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24 - 황거를 보고는 긴자를 구경하다가 렌가테이 식당의 돈가쓰를 생각하다!
2022년 11월 8일 아침에 니혼바시 (日本橋 일본교) 다리를 보는데 1603년 에도 막부가 세워지고 처음
세워졌지만 지금 다리는 20번째 건축된 것이라 오래된 일본 전통양식의 고풍스러운 다리는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가 그린 "동해도53 역참“ 첫 번째 그림 "니혼바시 아침풍경" 이 있습니다.
황거 앞에는 수로가 있으니 팔뚝만한 잉어들이 유유히 헤엄치고 백로며 오리가 노는 모습이 매우 한가로운데
자갈이 깔린 뜰을 지나 황거 정문으로 가니 단축 마라톤 을 한 것일까요? 수백명이 앉아서 땀을 식히는
가운데 연방 선수들이 뒤이어 들어오고 있으니 할아버지, 할머니 자원 봉사자들의 활약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안쪽에 황거의 내성(內城) 은 또 2차 해자를 파고 강물을 채웠는데 안경 모양의
다리인 메가네바시 에서 저건너 숲속 높은 성옆으로 철교인 니주바시 를
바라보는데..... 여기서도 일왕(日王) 이 사는 저택은 한참 더 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긴자 는 지하철 도쿄메트로 긴자센 (銀座線) 을 타면 긴자역 에 내리면 간단하지만 우리는 야마노테센
(山手線) 전철을 탄지라 유라쿠초(有樂町) 역 에서 내려서 긴자구치(銀座口) 로 나와 오른쪽
길로 가다가, 왼쪽 큰길을 걸어서 다리로 강을 건너 오른쪽으로 가다가 마루노우치 긴자에키 가기
전에 좌회전을 하니 마쓰야토리(松屋通り) 이고 4블록을 걸어서 긴자3정목 (銀座三丁目) 교차로 입니다.
여기 긴자 (銀座) 는 우선 눈에 뛰는게 미쓰고시 백화점 (三越百貨店) 이니 백화점의 거리라고 할만한데
늘어선 건물들이 개성이 있어 보는것 만으로도 즐갑고, 마침 일요일이라 "차없는 거리"
행사로..... "주오도리" 에 차도가 인파로 그득한데 현악단이 연주하는 이벤트 까지 볼수 있어 기쁩니다!
4인조 악단 이 야마노 악기점 (山野樂器) 앞에서 무료로 거리 공연을 하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여들어 함께 즐기는 모습이 부러운데 여유있고 한가한 두말 오후 모습이니, 길거리에서
노래도 아닌 현악기만 연주하는 "클래식" 을 즐기는 사람들이 이처럼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일행들이 ‘미쓰코시’ 백화점 에 들어간 사이 우리 부부는 일본에서 가장 비싼 곳으로 평당 19억원짜리 땅에
세워진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야마노(やまの) 악기점 에 들렀는데, 세상에나!!! 7층 건물
전체가 온갖 악기와 음반 으로 가득하니 도카이도 시즈오카현의 하마마쓰에서 본 악기 박물관 이 떠오릅니다.
빡센 일정에 힘들어하던 울 마눌이 이곳에서 바이얼린 이며 플룻, 섹스폰, 키타, 첼로며 이름도 알수
없는 온갖 악기에 빠져 정신이 맑아지고 체력을 회복 했다는 것이니 .......그게 더 놀랍습니다.
마눌이 진열된 바이얼린을 연주해 볼수 있느나고 물으니 직원은 흔쾌히 그러라는데 워낙 가격이 비싸서
사지도 않을 것이면서도, 부산의 오케스트라 GCO(옛 BMO) 단원으로 바이얼린 연주자 인 마눌은
비우도 좋은지라..... 천연덕스레 진열된 바이얼린을 들고는 7~8 분 이나 연주하니 나는 바늘방석 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피로와 고생을 모르는 법 이란걸 새삼 깨닫는데... 가부키좌 극장 까지
보고는 일행들은 나중에 우에노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그때까지 아카사카 시내 구경을 하라고 말합니다.
옛날에 긴자 에 처음 왔을때는 스시 를 한번 먹어보자고 밖에서 줄을 서서 30분쯤 되니 식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주방에 4명의 요리사 앞에 2명씩 마주보고 앉은 8개 자리가 있고 홀에서 긴 나무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기를 30분이 지나도 순서가 돌아오지 않기로 포기 하고 나온 기억
이 있으니, 문득 동아일보에 “尹-기시다 2차 만찬은 128년된 경양식집 서” 라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는 3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한뒤 긴자의 스키야키 전문점인 '요시자와' (吉澤) 에서 1차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요시자와는 1924년 정육점으로 시작해 식당을 함께 운영하는 노포로 스키야키 와
샤부샤부, 스테이크 등 일본 소 흑우 마쓰자카규(松阪牛), '와규' 를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두 번째 만찬으로 요시자와에서 280m 떨어진 긴자의 128년된 경양식집 ‘렌가테이(煉瓦亭)’ 를
찾아 대화를 이어간다는데, 1895년 창업해 128년 역사를 자랑하는 경양식집인 렌가테이는
포크 커틀릿에 양배추 를 곁들인 일본식 '돈가스' 와 오므라이스 의 발상지로 알려진 곳 입니다.
