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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론》 – 최재천
책의 저자 최재천 교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생물학자다. 그는 서울대학교를 나온 뒤,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학에서 생태학 석사가 되었고, 하버드대학에서는 생물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생물학이 아닌 인문학으로 봐야 할 것 같은 《숙론》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는 것은 내가 보기에는 의외다. 熟論이란 ‘익숙한 말, 사리를 밝히는 말’로 해석하는데 소통을 위해서 하는 것으로 그것은 토론과 토의와 맥락은 같지만 조금 다르다.
토론에서 토(討)는 견책하다 혹은 징벌하다는 의미에다 대화로 합의에 이끈다는 것을 포함하지만, 저자는 그것에 이르는 길로 숙론이나 숙의를 제안하면서 영어로 말했는데, 영어 discourse는 담화(dialoue) 또는 토론(discussion)에 더해 좀 있어 보이는 표현으로, ‘진지하고 심각한 토론(serious discussion)’의 의미까지 포함한다고 한다. 토의나 토론은 우리 역사에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시급한 일이 아닐 수 없고, 그것은 학생들에 앞서 교사들이 먼저 교육받아야 한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있었던 경연(經筵)은 임금이 신하들 가운데 학식과 덕망이 높은 이로부터 학문과 경험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세상 물정과 민심도 파악하고 제도와 정책을 토론하는 기회로 활용되기도 했는데 주입식 경전 풀이만 한 것이 아니라, 경전에서 배운 지식을 토대로 신하들과 토론을 벌이는 것이 핵심이었으며, 이를 통해서 군왕은 치열해질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8년간 조선을 지켜낸 힘이었다.
논술을 잘하려면 현실을 정확히 진단한 후에 그것에 대한 대책과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것처럼 – 정치도 그렇듯이 – 책은 먼저 문제들을 진단하고 있다. 그것은 책의 소제목에서 볼 수 있고 1.〈숙제〉– 대한민국의 난제들, 2.〈교육〉– 같은 견해와 다른 견해를 사랑하는 시간, 3.〈표본〉– 앵무새 대화와 헛소리, 4.〈통섭〉–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는 시나리오, 5.〈연마〉– 바람직한 숙론을 이끄는 기술’등이 그것이다. 저자의 진단과 해결책을 모두 여기에 옮길 수는 없을 것이므로 내 나름대로 추려보기로 하자.
〈1부 숙제〉
우리나라 인구 가운데 대표 성씨이며 가장 많은 수를 가진 성씨는 김해김씨다. 그 김씨가 신라와 고려 시대에는 많은 문무명신을 배출하였으나 조선 시대에는 숙종 때 정승으로 김우항을 배출하는 것에 그쳤다. 둘째로 인구가 많은 밀양박씨도 정승 1명, 대제학 2명, 청백리 2명을 배출했을 뿐이다. 이에 비하면 담양군 평장리가 본향인 광산 김씨는 정승 다섯 명, 대제학 일곱 명, 청백리 네 명, 왕후도 한 명 배출했다. 경제는 산이 많은 영남에 비해 너른 곡창을 가진 호남이 실제로도 정치적으로 차별 대우를 받았는지 역사학자들의 재검토가 필요하다.
이것은 책에서 논하자는 것이 아니다. 호남이 홀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편견이 아닌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편견은 어떠한가? 미국의 경우 소득 상위 10%가 나머지 90%에 비해 아홉 배 이상의 소득을 얻고 있다. 상위 1%가 하위 90% 소득의 39배, 상위 0.1%는 무려 196배를 번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사실도 있다. 상위 0.1% 소득이 나머지 99.9% 소득을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다는 사실 말이다. 국제 모금단체인 옥스팜은 2018년에 최고 부자 26명의 자산이 가난한 50% 자산과 비슷하다고 보고했다.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2000년 이후 20년간 우리나라의 상위 10% 부자의 자산 비중은 6% 정도 늘어나 중국, 폴란드, 인도, 태국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다른 세계 주요국들이 오히려 줄어든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도 불평등이 가장 빠른 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생물학자로 생존이 곧바로 번식이라는 조건을 제시한다. 지난 2003년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라는 책에서 저자는 더 이상 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작년인 2024년에 개정판인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다윈의 성선택과 한국 사회〉를 펴냈는데, 여기서는 유전적 성은 타고 나지만 사회적 성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정부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발족하는 등의 온갖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악화되고 있다. 서서히 문제를 인식하던 2003년 출산율이 1.19였다. 그것도 1980년대 중반의 2.1(현재 규모를 유지하는 출산율)에 훨씬 못 미치는 수치였다. 우리 정부는 이때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다. 참여정부가 심각성을 깨닫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으나, 고령화는 말할 것도 없고 출산 기피가 진화적으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임시방편적인 정부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는 애당초에 글렀었다. 더 큰 문제는 저출산 고령화가 불러올 세대 단절과 갈등이라는 것이다.
