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6(운명(運命)이란?)-8
팔마(八魔)가 지휘하는 배화교 육진이 웅중산 밑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제갈세가까지는 빠른 걸음으로 한경(2시간)정도 걸린다. 팔마(八魔)는 혈영대 백장(白將)들을 소집했다.
“부르셨습니까?”
“모두 모였어.”
“예! 한명도 빠짐없이 집합했습니다.”
“너희들도 알겠지만 여기서부터는 제갈세가의 영역이다. 앞에 무슨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몸이 가벼운 놈들을 선발해서 척후병을 보내야겠다.”
“각 부대에서 경공이나 신법에 능한 놈들을 선발하면 되는 겁니까?”
“말을 빨리 알아듣는군. 각 부대에서 한명만 선발하면 돼. 그리고 흑풍대 백장들을 불려오게.”
“알겠습니다.”
혈영대 대장들이 물려가고 이번에는 흑풍대 백장들이 몰려왔다.
“챙겨온 폭약들을 각부대별로 고르게 나눠. 한부대가 가져가다가 일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
“알겠습니다.”
흑풍대 대장들이 물려가자 40여명의 혈영대 무사들이 다시 몰려왔다. 각 부대에서 뽑은 경공과 신법에 능통한 무사들이다.
“모두 대령했습니다.”
“백장들에게 대충 이야기는 들었겠지만 다시 설명하겠다. 시안의 보고에 의하면 제갈세가 놈들은 웅중산 일대에 수많은 함정을 파놓았다고 한다. 너희들의 임무는 본대에 앞서 길을 뚫는 거다. 수상하거나 의심나는 곳은 철저하게 수색해.”
“알겠습니다.”
“내가 미리 붉은 천과 하얀 천을 준비했다. 의심나는 곳은 붉은 천으로 표시하고 안전한 곳은 하얀 천으로 표시해라. 본대는 한식경(15분)뒤에 따라가겠다.”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20여명의 혈영대 무사들이 본대에 앞서 웅중산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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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처소에 있는 란에게 무사가 달려왔다.
“아가씨. 아가씨.”
“무슨 일이죠.”
“가주님께서 찾으십니다. 수상한 놈들이 나타난 모양입니다.”
“알았어요. 준비하고 갈게요.”
란은 급하게 의복과 무기를 챙겨 가주에게 달려갔다. 가주는 무사들과 함께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너라.”
“배화교 놈들이 나타난 겁니까?”
“아직은 모르겠다. 보면 알겠지. 가자.”
가주는 란과 함께 일단의 무사들을 이끌고 숲으로 달려갔다. 웅중산 일대에 펼쳐진 진들의 생문(生門)과 사문(死門)들을 자신의 손바닥처럼 환하게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고 웅중산 일대를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멈춰. 놈들이다.”
나무 위에 몸을 숨긴 가주일행이 밑으로 내려다보니 붉은 무복을 입은 놈들이 주위를 수색하고 있다.
“혈영대들 입니다.”
“확실해.”
“복장이나 검(劍)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배화교가 사용하는 검(劍)은 중간에서 약간 휘어진 반월검입니다. 중원 문파 중에 반월검을 사용하는 문파는 없죠.”
“그럼 확실하겠군. 그런데 놈들의 숫자가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척후병이겠죠. 저들이 지나온 길을 보세요. 하야 천들로 표시를 해놓은 것이 보이시죠. 저들 뒤로 본대가 따라올 겁니다.”
“잘 됐어. 놈들이 제대로 걸려들었단 말이지. 바로 진을 발동시킨다.”
“기다리세요.”
“조금만 더 가면 본가야. 놈들의 접근을 차단해야지.”
“본대가 완벽하게 함정에 빠질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척후병들은 본가 무사들로 처리하면 돼요.”
“그럼 이렇게 하자. 이곳은 네가 책임져라. 나는 척후병들을 처리하겠다.”
“알겠습니다.”
가주는 란과 무사들을 남기고 본가로 돌아갔다. 척후병이 지나가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수천의 무사들이 나타났다. 붉은 무복을 입은 놈들은 혈영대고, 검은 무복은 입은 놈들은 흑풍대일 것이다. 그런데 흑풍대 무사들 무언가를 들고 있다. 자세히 보니 폭약인 모양이다.
“폭약으로 날려버리시겠다. 너희들 뜻대로 되지 않아.”
란은 혼자서 중얼거리다가 무사들을 돌아본다.
“모두 화살을 준비하세요. 제가 신호를 보내면 약속된 장소로 쏘시면 됩니다.”
란의 명령에 무사들이 활과 화살을 준비했다. 란이 웅중산 일대에 설치한 절진은 들어오긴 쉬워도 절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천고의 쇄금(鎖金)진이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진속에 여러 개의 다른 진들을 설치하여 설혹 하나의 진에 대한 파해법을 알고 있다 해도 수많은 절진들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며 생문(生門)과 사문(死門)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절대 빠져나올 수 없으며, 각각의 진들이 만들어내는 무수한 환상(幻想)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끝내는 정기가 고갈되어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쏘세요.”