요미우리신문은 오므라이스 를 좋아하는 윤 대통령 취향을 고려해 1895년 창업한 경양식 명소 렌가테이
가 정해졌다며 “소수 인원만 참석해 두 정상의 신뢰 관계를 깊게 할 것” 이라고 전했는데... 각국
정상이 올 때마다 정성을 다해 손님을 접대하는 일본 특유의 ‘오모테나시’ 문화가 발현됐다는 것이지요.
14일 동아일보 취재진이 방문한 렌가테이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오므라이스를 먹으러 왔다는 60대
일본인 여성 “일본에서 돈가스와 오므라이스를 처음 내놓은 곳으로 유명한 양식집” 이라며 “현 주인은 4대
째이고 나는 30년전부터 단골” 이라고 소개하면서 예약을 받지 않아 줄을 서서 먹어야 한다고도 귀띔했습니다.
렌가테이의 대표 메뉴인 ‘원조 포크커틀릿(돈가스)’ 과 ‘메이지 탄생 오므라이스’ 는 2600엔
( 2만5500원) 이며 가장 비싼 ‘비프스테이크’ 는 1만6000엔(15만6800원) 이고....
맥주, 위스키, 니혼슈(사케) 등 술도 취급하는데 역사가 깊고 옛날식 실내 장식이
그대로라 분위기는 다소 허름한 편이며 신용카드는 사용할 수 없고 오직 현금만 받는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은 소가 농사에 이용 되는데다가 675년 불교 의 영향을 받은 덴무왕(천황)이 육식을 금지
하면서 1,200년간 소, 말, 돼지, 개와 닭 등 일체의 육식을 하지 않았는데.... 다른 나라
에서는 이런게 이해하기 어려우니, 덴노(천황) 는 왕으로 번역해서는 의미가 완전하지
못하고 제사장을 뜻하는 단군에 통치자를 뜻하는 왕검을 합친 “단군 왕검” 정도 개념인가 봅니다?
1868년 무진전쟁 반란의 승리로 메이지유신 이 시작된 이후 일본인의 키와 체격 이 서양인들과 차이가
나는걸 따라 잡으려고 1872년에 천황(일왕) 이 저 칙령을 해제함으로써 비로소 육식 이 가능해
졌지만 천이백년을 먹지 않던 고기 라.... 서양의 비프 스테이크나 바비큐, 한국의 개고기 보신탕
이나 돼지고기 수육 및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불판에 구워먹는건 꿈에서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쌀 米(미) 자를 해자(解字) 하면 八十八 이 되니 농민의 손길이 88번 이 가야 쌀이 된다는 뜻으로 고된 노동
이니 농사에 지치고 여름철 무더위에 쇠약해진 몸을 집에서 기르던 똥개 를 잡아 몸을 추스렸으며,
2000년 까지도 우리 주변에 즐비하던 보신탕집이 브리지드 바르도의 캠페인.... 그리고 단오나 칠석등
중국 문화가 지고 핼로윈데이등 서양 문화가 뜨면서, 애완견이 반려견이 되는 추세에 맞추어 사라졌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 조심스럽게 먼저 등장한게 소고기 전골인 규나베 인데..... 고기는 여전히 꺼림칙
한지라 채소 에다가 일본인에게 수천년간 익숙한 된장 을 듬뿍 넣었으니 고기국인지
된장국인지 모를 요리로 시작해 일본인들이 차츰 고기에 익숙해지자 이후 스키야키 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후 서양요리 비프스테이크를 변행해 비후까스 가 나오고 포크 커틀릿 을 모방해서는
밀가루를 입힌 돈가스 가 출현하며.... 그 외에도 고기와 채소를 볶아 밥에 올린
카레라이스, 오므라이스 및 고로케 가 탄생했고 이후 야키토리와 야키니쿠가 등장합니다.
그 외에 일본에서는 중국 장개석 군대의 쪄서 말린 국수를 모방해서 라멘 을 만들고 인천 화교들이 짜장면을
만들었듯 나가사키 화교들은 짬뽕 을 만들었으며, 포르투칼의 판(빵) 을 들여왔는데 유럽에서는 소금간을
해서 반찬으로 먹던 팥을 세상에서 처음으로 빵에다 넣는 기상천외한 짓을 했으니 "단팥빵" 의 탄생 입니다.
요나구니 스스무 씨가 동아일보 ‘오 나의 키친’ 이라는 칼럼에 올린 “커틀릿의 바삭한
변주곡 돈가스” 라는 글에 보면.... "내가 서울 중심에 사는 이유이기도 한데, 계절을
느끼기 위해 남산을 자주 오른다. 도심을 지나 언덕에는 돈가스 전문식당들이 즐비하다.“
"돼지고기를 저민 뒤 튀김옷 을 입혀 튀겨낸 요리인 ‘돈카쓰’ 는 프랑스어 ‘코틀레트
(cotelette)’ 에서 이름을 따 왔다. 원래는 송아지, 양, 돼지의 갈비 와 함께
붙은 고기에 빵가루를 입히고 버터에 바삭하게 지져낸 다음 오븐에 익혀 완성 한다."