부모도 아닌 생면부지의 늙은이를 위해 내 소득의 3분의 1을 바쳐야 한다면 과연 누가 반가워할까? 정년제는 언젠가 사라질 수밖에 없는 제도다. 선진국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전략을 쓰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아예 정년제를 없앴고, 다른 나라들도 야금야금 정년을 미루고 있다. 정년제는 단칼에 폐지하는 게 훨씬 깔끔하고 효율적이다. 몇 년에 걸쳐 찔끔거리면 그때마다 엄청난 사회 혼란을 겪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는 실업률 등 여러 현안에 비춰가며 심도 있는 평가와 논의가 필요하다.
우리도 이제 개발도상국이 아닌 선진국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2021년 7월 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제68차 유엔무역개발회의(MCTAD)에서 우리나라를 개발도상국 아닌 선진국이라고 발표했다. 이렇게 지위가 상승한 것은 1964년 MCTAD설립 이후 최초이자 국제사회가 우리를 선진국으로 공식 인정한 선언이었다. 추적자가 아닌 선도자가 된 것이다.
환경문제와 환경 갈등도 당면한 문제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당시 돈으로 22조 2,000억을 투자해 ‘4대강 살리기’사업을 진행했다. 이후에 수질이 개선되고 환경이 복원되었는가? 이제 또다시 어마어마한 예산을 투입해 개선 및 복원사업을 한다고 해도 한번 사라진 생물다양성은 영영 회복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랫동안 보호하려면 환경은 반드시 되돌아와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되돌아오지 않을지 모른다. 어떤 종이 어떤 구성으로 새롭게 자라날지가 향후 생태계를 좌우할 것이다. 한 나라 대통령이라 해도 자손 대대로 향유해야 할 자연을 이처럼 경솔하게 훼손할 권한은 없다. 자연은 미래세대로부터 빌려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당시에 국민 소통을 이루고 한 짓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소통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간과했다. 소통은 협력이 아니라 밀당의 과정이다. 당연히 소통은 일방적 전달이나 지시가 아니라 지난한 숙론과 타협의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결과물인 것이다.
〈2부 교육, 3부 표본〉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교육현장도 붕괴되어 있다. 공존을 위한 협력과 배려를 배우는 곳이 아니라, 신분상승을 꾀하는 경쟁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사자성어에 ‘와해토붕(瓦解土崩)’이라는 말이 있다. ‘기와가 깨져서 흩어지고 흙이 무너진다’는 뜻이지만 그것이 거꾸로 기본인 흙이 무너짐으로써 기와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토붕와해 형국이 된 것이다. 이를 어떻게 주워 담아 바르게 할지 모두가 막연해하고 있다.
우리는 자연계에서 유일하게 문자를 개발해 사용하는 동물이다. 글쓰기는 글로 밥 벌어먹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제아무리 뛰어난 학자라 하더라도 말할 것이 없다. 세계적인 연구를 했더라도 논문과 책을 써내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한다. 회사에 취업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글을 쓰는 직업은 아니지만, 거의 매일 기안하고 보고서 쓰는 일을 한다. 말하기 쓰기는 성공적 삶의 조건이다. 그것을 잘하기 위해서는 독서와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한다. 저자는 오래전에 이미 ‘독서는 빡세게 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내가 모르는 분야의 책을 붙들고 씨름하는 독서를 해야 한다고 하고 그래야 비로소 지식의 영토를 넓힐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적자생존(適者生存)이란 말이 있다. 그것은 최상급이 아닌 비교급이어야 한다는 의미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철저하게 상대성이론이다. 자연이 풍족하면 아무도 도태하지 않는다. 자연이 부족해지더라도 최적자는 살아남고 모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경쟁에서 뒤처질 뿐이다. 자연에서나, 우리 삶에서나 골찌만 아니면 언제나, 누군가 살아날 구멍은 있다. 그럴 때는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손잡고서 함께 엉켜 붙자는 것이 아니다. 자연과 우리 삶을 적절히 묘사한 시가 있다.
