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전 일이다. 휴일을 보내고 아침 회사에 출근했다. 책상 위에 노란봉투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크기가 적당한데다 포장도 세련됐다. 보낸이는 잘 알고 지내는 대기업 사장이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남녀 손수건과 함께 흰 봉투가 들어 있었다. 얼마 전 문상한 데 대한 답례였다. 작지만 선물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우선 기분이 좋았다. 그 분의 인품도 다시 보였다.
상을 치르고 나면 보통 인사장을 돌린다. 조문과 조의에 대한 답례에서다. 정황이 없기에 먼저 서면으로나마 인사치레를 하는 것. 요즘은 문자 메시지로 대신하기도 한다. 정말 편리한 세상이 됐다. 그러다보니 정도 메말라감을 느낀다. 전화조차 기피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전화와 인사장, 문자메시지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감동을 줄까. 전화일 게다. 목소리의 울림을 통해 서로의 정을 확인할 수 있다.
아예 답례를 하지 않는 이들도 본다. 먼길을 다녀왔는데도 인사가 없으면 솔직히 서운하다. 그런만큼 나부터 잘 챙겨야 한다. 나는 제대로 못하면서 남에게서 바란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자기는 한 치 앞도 못보는 것이 인간이다.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본성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노란 봉투 속에 든 선물을 보면서 애경사의 예절을 거듭 되새겼던 일이 기억난다.
아내의 생일 이야기다. 그동안 아내에게 특별히 해준 것이 없다. 케이크나 하나 자르고, 외식하는 정도로 남편 노릇을 해왔다. 기념될만한 선물을 한 적도 없다. 값비싼 선물을 요구하지 않는 아내가 고맙기도 하다. 만약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면 안 사주기도 어려울 터. 내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서 그럴 게다.
작더라도 선물을 할 요량으로 물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느냐."고 했다. 돈으로 달란다. 생활비로 쓰지 않고 마음껏 쓰고 싶다고 했다. 큰 돈도 아니다. 수십만원. 부담이 안되는 액수다. 수백만원을 요구했더라면 난처했을텐데 다행이었다. 아들도 엄마에게 선물 대신 돈을 주었단다. 돈보다 더 좋은 게 없는가 보다. 돈이 야속하다는 생각도 든다.
실제로 매는 넥타이는 5~6장에 불과하다. 주 5일제가 되면서 다섯 개면 충분하다. 매일 바꿔 매도 지루하지 않다. 그 중에서 빨간 넥타이를 제일 아낀다. 아들 녀석이 고등학교 때생일선물로 사준 것이다. 그러니까 10년도 넘었다. 동네 가게에서 2만원 안팎을 주고 샀단다. 그것을 매고 나가면 많은 이가 잘 어울린다며 칭찬한다.
나 하나, 아내 하나씩 골랐다. 마냥 어린애 같은 녀석이 커서 부모님을 기쁘게 한다고 할까. 우리에겐 딸이 없다. 녀석이 딸 노릇도 톡톡히 한다. 엄마의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것. 백화점도, 미장원도 같이 간다. 그런 녀석이 예쁘고, 고맙다. 결혼 기념일에 맞춰 나는 하루 휴가를 냈고, 녀석은 쉬는 날이라 점심을 함께 하기로 했다.
글 / 오풍연 파이낸셜뉴스 논설위원
|
출처: 국민건강보험 블로그「건강천사」 원문보기 글쓴이: 건강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