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是雲林有宿盟 구름 걸린 숲에 스스로의 마음가짐 다지며
層臺高處結茅楹 층대 높은 곳에 그림 같은 초가집 지었노라
靑山屹立千年色 우뚝 솟은 청산엔 천년 서있는 산에 빛이 나고
碧磵長奔萬里聲 달리는 벽간(碧磵)은 물소리 내며 만 리까지 흘러가는구나.
觀象敢竅仁智妙 자연의 물상을 통해 감히 인과 지의 묘한 이치 들여다 보며
開軒偏愛峙流淸 난간 열어두고 오로지 높은 곳에서 흘러오는 맑은 물 사랑하노라
世間榮利非吾願 세간의 영리는 내가 원하는 것 아니니
好把殘篇了此生 성인의 경전(經典) 붙들고 이 생애를 마치려 하노라
- 매산 정중기의 산수정(山水亭): 이갑규 외 2인.2012.한국의 혼 누정(樓亭). 민속원 -
산수정의 봄(강충세.2014)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 매곡(梅谷)마을은 낙동 정맥 보현산에서 기룡산(961m)으로 이어진
좁은 협곡 깊숙이 약 30호의 고가가 자리한 마을이다.
마을 한가운데 정중기(鄭重器: 1685~1757)의 매산고택(梅山古宅)이 있고 선원천 계곡을 따라
약 300m 더 올라가면 북쪽 암벽 경사진 산기슭에 산수정(山水亭)이 자리한다.
매산 정중기는 원래 선원동(仙源洞 :숨은 솔밭)마을에 살다가 1740년 천연두 전염병이 심해지자
이를 피해 매곡마을에 자리를 잡고, 간소(艮巢)라는 살림집(梅山古宅)을 지어 살았다.
1748년에는 매곡 깊숙이 800m 떨어진 토월봉 아래 오록서당(梧麓書堂)을 짓고
1752년에는 산수정(山水亭)을 자신의 별서로서 완성한다.
산수정의 외원(김영환.2014): 본 글은 성균관대의 정기호 교수(한국정원학회지통20호2권.1988)의
논문을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시루봉과 토월봉아래 선원천을 따라
오록서당, 향양정, 산천정, 매산고택이 있는 매곡마을을 진경산수화적 기법으로 표현했다.
정중기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도옹(道翁) 호는 매산(梅山)이다.
1727년(영조 3년) 문과에 급제하고 1731년 약방과 일기를 관장하던 승정원주서(承政院注書)가
되었다. 홍성의 결성현감(結城縣監)의 직책을 수행하면서 여씨향약(呂氏鄕約)』에 준하여
향속(鄕俗)을 지켜나가는 일에 기여하였다. 1752년 사간원(司諫院)의 정6품 관직인
정언(正言), 1753년 사헌부의 정5품 관직인 지평(持平)을 거쳐 형조의 정3품 벼슬인
형조참의(刑曹參議)를 지냈다. 저서로『매산집(梅山集)』이 있고,
편저로는『포은속집(圃隱續集)』·『가례집요(家禮輯要)』·『주서절요집해(朱書節要集解)』가
있다.
『매산집』에서는 마을의 입지와 산수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重巒環擁, 小溪回, 有谷其間, 號是梅丹穴. 巢空猶舊樹 (谷中有梧坊俗傳鳳鳥巢於梧樹云),
黃堂人去但荒臺(壬辰之亂郡太守來寓此地常坐石臺上布政且築小城於村中以衛之今遺址尙存)
村依巖藪長生靄, 路絶輪蹄半掩苔僦屋. 四經霜葉落, 何如谷口子眞來.”