〈결혼에 대하여〉- 갈릴 지브란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람으로 구속하지는 말라
그보다 너희 혼과 혼의 두 언덕 사이에
출렁이는 바다를 놓아두라
(…)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고
참나무와 삼나무는 서로의 그늘 속에선 자랄 수 없다.
곤충과 식물은 결코 호시탐탐 서로를 제거하려고 무차별적 경쟁을 통해 살아남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서로 손을 잡고 함께 살아남는다. 그들의 결론은 자연이란 손잡은 생물이 미처 손잡지 못한 것들을 물리치고 사는 곳이라는 점이다. 〈손잡지 않고 살아남은 생명은 없다〉(2014년 출간한 저자의 책)에서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다. 경쟁과 협력으로 이기기 위해 손잡고 서로 돕는데는 철저하지만, 협력하는 법도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이다.
〈4부 통섭(統攝), 5부 연마(練磨)〉-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는 시나리오, 숙론을 이끄는 기술
통섭(統攝)이란 말은 어렵다. 사전적 의미는 큰 줄기(通)를 잡다.(攝)은 서로 다른 것을 한 데 묶어 새로운 것을 잡아당긴다는 의미로써, 인문·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범학문적 연구를 일컫는다. 그래서 ‘불통을 소통으로 바꾸는 시나리오’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는 저자 자신이 「제돌이 야생방류 시민위원회」부터 문재인 정부시절 「기획재정부 중장기 전략위원회」등의 위원장과 공동위원장을 맡으면서 숙론을 통해 나름대로 문제를 풀어왔던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개인적 자랑 같기도 해 여기서는 그 내용은 생략하기도 한다. 다만 그것들을 이끌면서 소통이 어렵다고 한 것을 실감하면서도 최선을 다했다는 데는 공감되는 바가 없지 않다.
저자는 말한다. “어차피 소통이란 원래 안 되는 게 정상이다. 잘되면 신기한 일이다. 소통이 잘되리라 착각하기 때문에 불통에 불평을 쏟아내는 것이다. 소통은 안 되는 게 정상이라 해도 우리가 하는 거의 모든 일의 어느 순간에는 반드시 소통이 필요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우리를 ‘사회적 동물’이라고 규정한 것처럼 소통은 아무리 어렵더라도 반드시 이뤄내야 한다. 힘들어도 끝까지, 잘 될 때까지 열심히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이제 우리 사회가 숙론을 통해 소통을 배워야 할 때다.”고 한 말은 공감이 간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상대의 말이 아무리 난해해도 말하려는 의도를 파악하고 핵심을 짚어내는 능력은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기술이지만, 숙론을 이끄는 진행자, 중재자가 갖춰야 할 덕목 중 으뜸이 이것이다. 대담이나, 숙론이나 자신이 말을 잘하는 게 대단한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을 얼마나 잘 알아듣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숙론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은 학교에서 숙론 수업을 진행할 때와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모임을 중재할 때도 필요하다. 그것은 참여를 독려할 때도 있지만, 참여자들에게 기회를 골고루 부여하며 흡족한 의견 교환을 도모하고, 필요하다면 모종의 합의까지 이끌어내는 것에 목표를 두기 때문이다.
숙론을 하는 데는 다양한 목적이 있다. 각각의 내용이 완벽히 나눠지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모두에게 주어진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상호 견해차를 인지하고 인식하기 위해, 전략과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조직간 협업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조직 또는 사회가 안고 있는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등 10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 갈등을 해소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인가? 저자는 그것을 연마해야 하는 방법을 이렇게 말했다.
1) 적정 환경을 조성하라
숙론을 이끌기 위해서는 많게는 20∼25명, 적게는 6∼7명이 적당하지만 학교 수업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 분반을 해서라도 일정한 규모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자신을 알라
숙론 진행자는 자연스레 두 가지 유형으로 진행하게 될 것인데, 확고한 신념을 갖고 모종의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 진두지휘하는 유형과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보다 다양한 의견을 이끌어내려고 노력하는 조정자 유형이그것이다. 주제와 성격에 따라 거기에 맞는 진행이 필요하다. 자신이 어떤 유형의 진행에 적합한지 파악한 후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전략이 효율적이다.
