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고택 외 답사 (12-30 : 연번 153차) 답사 결과 (1)
10월 26일 답사길은 대전선사박물관에서 주관한 답사계획에 편승한 일정이었습니다.
남의 계획에 따라 나선 길이라 차를 몰고 가는 부담도 없이 자유롭고 편안한 길이었지만, 하루에 보기에는 너무 벅찬 답사 코스라 마치 머리 나쁜 학생에게 과도한 학습량이 주어진 것만 같아 버겁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좋은 날씨에 아름다운 가을 풍광을 즐기면서 내포평야와 산세가 주는 색다른 맛을 느껴봅니다.
거암 전흥수 대목장이 세운 사설 박물관인 거암고건축 박물관을 들려, 수덕사 대웅전의 아름다움을 한껏 음미해봅니다.
덕숭산 자락의 수덕사는 백제시대 때 지어진 절이라고 하지만 남아있는 것은 고려 충렬왕때 지어진 대웅전이 확실한 건축연대를 말해주고 있을 뿐입니다. 근대에 와서 만공선사와 그의 스승인 경허대선사, 그리고 김일엽 스님, 고암 이응노 화백으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합니다. 인근에 있는 추사 고택은 추사체 글씨로, 금석학의 대가로 그리고 세한도로 유명한 선생의 고택을 찾아본다는 것은 그 또한 많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예정했던 윤봉길 의사의 충의사 방문 대신 공주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마곡사 근대불화전을 둘러봅니다.
추사고택과 마곡사 불화전을 중심으로 한 (1)편과, 고건축 박물관과 수덕사 대웅전을 (2)편으로 소개합니다.
<추사기념관, 추사 묘가 있는 뒷산줄기에서 추사 고택으로 이어지는 지형은 용의 형국이라는데 용산 아래에 추사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풍수지리적인 안목이 필요한 대목이다.>
<용산을 주산으로 한 추사고택>
<안내소 입구에서 본 유적지 안내문>
<양택과 음택이 함계 하고 있다. >
<53칸 옛집에 사랑채 부분: ㄱ자형 건물에 팔작집과 맞배집이 함께하고 있다.>
<솟을대문 안에서 밖을 내다본다. 너른 내포평야의 모습이 내려다 보인다.>
<사랑채 마당 한 가운데에는 해시계 받침대가 석년(石年)이라는 이름으로 서있다.
세월은 흘러 영화도 가고 사람도 가고 돌봐줄 후손도 변변치 않은 채 돌받침대만이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사랑채 곳곳에 주련으로 편액으로 걸려있는 추사의 글귀들이 무언가를 말해주는 듯 하다.>
<국보인 세한도 복사본이 걸려있고, >
<죽로지실의 사랑방에는 아직도 화로에서 따뜻한 기운이 여전히 남아서 다정한 벗과 마음을 찻잔을 기울이며 담론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문자향(文字香)이라도 맡을(聞) 수 있는 식견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안채로 들어가는 문>
<영조의 두째 따님인 화순옹주가 거처했을 안방 문 위에는 무량수(无量壽)라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오래오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불로장생하기를 , 영셍. 만세 만세, Lon live ...>
<적장자 손이 없어 다른 집의 화목 오소도손한 가족들을 보고 그렸다는 글귀는 우리의 마음을 찡하게 울린다.
"최고의 모임은 아들딸, 손주가 함께함" 이라고 한 추사의 심사를 짐작해본다. 회갑연에 모인 가족 모임이 떠오른다>
< 안채 뒤 곁에는 추사영정을 모신 사당 "추사영실"이 있다.>
<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백송은 가보지 못하고 대신 입구에 심은 나무로 대신한다.
백송 잎은 세가닥이다. 조선송은 2가닥인데 반해>
<제주도 대정현에서 유배를 보낸 추사가 묻혀있는 곳:
절개를 상징하듯 묘 앞에는 노송 한 그루가, 묘 뒤로는 대나무가 담을 두르고 있다.>
**시간에 쫒겨 추사 집안의 원찰이었을 화암사는 못보고 그 냥 추사기념관만 대충 보고 공주박물관으로 직행한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는 보기드문 근대불화전이 기획 전시되고 있었다.>
<본사인 마곡사와 말사인 절에서 소장하고 있는 불화들이다. 그중에는 국보 탱화가 3점이나 있지만, 비록 복사본이라도 한자리에서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는 기회이다. 근대 불화의 역사를 공부할 수 있는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