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27일 주일예배 설교문 / 마태복음 18:1-20 / 영적 실제를 이루기 위해 처리해야 할 것들 ①교만
할렐루야! 사랑하고 축복하고 존경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 천국이 선포된 이후 사탄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입니다. 14장에서 천국백성들을 배척, 결핍, 풍랑으로 흔들어 공격하는 것입니다. ①배척:종교·정치·문화로 배척할 때에 교회는 저들과 구별된 빈들에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탄의 전략에 넘어가 타락한 교회, 타락한 기독교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②결핍:세상과 구별되니 부족한 것입니다. 먹고 살기에도 많이 모자랄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가 할 일은 먼저 내 것을 주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풍성한 열매를 얻게 될 것입니다. ③풍랑:교회라는 방주에서 떨어지도록 이리 흔들고 저리 흔들고 할 것입니다. 이때는 오히려 기도와 믿음으로 도전하십시오. “주여! 이 풍랑이는 상황을 이기게 하여 주옵소서.” 마침내 베드로처럼 바다 위를 걸을 것입니다.
15장. 배척, 결핍, 풍랑도 안 되니까 사탄은 기독교를 변질시켜서 생명을 종교로 바꾸어버립니다. 숨이 콱콱 막히는 종교형식. 사람을 숨 막혀 죽게 만듭니다. 이때 우리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영안에 있어야 합니다. 가나안 여인처럼 땅에 떨어진 부스러기라도 먹여 주옵소서.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예수님을 먹게 되는 것이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긴바 된 천국백성이 되어 이기는 자가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16-17장에서는 베드로의 세 가지 실수를 보았습니다. 모두다 출처가 영안에 있지 않을 때였습니다. 우리가 영 안에 있지 않으면 혼의 생명의 사람이요 사탄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베드로를 보시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저들은 하나님이 어떻든 자기가 좋은 대로 사는 것이요, 고생고생만 하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공수래공수거의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은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입니다. 영적 실제를 이루느냐는 것입니다. 천연적인 생명인 혼의 생명, 나의 자아가 십자가에 죽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삶의 실제, 영이 실제화 되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가 읽을 마태복음 18-20장을 통해서 영적인 실제를 이루는 방법, 즉 살면서 내 안에 있는 사탄에 물든 여러 방면들을 처리해야 하는데 그 처리할 것들을 예수님은 5가지로 정리해서 말씀해주셨습니다. 18장에서 교만과 화, 19장에서 정욕과 돈, 20장에서 욕심(야심).
오늘은 첫 번째로 교만입니다. 예수님은 18장 초반에 어린아이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로 이 구절은 어린이 주일에 읽게 되는 말씀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본문은 어린아이에서 연결되어 실족, 업신여김, 잃은 양 한 마리, 죄를 범한 형제를 처리하는 방법까지 나아가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린이주일에 어린이에게 전해주는 말씀이라면 어린아이의 순수성, 순결성 등을 강조하겠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어린아이는 작다”는 것을 강조하시면서 말씀을 이끌어나가고 계십니다.
1절. 천국에서 누가 큰 사람입니까? 제자들이 질문했습니다. 이들의 질문의 의도는 자기들이 그만큼 큰 사람이어서 예루살렘성에 이르면 예수님은 왕이 될 것이요 자기들은 각종 장관의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는 것을 기대하는 질문인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4절.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큰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높은 데를 생각지 말고 자기를 낮추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높아진다는 것은 다른 말로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남보다 잘났으며 아래 사람들을 무시하는 사람을 교만하다고 합니다.
영의 세계는 그 수준이 하늘에 닿아서 높지만, 저 높은 길로 이르기 위해서는 절대 내가 높아서는 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를 보십시오.
이사야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예레미야 1:6-7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저들은 부름 받았을 때 한결 같이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는 3살 아이 수준밖에 되지 않습니다.”라고 자기를 낮추었습니다.
이사야는 왕족 중의 한 사람입니다. 왕궁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았고 역사책을 쓸 정도로 실력도 있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말하지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인데 하나님을 뵙다니...” 천상에서 하나님의 존전과 여러 천사를 보면서 그가 한 일은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린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제사장 가문의 사람입니다. 그도 백성의 영적 지도자로 손색이 없었는데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말하지요? 하나님 저는 아이입니다. 말할 줄도 모르고 아는 것도 없습니다. 그들의 겸손이 그들을 위대한 선지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반면 욥기에 보면 엘리바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욥의 친구들 중에 제일 어른이었으며 다양한 영적 체험을 한 사람이었습니다.