3) 치밀하게 준비하고 유연하게 진행하라
참여자들의 성향과 지적 범주를 파악하고 있으면 훨씬 풍성한 숙론을 이끌 수 있다. 진행자가 자기 능력과 그 한계를 아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참여자가 어떤 발언을 할지, 어떻게 행동할지 어느 정도 감을 갖추고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학생일 경우에는 미리 사진을 찍어 일일이 이름을 적은 후 책상 앞에 두고 이름을 외우는 것도 중요하다.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데 감동하지 않는 학생은 거의 없다.
4) 규칙부터 합의하라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는 생각으로 상대를 규정하고 행동하는 현상을 ‘적화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심해지면 ‘단호하게 내 경우는 신념이고 당신은 아집에 빠진 것이고 그 사람은 독선적이야!’라고 말하게 된다. 요즘 정치판에서 흔히 보는 내로남불이 그것이다. 이 적화 증후군 현상이 협력의 최대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신뢰도 호감도 없는 사람끼리 모여 숙론하려면, 미리 명확한 수칙을 정하고, 합의해서 그것을 똑같이 지켜야 숙론이 가능하다.
5) 발언 정리할 시간을 허하라
6) 기꺼이 선의의 악마가 되라
7) 막히면 쪼개라
8) 필요하면 열정도 과장하라
9)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어라
행정의 ‘ㅎ’자도 모르던 사람에게 국립생태원 초대원장을 맡겼을 때 저자가 한 일은 어금니를 깨물고 들었다는 것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한다. 책임 맡은 사람으로서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윗사람이 입을 열면 아랫사람들은 곧바로 입을 닫아버리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편안한 자리에서 직원들이 토로하는 불만과 바람을 귀담아 듣고 그것을 해결해 나감으로써 그가 직을 원만히 해낼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숙론에서도 경청은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숙론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듣는 시늉은 잘하는데 정작 발언의 핵심을 짚어내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밀어붙이는 회의가 아니라면, 완벽하게 굴러갈리 만무하다. 잘 경청하고 부드럽게 이어주는 것이 숙론의 성공비결이다.
‘토크쇼의 제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래리 킹’의 장수비결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짧고 단순한 질문을 던지며 담화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TV에도 이런 진행자들이 더러 있다. 킹은 명언을 남겼다. “당신이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들도 당신 말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서 경청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서양 속담에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는 두뇌에서 심장까지의 거리’라는 말이 있다. 그들은 아닌 게 아니라 답답할만큼 아는 것과 실행 사이 간극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우리는 어떤가? 문제를 파악하고 동의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머리가 이해했다면 가슴이 뛰는데까지는 그야말로 전광석화다. 과거 우리 언론에서 조만간 전 국토가 무덤으로 뒤덮일지 모른다고 우려를 쏟아낸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 어떤가? 불과 10년 전에는 화장터 부족이 사회 이슈가 된 적도 있다. 머리를 맞대고 하는 숙론 문화만 정착되면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것도 매우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숙론은 고사하고 토론, 아니 논쟁도 고급스럽게 못 하는 곳이 대한민국 국회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하도록 선거로 뽑은 공무원이다. 그런데 집단적으로 대의를 저버린 채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상황에서도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서로 흡집 내고 말꼬리 잡고, 고함지르고 정쟁만 일삼는다. 허구한 날 으르렁대며 시간만 낭비한다. 임명된 공무원이면 진작에 해고됐을 텐데 왜 그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가? 저자는 이 책을 300명 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한다. 마주 앉아 애기 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은 유치원생도 초등학생도 아닌 그들이기 때문이란다.
우리 사회는 어느듯 선진국이 되었건만 여전히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는 것이 정치다. 그러나 이걸 그대로 두고 볼 국민은 이제 없다. 다른 모든 분야와 마찬가지로 정치 수준도 끌어올려야 한다. 변화의 한복판에 숙론이 자리 잡아야 한다. 조만간 어린이집에서부터 국회까지 언쟁을 멈추고 상대를 제압하는 토론 수준을 넘어서서 깊이 생각하고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가 꽃피기를 기원해 본다. 그래야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1.4. 오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