“휘이익~”
란의 명령에 화살들이 날아가 나무나 바위들을 관통한다. 팔마(八魔)는 척후병들의 포식을 확인하며 조심스럽게 웅중산으로 들어왔다. 팔마(八魔)의 표정이 어둡다. 지금까지 붉은 천은 볼 수가 없었다. 모두가 하얀 천만 묶여 있었던 것이다. 제갈세가도 점창파에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이니 무언가 대책을 세워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세가가 코앞인데 지금까지 아무런 위험이 없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무언가 이상하다.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길을 터줄 놈들이 아니다.
“이게 뭐야.”
갑자기 주위에 있던 숲이 사라지며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후미(後尾)에 쳐져 있던 흑풍대 무사들도 무사하지 못했다. 그들은 귀신들이 울부짖는 죽음의 땅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비교적 좁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각자 다른 진속에 빠져 환상의 적(敵)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란은 진이 만들어낸 환상(幻想)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놈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
“돌아가요.”
“이대로 돌아가도 되는 겁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 겁니다.”
란과 무사들은 본가로 돌아가는 길에 혈영대와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무사들을 발견했다. 제갈세가 무사들에게 포위당한 20여명의 혈영대 무사들은 서로서로 힘을 합쳐 포위공격을 어렵지 않게 막아내고 있다. 아군(我軍)의 솟자가 워낙 많으니 놈들이 지칠 때까지 몰아붙이면 어렵지 않게 잡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가는 아군(我軍)의 피해가 너무 많을 것 같다. 란은 품속에서 종이처럼 얇은 비도(飛刀) 뭉치를 꺼냈다. 비도(飛刀)가 워낙 얇기 때문에 조금만 방심에도 자신의 손가락을 자릴 수 있을 정도다.
“모두 물려나세요.”
란이 솟구치며 소리치자 제갈세가 무사들이 줄줄이 후퇴하고, 허공에 반짝이는 빛과 함께 혈영대 무사들이 힘없이 쓰려진다. 제갈세가가 자랑하는 소리비도가 펼쳐진 것이다.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모두 뇌옥으로 끌고 가세요.”
제갈세가 무사들이 혈영대를 제압하여 끌고 가자 가주가 란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됐어.”
“모두 진에 빠졌어요. 이제 기다리면 됩니다.”
“하하하~ 수고 많았다. 그만 들어가서 쉬어. 나머지 내가 정리하마.” “
저도 남을게요. 비록 함정에 몰아넣기는 했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해라.”
가주와 란은 무사들에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명령하고 배화교 놈들이 빠진 함정 근처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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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망대해(茫茫大海)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팔마(八魔)는 눈을 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모든 것이 허상(虛想)이니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귀가에 몰아치는 파도소리와 폭풍우 소리 그리고 온몸에 느껴지는 수압(水壓).
모두가 허상(虛想)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나 온몸의 감각세포들은 그게 아니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팔마(八魔)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잡념(雜念)을 떨치려 노력했다. 귀가에 들려오던 풍랑(風浪)소리가 멀어지고, 온몸을 압박하던 느낌이 사라졌다. 진이 만들어낸 환상(幻想)을 이겨낸 것이다. 팔마(八魔)가 다시 눈을 뜨니 자신은 여전히 폭풍우가 몰아치는 망망대해(茫茫大海) 한가운데에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허상(虛想)이란 것을 알기에 정신을 집중하고 주위를 돌아보니 허상(虛想)이 사라지며 숲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부하들이 보였다.
“모두 정신들 차례.”
팔마(八魔)의 마황후가 웅중산 전체에 울려 펴졌다. 하지만 환상(幻想)에 빠져 있는 부하들의 귀에 팔마(八魔)의 마황후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화약으로 진을 날려버려야 한다. 팔마(八魔)는 흑풍대 무사들에게 가려 했다. 흑풍대가 폭약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걸음 옮기자 기화요초(琪花瑤草)들이 만발한 언덕과 함께 너울너울 춤을 취는 미녀들이 나타났다.
“왜 이제야 오셨어요. 서방님~~”
미녀들이 팔마(八魔)의 품으로 파고들며 갖은 교태(嬌態)를 부린다. 팔마(八魔)는 솟구치는 욕정(欲情)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물었다. 한발자국 옮기자마자 또 다른 함정에 빠진 모양이다. 팔마(八魔)가 이정도일 진데 나머지 혈영대와 흑풍대 무사들의 사정은 더욱 나빴다. 환상의 세계에서 정기(精氣)가 모두 고갈되어 쓰려진 놈들도 있고, 자신의 목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는 놈들도 있다.
팔마(八魔)일행이 함정에 빠진지 6시진(12시간)이 지나갈 때쯤 또 다른 무리가 웅중산 밑에 도착했다. 악양을 출발한 북해빙궁의 본진이다. 설초희는 마차에서 내려 주위를 돌아보았다. 날이 어두워져서 웅중산의 형체만 보인다.
“궁주님. 명령을 나려주세요.”
“모두들 짐을 풀고 숙영(宿營)준비를 하라고 하세요.”
“바로 쳐들어가는 거 아니었습니까?”