욥기 4:12-17 어떤 말씀이 내게 가만히 이르고 그 가느다란 소리가 내 귀에 들렸었나니 / 사람이 깊이 잠들 즈음 내가 그 밤에 본 환상으로 말미암아 생각이 번거로울 때에 /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러서 모든 뼈마디가 흔들렸느니라 / 그 때에 영이 내 앞으로 지나매 내 몸에 털이 주뼛하였느니라 / 그 영이 서 있는데 나는 그 형상을 알아보지는 못하여도 오직 한 형상이 내 눈 앞에 있었느니라 그 때에 내가 조용한 중에 한 목소리를 들으니 / 사람이 어찌 하나님보다 의롭겠느냐 사람이 어찌 그 창조하신 이보다 깨끗하겠느냐
이러한 높은 수준의 영적인 경험을 가지고 욥을 판단합니다. “네 죄를 알렸다. 네 죄 때문에 네가 이렇게 망한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
맞는 말 같지만 다 맞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욥이 고통 받는 이유는 욥의 죄가 아니라 사탄의 참소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보인다면 합력하여 사탄과 싸워 이기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는데 엘리바스가 너무 높아서 영적인 세계의 모든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 결과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욥을 정죄하더니 욥을 더 힘들게 한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영의 세계는 하나님이 높이셔야지 내가 높아지면 맹인 되는 것입니다. 영 안에 있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겸손한 사람이요, 이런 사람이 천국백성이요 영의 생명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첫째, 교만하면 실족케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6-7절)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넘어짐과 실족은 같은 뜻입니다. 우리가 교만하게 되면 그 교만의 뿔로 말미암아 다른 사람을 상하게 하거나 내가 상처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교만 때문에 걸려 넘어뜨리던지, 걸려 넘어지던지 할 것이란 말씀입니다. 모든 걸림이 일어나는 것은 잠언 말씀처럼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실족케 하는 일은 엄중한 일입니다. 그 사건 때문에 교회도 못 오게 하고, 예수도 믿지 못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손과 발과 눈 그리고 내 입이 남을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모두다 교만의 손, 발, 눈, 그리고 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교만한 손과 발은 잘라 내버리고, 눈이나 입은 빼버리는 것이 낫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남을 실족케 해서 지옥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진짜 그렇게 하지는 마세요. 남아날 지체가 없을 것입니다. 손과 발을 잘라버리고 눈을 빼버릴 정도로 남을 실족시키지 않겠다는 단단한 각오를 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둘째, 작은 자들은 하나님이 더욱 돌보십니다.(10절)
부모가 자녀 중 더 신경 쓰는 자녀는 멀쩡한 자녀보다 부족한 자녀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멀쩡한 아이는 그냥 놔둬도 됩니다. 그래서 잘하는 아이에게는 회초리가 세대요, 못하는 아이에게 떡 하나 더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아이는 때리면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작아도 아버지 보시기에는 사랑스러우며, 그분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분은 아무라도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가 돌보시는 작은 자들을 너무 쉽게 상하게 하며, 작은 자들인 우리 자신은 쉽게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겸손하다면 이 모든 상황에서 우리를 구출해줄 것입니다.
셋째, 죄를 범하는 형제에 관하여
이런 사람은
①직접 찾아가 일대일로 말하십시오.(15절) 이를 직면이라고 말합니다. 남들에게 그 사람의 죄를 아뢰면서 수군 수군대는 자는 교만한 자인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먼저 사랑 안에서 그를 찾아가 그의 과실을 지적해주고 그 사람을 살리는 사람인 것입니다.
②직면이 안 되면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십시오.(16절) 우르르 많이 데리고 가지 마십시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정치하겠다는 뜻입니다.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간다는 것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당사자가 몇 사람의 말이라도 듣고 구출받기를 바라는 마음, 이것이 겸손한 자인 것입니다.
③교회를 통해 권면하십시오.(17절) 이는 교회의 권위를 가지고 말함을 뜻합니다. 교회는 권위를 사용하여 묶고 풀어야 합니다. 교회는 그가 범죄할 때 묶고 그가 회개할 때 풀어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다 같이 기도하십시오.(20절) 이때 주님의 임재가 나타나며 하나님과 교통하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개구리가 사는 연못가에 황새가 멋진 날개를 펴며 내려앉았습니다. 개구리가 이를 쳐다보니 참 보기에도 좋고 너무나 부러운 것입니다. 개구리는 자기도 하늘을 날고 싶었습니다. “황새 아저씨! 나도 하늘을 날고 싶어요.” “너는 날개가 없잖아. 날개가 있어야 하늘을 날지.” 딱하다는 듯 황새가 쳐다보았습니다. 하늘을 날고 싶은 개구리는 옳거니 방법이 떠올랐습니다. 그래 해보는 거야. “황새 아저씨, 이 막대기 한쪽 끝을 내가 물고 있을테니 황새 아저씨는 저쪽 끝을 물으세요. 그러면 저도 날 수 있잖아요.” “오! 굿 아이디어. 좋다 어디 한번 해 보자.” 둘은 각각 양쪽 끝을 물고 하늘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때 땅에서 구경하는 개구리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를 누가 냈냐?” 우쭐해진 개구리는 높은 공중에서 소리쳤습니다. “내가” 그 말을 하는 그 순간 개구리는 물고 있던 막대기를 놓치고 땅에 떨어져서 죽었답니다. 이솝 우화지요.
나 스스로 높은 곳에 오를수록 떨어지면 더 아프고요 아니면 비행기에서 떨어진 프리고진처럼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눈물을 흘리며 엉엉 우신답니다. 망하게 되니까...
예레미야 13:17 너희가 이를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으로 말미암아 은밀한 곳에서 울 것이며 여호와의 양 떼가 사로잡힘으로 말미암아 눈물을 흘려 통곡하리라
그러나 갚아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겸손하면 은혜를 주시고 영예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5:5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잠언 29:23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어린아이 수준으로 낮아집시다. 하나님께 납작 엎드리어 겸손합시다. 그렇다면 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런 자에게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은혜와 영예를 주시니 만족과 누림을 얻는 네 영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케 되는 축복의 사람이 될 줄 믿습니다.✞동문교회 강순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