"프랑스의 '코르동블뢰' 는 고기 안에 치즈를 넣어 지져낸 것이며, 이탈리아의 코톨레타 알라 밀라네세,
오스트리아의 송아지 슈니첼 도 비슷한 요리다. 영어 커틀릿 의 발음이 힘든 일본인들은 ‘가쓰레쓰
(katsuretsu)’ 로 부르다 쉽게 ‘가쓰’ 로 짧아졌다. 돼지고기를 사용하면서 ‘돈(豚)’ 과 함께 돈카쓰 가 됐다"
"처음 일본에서 서양식 으로 만들어진 '커틀릿' 은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손님은 기름진 버터에 구운
뻑뻑한 고기 가 익숙지 않았고 요리사는 조리 시간 이 오래 걸려 바쁜 손님들의 불평을 들어야만 했다."
"‘렌가테이-벽돌집’ 이라는 양식당을 운영하던 기다 모토지로 는 1895년 일본들이 좋아하는
튀김 방식 으로 조리 방식을 바꾸면서 문제를 해결했다. 곁들여지는 채소도 볶음 채소
에서 채 썬 양배추 샐러드 로 바꿨다. 기름기도 줄이고 소화에 도움이 되는 간편한
방식으로 바꾸자 손님이 몰렸다. 긴자에 있는 그의 식당은 유명해졌고 지금도 운영 중이다"
"1854년 일본이 개항한 뒤에 가장 놀랐던 것은 서양인의 큰 체구 였다. 서양인과 일본인이 마치 어른과
아이 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은 큰 고민에 빠졌다. 일본 정부는 서양인 처럼 큰 체구 를 갖기
위해서는 채식 만으로는 아무래도 힘들다는 결론 을 내렸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문명 개화 가 시작됐다."
"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문명개화' 를 의미하기도 했다. 1904년 러일전쟁 이 시작되자 영양 공급의 주재료인
소고기는 군대로 보내졌고 일반인들은 고가(高價) 의 소고기 대신 값싼 돼지 고기 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1929년 궁중 요리사였던 시마다 신지로 는 ‘폰치켄’ 이라는 식당을 열고는 돈카쓰 를 선보였다. 3cm 정도의
두꺼운 고기를 빵가루 를 입혀 튀겨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럽게 완성했다. 또 먹기 좋게 조각낸 뒤
젓가락을 사용하게 하고 밥과 된장국도 곁들였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오늘날의 돈카쓰가 그렇게 탄생했다."
" 내 기억속의 돈카쓰는 ‘가미카쓰’ 라 불리는 종이 돈카쓰 이다. 가난했기 때문에 비싸고
두꺼운 고기도 본 일이 거의 없었는데, 얇은 종잇장 같은 돼지고기 가 두껍게 입힌
빵가루와 튀겨져 나오면 소스와 함께 접시 바닥까지 청소하듯 해치웠던 기억이 있다.
오래된 저 기억이 떠오를 때면...... 남산의 산책로에서 얼굴만큼 큰 돈카쓰를 마주하곤 한다 "
돈카쓰 말고도 일본인이 외국 음식을 모방해 만든 것 중에 고로케 가 있는데, 프랑스의 크로케트 (croquette)
또는 네덜란드 크로커트(kroket) 에서 시작됐으니 1898년 요리의 황제라 불리는 오귀스트 에스코피에
(1846∼1935) 는 프랑스 요리를 집대성한 요리책 을 통해 크로케트 를 전 세계에 알리니..... 베샤멜
소스 를 곁들인 요리는 평민들은 먹어 볼 수 없는 고가로, 돈카쓰나 스테이크 보다 더 비싼 가격 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1927년 도쿄 긴자에 ‘조시야 (Choushiya)’ 란 정육점을 운영하던 아베 세이로쿠 는
팔고 남은 고기나 변색된 자투리 고기 를 다져 감자와 섞고 정육점에 굴러다니던 기름덩이
를 끓여 기름 대신 사용해서 오늘날의 "고로케" 를 만들었으니.... 고기, 감자, 기름 의
환상적인 조합이지만 가격은 프랑스 스타일 크로케트의 10분의 1 정도인 고로케의 탄생입니다!
요나구니 스스무 씨는.....“국수 공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엄마는 월급날이면 나를 시장 근처 고로케
가게 로 데려갔다. 기름에서 건진 고로케 를 신문지 조각에 싸서 건네주었다. 돈가스 소스를
듬뿍 찍어 먹으려 할 때 마다 엄마는 “조심해라, 입 덴다” 고 항상 같은 말을 했다. 간 고기
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고로케 였지만..... 빵가루의 바삭함과 고소함 이 가득했다" 라고 회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