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에 대한 소고
불교문화권에서 자주 다뤄지는 개념이 바로 '업'입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연기론과 결부시켜 다음의 주장을 합니다.
현생의 삶을 규정하는 것이 전생의 업이고, 또 후생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현생의 업이다.
그러니 현생의 삶을 받아들이고 선업을 쌓기를 게을리하지 말아라.
언뜻 그럴듯해 보이는 설명이지만, 이 안에는 치명적인 모순이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생명의 기원에 대해 갖는 불교의 입장을 살펴보면,
창조설을 주장하는 기독교에서와는 달리 불교에선 '진화론'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 진화론이라는 것은 애초에 우연히 만들어진(자연 발생설) 유기물들의 조합에 의해서
생명체가 발생했고, 또 그것들이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여러 변이를 낳아 지금에 이르렀다는 이론입니다.
여기서 생물종의 특성을 규정하는 것은 거의 전적으로 그 생물이 처한 환경입니다.
불교에서 주장하는 '업'이 끼여들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증가하는 생물의 수에 대해서도 설명이 아주 궁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수의 생물이 이 지구상에 살고 있지는 않았으니까요.
이를 다른 행성에 존재했던 생명체의 영혼이 지구상으로 옮겨왔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것에도
여전히 무리는 있습니다. 그 행성이라고 처음부터 생명이 존재하지는 않았을테니까요.
그래서 '업'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면 자유의지를 가진 생명이 절대자에 의해 창조되었다라는
기독교가 말하는 '창조설'을 받아들여야 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업보'라는 것은 없습니다.-종토방에서 펀글-
죽음이후 중음을 거쳐 지은 업보대로 육도로 윤회한다는 대승불교,
다음 생의 재생연결식(과보로 나타난 마음임)을 결정하는 것은 그 생에 지은 여러 업들 가운데 하나라고 보는 것이 상좌부 불교의 입장입니다. 그러면 한생에서 지은 수많은 업들 가운데서 어떤 업이 재생연결식이라는 과보의 마음을 일어나게 하는가에 대해서 상좌부 불교는 네 가지 기준을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무거운 업(중업) 둘째,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 셋째, 습관적으로 지은 업, 넷째, 그외 어떤 업입니다. 즉 한생에서 무거운 업(극악업으로는 5무간업, 극선업으로는 삼매체험과 성자의 과위의 증득 등)을 지은 사람은 반드시 이 무거운 업이 재생연결식을 결정하게 되는데 극악업을 지은 자는 지옥에 극선업을 지은 자는 선도의 재생연결식을 가져오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무거운 업을 짓지 않은 자는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이 재생연결식을 결정하게 되고 임종에 다다라 이러한 업을 짓지 않은 자는 그생에서 습관적으로 지은 업이 재생연결식의 과보를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상좌불교,
윤회를 논하기전에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체는 어떻게 발생했으며..
최초의 윤회하는 주체 (번뇌, 갈애, 업)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누구의 전생업이 재생연결되어 생명체를 탄생하게 했는지 부터 밝혀야 할것이다.
첫댓글 경을 읽을 때 삼세양중인과로 해석하지 말고 오직 현실, 이몸에다 맞춰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善業을 쌓기를 게을리하지 말아라??? 祖師禪에서는 善業도 業이니 쌓지 말그라.........라고 합디다.
進化? 創造? 業? 輪廻? 안 윤회? ............... 죄다 망상이지오 ㅋㅋㅋ
오직 修行으로 渡彼岸 헙시다요^^*
열심히 배우겟습니다.
수정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