“겹겹으로 산들이 둘러 싸안고 작은 시냇물이 휘돌아 흐르는데, 그 사이 우묵 들어간 곳이 있으니, 이것을 ‘매단혈(梅丹穴)’이라 부른다. 둥지는 빈 채로 여전히 옛 나무 벽오동나무에 있는데
정사를 보던 군수는 가버리고 그 터만 남아있을 뿐이다. 마을은 바위와 숲을 기대고 이루어져 길게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길이 끊겨 수레바퀴와 말발굽이 반은 이끼 속에 빠져들어 가는 곳에 집 하나 빌렸다네. 사방에 서리 맞은 잎이 질 때, 중국 곡구의 옛날 은사(隱士) 정자진(鄭子眞)이 온다 한들 이보다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정기호 교수 외 2인 매곡우사(梅谷寓舍) 번역.2002-
산수정원경(가을)
매산이 매곡마을에 집터를 정함에 있어서 매화낙지형(梅花落地型)의 풍수사상(風水思想)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 제일 원칙으로 삼은 사상은 유교사상(儒敎思想)이라 할 수 있다. 매산고택, 종택, 사랑채, 마루의 현관에 걸려 있는 “간소(艮巢)”라는 현판을 보면 매산이 주역(周易)의 간괘논리(艮卦論理)를 빌어 세속에 대한 욕망을 접고 이곳에 숨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산수정잡영병기(山水亭雜詠幷記)에는 “산수의 즐거움이란 전적으로 산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다(山水之樂不專在於山水而在於吾之心也)”라고 했다. 이것은 “산수정에 머무르는 것이 단순히 자신이 은둔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즐거움을 찾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기 위함”이라는 유학자로서의 자세가 품어 있는 것이다.
-정기호 외 2인. 2002. 영천매곡마을과 매산 정중기의 택리관 연구. 한국정원학회지통권20호-
또한 산수정에 걸린 다음의 시문을 보면 매산 정중기가 산수정을 짓고 욕심을 비운 채 만년을 보내려는 의도가 잘 나타나 있다.
解綏西城匹馬歸 서성에서 해임되어 필마로 돌아드니
秋風簫瑟吹衣 소슬한 추풍만이 부질없이 옷깃에 불어오네
斜陽偶入江郊路 석양에 우연히 강 언덕길 오르니
白鳥無心向我飛 백조들 무심히 나를 향해 나는구나
- 출처: 매산 정중기의 산수정(山水亭): 이갑규외2인.2012.한국의 혼 누정(樓亭).민속원 -
산수정과 외원(가을: 강충세.2013)
매산고택(梅山古宅)은 산수정의 본제(本第)다. 본제 마을 뒷산은 매화가지가 뻗어있는 모양이고 앞산은 매화꽃을 향하여 날아드는 나비의 형상이다. 매화꽃이 핀 자리에 정씨종가(鄭氏宗家)가 자리 잡고 있어 이 마을을 매내실 또는 매곡(梅谷)이라 부른다. 본제의 건물은 대문간채, ㅁ자형의 정침(正寢), 사당(祠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좁아지는 돌담 사이로 대문에 들어서면 넓은 마당과 자연지형을 살린 1.5m 자연석 기단위에 입지한 건물이 보인다. 솟을대문, 정침(正寢) 건물의 긴 난간이 이 집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위엄을 말해준다. 중정을 중심으로 위쪽으로 대청아래 시어머니 방과 며느리 방이 있고, 오른편에 사랑방과 누마루 책방이 일자로 배치되었다. 건물 아래쪽에는 시할머니방과 작은 골방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건물 구조는 3대가 함께 살 수 있도록 고안된 것이다. 그리고 고택 가까이에 별당형태의 산천정(山泉亭)과 향양정(向陽亭)이 자리하여 이용할 수 있는 건물로서의 보조기능을 하고 있다.