“저길 보세요. 무언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초희가 손가락으로 웅중산을 가르치고 있다. 무엇이 이상하다는 것일까? 장로들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웅중산에 들짐승 한 마리 없을까요? 많은 동물들이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초희의 말대로 웅중산은 정적에 쌓여 있다. 그 흔한 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이다.
“궁주님 말씀대로 이상하긴 하네요.”
“저길 보세요. 발자국들이 보이시죠. 평범한 발자국은 아닙니다.”
“왜죠. 제가 보긴 그냥 평범한 발자국으로 보이는데?”
“무공을 익힌 사람들의 발자국은 보통 사람들 발자국과 달라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아도 몸이 가볍기 때문에 체중보다 얇게 찍히죠. 그리고 발자국들의 형태를 보면, 질서정연하게 일렬로 나 있습니다. 보통사람들이라면 저런 발자국을 만들기 힘들어요. 다시 말해 철저하게 훈련받은 많은 사람들이 웅중산으로 들어간 겁니다.”
초희의 설명을 들은 장로들이 고개를 끄덕거린다.
“지금까지의 경황을 보면 배화교가 우리보다 한발 앞서 도착해서 웅중산으로 들어간 겁니다. 그런데 웅중산은 취죽은 듯이 고요해요.”
“혹시 이미 제갈세가를 초토화시키고 빠진 것이 아닐까요?”
“제갈세가가 멸문(滅門)당했다면 까마귀들이 극성을 부리고 있겠죠.”
“그럼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제갈세가는 신기제갈이라고 불릴 정도로 진법과 토목기관학 등에 조예가 깊은 가문입니다. 배화교는 제갈세가가 파놓은 함정에 빠졌을 가망성이 많아요. 들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도 웅중산 일대에 펼쳐진 진법이 모든 소리를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럼 우리도 함부로 접근했다가는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럼 셈이죠. 그래서 숙영(宿營) 준비하라고 한 겁니다. 우선 주린 배부터 채우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웅중산 일대를 수색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준비를 하라고 하겠습니다.”
설초희가 지휘하는 북해빙궁은 웅중산 아래에 군막을 치고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섣불리 들어갔다가는 무슨 함정에 빠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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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깊은 시간, 개봉을 출발한 풍운이 호북성에 도착했다. 날도 어두워지고 쉬지 않고 달려와 심신(心身)이 피로하다. 풍운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객점을 찾았다. 다행이 아직까지 문을 열 객점이 있었다. 늦은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객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림새를 보니 여기저기 싸움터를 전전하며 살아가는 낭인들로 보인다. 풍운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창가에 앉아 식사를 주문했다.
“자네는 이제 어디로 가나.”
“무당산 아랫마을에 있는 은경전장에서 칼잡이를 찾는다는 소식이 있어. 거기로 가야지”
“은경전장이라면 무당이 보호하는 전장이잖아. 그런데 칼잡이를 찾는단 말이야.”
“무당이 소집령을 내렸다고 하네. 전장을 보호해주던 무사들이 무당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전장을 보호해줄 용병을 찾는 모양이야.”
“역시 배화교 때문인가?”
“모르지. 다만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배화교 놈들이 무당으로 몰려갔다고 하네. 아마 그것 때문에 비상이 걸리지 않았을까?”
“사실일 거야. 나도 아침에 배화교 놈들이 웅중산으로 몰려갔다는 소문을 들었거든.”
“웅중산? 거기 제갈세가가 있지. 배화교 놈들이 중원 전역을 휘젓고 다니는구먼. 도대체 무림맹은 뭐하는 거야.”
“알게 뭔가. 덕분에 우린 일감이 많아서져서 좋잖아.”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요즘은 일을 준다고 해도 겁나. 막말로 배화교 놈들한테 잘못 걸리면 곧바로 황천길 아닌가?”
“배운 짓이 도둑질이라 할 수 없이 하고는 있지만 나도 요즘 같아서는 세상이 잠잠해 질 때까지 어디 촌구석에 처박혀 있고 싶네.”
풍운이 낭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이고 있는 사이, 점소이가 음식을 가져왔다. 낭인들의 말에 의하면 배화교 놈들이 무당과 제갈세가로 몰려갔다고 한다. 다행이 무당은 비상령을 내려 외부에 파견했던 무사들까지 불어들었다고 한다. 또한 무당에는 태청진인과 현원자가 버티고 있으니 배화교에게 쉽게 당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세가는 문제가 다르다. 제갈세가는 무림에 몸을 담고 있기는 하지만 무(武)보다는 문(文)을 중시하는 가문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기습이라도 당하는 날에는 공동이나 점창파처럼 초토화가 될 것이다. 풍운은 음식을 앞에 두고 고민에 빠졌다. 한시라도 빨리 군산에 돌아가 대책을 세워야하지만 제갈세가가 위기에 빠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엄밀하게 말해서 제갈세가는 자신의 처가가 아닌가? 풍운은 대충 주린 배를 채우고 웅중산으로 향했다.
<<계속>>
첫댓글 즐독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재미있게 보구 갑니다,,
즐독
감사합니다
잘봅니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