드 나무가 반긴다.
멀리 구암산에서 이어오는 산줄기가 이곳 사일산을 지나 보광산 끝부분에 멋진 현비암이란 절벽을 만들어
두었고 그 아래로 둘레길이 보인다.
용전천(龍纏川) 현비암은 보광산 용머리 부분에 해당하며 세종대왕의 정비인 소헌왕후 심씨에서 유래해서 붙어진 이름인듯 하다.
강 이름도 용머리에서 유래가 된듯
용머리 아래 현비암은 여름철에는 사람들로 바글바글 할것 같은곳이다.
강 수욕하는곳을 지나며
청송군 파천면 관리 마을앞 왕버들 나무(천연 기념물 193호)
이 나무는 1560년경에 심은 나무로 추정하며 높이는 18미터 둘레 약 6미터에 이른다
오래전 한 총각이 이웃 처녀를 아내로 맞이 하기위해 처녀의 늙은 아버지를 대신해 대리종군(代理從軍)을 나서기 전,
훗날을 기약하며 심었다고 한다.
대리종군한 이웃 총각을 기다리던 처녀는 몇년이 지나도 총각이 끝내 돌아오지 않자 버드나무에 목을 메어 죽었으며
처녀가 죽은뒤 버드나무 곁에는 소나무가 한그루 자랐으나, 2006년에 소나무가 고사하자, 이웃 마을 사람들이 조그만
소나무를 두그루 심어 두었다.
지금은 변치 않은 약속의 상징물로 남아있는 나무다.
변치 않은 약속의 상징물 버들나무
당진 영덕간 고속도로
멀리 사일산인듯
외씨 버선길
강건너 파천면 소재지
징검다리를 건너서
물속 풍경이야 어딜 가나 비슷하니
뭐라 쓰나
파천면 황목리 마을의 수중보에 담겨진 물속 풍경은 작은돌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푸른 이끼(청태)가 가득하다
이곳 물속에도 물고기가 많이 산다고 하니...
그녀석들은 이곳에 담겨진 물이 최고로 깨끗한 물로 알고 살아가는듯
세상은 나가봐야 알고 모진곳에서도 살아 남는 지혜를 갖춰야만 살아 남는것 같다.
지나온 강길
장마로 인해 푹푹 파인 송강 생태 공원을 지나
송강 2교에서 본 용전천
아래로는 왕버들 나무 군락지가 있으며
임하댐 영향으로 물이 막히는곳이다 보니 진흙이 쌓여 버들 나무가 엄청 빼곡하게 자란다.
송강 생태공원
장마때 큰물이 지나가며 싹쓸어 버린듯
다시 공사중이다.
가운데 멀리 청송군 진보의 비봉산이 올려다 보인다.
어천 마을 오기전에 인증 사진 담아두고
파천면 어천 마을을 지나 어천교에서 짧은 강길 용전천을 끝내며
아침에 택시 기사분께 오후 4시 5분까지 이곳으로 오라 했으니
잠시 옷갈아 입고 앉아 기다리니 찾아 온다.
경북 영양의 일월산에서 흘러온 반변천이 임하호에서 용전천과 만나는곳
임하댐과 멀리 낙동정맥의 대둔산 자락의 태행산이 지척이고
용전천은 조선시대 내조의 여왕이었던 본관 청송 심씨 소헌 왕후의 고향이 있는 곳
청송사과로 유명하고 주왕산으로 잘 알려진 땅
산으로 둘러 쌓여있어 무슨 산인지 알 수 없는 산들로 가득찬 곳을 지나며, 물은 근본이 깨끗하니 그 깨끗한 속에
청송 심씨의 여식 중 조선 4대왕 세종 이도의 비였던 소헌 왕후(심온의 딸)
13대 명종의 비 인순 왕후(심온의 6대손),
20대 경종 대왕의 비 단의 왕후(심온의 12대손)
세분의 왕후를 탄생시킨다.
여의주를 양손에 들고 그것도 모자라,입에 문 용(龍)이 청송 심씨 안방마님 치마폭 속으로 슬며서 들어간건지 알길 없으나
대단한 집안의 대단한 가문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용전(龍纏) 어찌 보면 용이 산다는 전(殿)이니 그건 다름아닌 임금이 살고있는 어전(御殿)이 아닐까
다음강은 또 어디로 가보나!
첫댓글 역사 이야기와 함께 긴 글 즐감 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역사 이야기 조금 지루하죠
간략하게 쓴다는게 길어 집니다.
글 감사합니다.
주왕과 달기...중국의 4대미인...망나니...중국역사 재밌게 읽어봤네요^^
용전천발원지 걸음걸음 수고많이하셨습니다.
중국 최고의 미녀 달기
중국 역사를 조금 재미나게 써 봤는데 재미 있게 보셨다니 좋습니다.
용전천은 청송 심씨 왕후의 강이라 할만 합니다.
글 감사합니다.
해박한 역사지식에 또 한번 놀랍니다.힘!
감사 합니다. 오시면 더 길게 이야기 해드릴 수 있는데
나중에 좋은곳 갈대 한번 걸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강줄기를 가기위해
공부를 많이하시는군요
관런된 자료
찾는게 더힘들겠습니다
남은오후시간
평온하세요
ㅎㅎㅎ제가 역사공부는 늘 하는 편이라
여기저기 갈때 많은 도움이 됩니다.
역사와 강 이야기 잘 찾아 쓰는게 조금 덜 지루할것 같아서요.
저는 청송하면...
어마 무시하다는 청송보호 감호소 만 생각나는디...ㅠㅠ
방장님 덕분에 가을 단풍이 멋진
주왕산의 전설도 들어보고 재밋는 강행기 즐감합니다.
곱게 빗은 머리보다
반다나가 더 잘 어울리는 셀카사진 좋습니다..^^
평택으로 나들이 가야 바다님을 만나보겠죠
좋은날 잡아서 평택항으로 나들이 가도록 할테니
제가 가는날 어디 도망가지 마시고 술한잔 나누도록 해요
언제 가는지는 묻지 마시고...
언젠가는 방장님과 함산하길 기대합니다.건승하세요.
이제는 얼음이 보이지 않는군요.
지난번만해도 얼음이 있어 내리막길을 내려갈 적에 위험해 보였는데....
햇살 비추지 않으면 추위에 잠시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금방 체온이 떨어지는 요즘 날씨에 수고하셨습니다.
강길을 보면서 많은 공부해갑니다,
이야기가 있으니 더 정독을 하게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