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살의 책, 어떻게 할 것인가?
최광희 목사
수년 전에 나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한 성도로부터 책을 선물 받았다. 그 책의 이름은 특이하게도 『야살의 책』이었다. 야살의 책이면 구약 성경에서 여호수아와 사무엘하에 등장하는 그 책이란 말인가? 내용과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일단 열심히 읽었다. 내용은 꽤 재미가 있었다. 다만 여러 곳에서 성경과 상당히 다른 부분이 있어 마치 외경(外境, Apocrypha) 중 하나를 읽는 느낌이 들었다. 설마 이 책이 성경이 인용한 그 야살의 책이란 말인지 전문가들을 만나 정체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독일의 토마스 만(Thomas Mann)이 쓴 『요셉과 그 형제들』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무려 4부작으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이다. 토마스 만은 이 책에서 문학가로서의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때로는 성경적으로, 또 때로는 비성경적으로 재미있게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하지만 이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요셉과 그 형제들』은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책임이 면제된다. 오래 전에 소설가 김성일씨가 『홍수 이후』라는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그 책을 재미있게 읽고 난 느낌 중 하나는 소설가는 사실 고증에 대해 책임지지 않아도 되어서 좋겠다는 것이었다.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냐 하는 것보다 독자의 마음을 붙들 만큼 재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금 『야살의 책』에 관해 이야기하다 말고 『요셉과 그 형제들』이나 『홍수 이후』에 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야살의 책』이 성경과 비교하여 사실성보다는 『요셉과 그 형제들』이나 『홍수 이후』처럼 재미 있는 소설에 가깝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내 마음속에는 어떤 이야기가 『야살의 책』에서 읽었던 것인지 『요셉과 그 형제들』에서 읽었던 것인지 상당히 헷갈리는 부분이 많다.
이 소설같은 『야살의 책』에 대하여 조금 더 확실한 검증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어서 믿을만한 교수님을 만날 때마다 그 책에 대해 질문해 보았다. 그런데 여러 교수님에게 질문해 보아도 그 책에 대해 아는 분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에는 한 구약학 교수에게 그 책을 직접 읽고 평가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 교수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다만 성경에 나오는 ‘야살의 책’이라는 이름을 도용하여 지어낸 이야기로 추정된다고만 했다.
처음에 나에게 『야살의 책』을 선물한 성도의 마음에도 특별한 제목을 가진 그 책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느낀 대로, 또 조사한 대로 설명을 해 드렸다. 그리고 그 책은 더 이상 연구할 가치가 없는 책으로 던져 놓았다.
그런데 페이스북을 하다 보면 이 『야살의 책』이라는 책이 계속 광고가 올라온다. 그 광고에 달린 댓글을 보면 좋은 책을 소개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도 있고 성경 연구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말도 있다.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읽지 말라고 말릴 수는 없지만 이런 책을 성경 연구의 참고도서로 삼으면 곤란하겠다는 염려도 된다.
그런 와중에 페이스 북에 반가운 내용의 글이 하나 올라왔다. 그것은 김경렬 교수가 『야살의 책』에 대해 혹평했다고 하는 내용인데 요약하면, 『야살의 책』은 한 마디로 환단고기 같은 허황된 책이라는 것이었다. 그 책이 한국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있으니 그런 책은 사지도 말고 보지도 말라는 당부까지 들어 있었다.
덧붙여 「문학과 종교」 제14권 1호에는 “『야살의 책』의 성서적 정체성과 문학적 장르”라는 제목의 글이 한편 실려 있다. 이 소논문을 쓴 강엽씨의 결론은 이것이다. “『야살의 책』은 성경 두 곳에 인용되었으나 외경이나 위경에 속하지도 않고 그 성서적 정체성은 모호하다.”
그런데도 성도들 가운데 열심이 있는 분들이 이 책을 사고 읽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책의 서문에 이 책의 역사성을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 책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으로, 다시 이탈리아로 옮겨져서 베니스에서 출판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을 볼 때 소설 『오페라의 유령』이 생각난다. 『오페라의 유령』은 프롤로그에서 뿐 아니라 에필로그에서까지도 이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이었다고 주절거린다. 그것을 보면서 가스통 르루(Gaston Leroux)는 참 재미있는 작가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소설은 역사적 사실성 고증에 책임이 없다. 소설은 재미가 있으면 된다. 하지만 『야살의 책』은 소설이 아니라고 주장하기에, 김경렬 교수의 말처럼, 성도들이 미혹되고 있다. 이제 『야살의 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책은 출처가 불분명한 소설이다. 게다가 소설이 아니라고 우기는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느니 차라리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마스 만이 쓴 소설을 읽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