매산고택(본제: 강충세.2013)
매산고택 본제에서 본 외원(강충세.2013)
매산 정중기는 1748년 매산 고택에서 800m 떨어진 토월봉 아래 6칸짜리 오록서당(梧麓書堂)을 지었는데 남쪽으로 4칸은 방이고 북쪽으로 2칸은 부엌이다. 매산은 오록서당 주변 경승처에 유학적 세계관을 반영하는 이름을 지어 의미를 부여하였다. 마음을 깨끗하게 갖고자 한다는 의미의 청심대(淸心臺),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대조기(大釣磯), 숨어사는 은자를 부른다는 의미의 초은대(招隱臺), 진리를 찾고자 건넌다는 의미의 심진교(尋眞橋), 고사리를 캐먹으며 절개를 지키고자 한다는 의미의 채지동(埰芝洞) 등이 문헌상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오록서당은 남아있지 않다.
매산 정중기가 1751년 짓기 시작하여 1752년 완성한 산수정에 관해서는 매산집(梅山集) 산수정잡영병기(山水亭雜詠幷記)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溪之西曲有一岡麓亭凡三間中一間爲堂左右兩夾爲室前附一架以廣堂之廡扁其堂曰山水亭右曰智及齊左曰仁守齊盖取魯論二樂之訓”
“개울을 사이에 두고 계곡 서쪽 굽이져 언덕이 뻗어 내려온 곳에 삼간으로 짓고 한 가운데는 당(堂)을 그 양쪽으로는 두칸의 방(室)을 합하여 세칸의 정자를 짓는다.”
이 세 칸에 각각에 이름을 붙여, 한 가운데 당(堂)의 이름을 산수정(山水亭), 우측의 방(室)은 지급제(智及齊), 왼쪽 방(室)은 인수재(仁守齋) 라 하고 유가에서 그 뜻을 가져왔다.”
산수정내원도(김영환.2014): 산수정평면에 기초한 내원의 모습을 진경산수화기법으로 표현했다.
수경요소로서 설천에서 내려온 물은 군자당에 이르고 선원천으로 합류된다.
산수정평면도: 성균관대의 정기호 교수(한국정원학회지통권20호2권.1988)가
그린 것을 토대로 재구성하여 그렸음.
매산은 오록서당과 마찬가지로 산수정 주변에도 이름을 지어 의미를 부여하였다. 산수정의 누각 아랫단을 구슬 같은 물소리를 듣는 곳이라는 의미의 청금대(廳琴臺), 청금대 아랫단은 욕심을 비우고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해 돌아온다는 의미의 영귀대(詠歸臺)라 불렀고, 정자의 서쪽 냇물은 물결이 잔잔하게 일렁인다는 의미의 설천(渫泉), 아랫물은 선비의 연못이라는 의미의 군자당(君子塘), 정자의 북쪽 언덕은 장판각의 책보관용 성격을 띤 것으로 보이는 고현사(高賢社), 정자의 남쪽 마을 입구는 신선의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라는 의미의 석문(石門)이라 명명하였는데, 이는 모두 유학적 세계관을 토대로 한 조영행위(造營行爲)라 할 수 있다.
-정기호 외 2인. 2002. 영천매곡마을과 매산 정중기의 택리관연구. 한국정원학회지통권20호에서 인용 및 재해석-
산수정과 외원좌측(여름)
산수정과 외원좌측(가을)
산수정(山水亭)은 이름 그대로 산수가 아름답다. 멀리서 보이는 산수정의 풍광은 숲 속에 푹 파묻혀 있는 듯하다. 뒤편 산자락에는 참나무 군락과 소나무 군락이 있고, 권역 안에는 배롱나무, 회화나무, 푸조나무가 건물과 잘 어울린다. 정자 앞을 흐르는 계류를 따라 산수유가 식재되었고 계류 건너에는 골짜기를 따라 길게 복숭아와 사과 등의 과수원이 조성되었다.
구조적으로 보자면 산수정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 크기의 팔작집으로, 전면부는 단층, 배면부는 중층인 누각으로 계곡 쪽으로 교각을 세워 매우 정교하게 지어졌다. 전면에 반 칸 툇마루를 두고 가운데 마루 좌우에 온돌방을 들였으며 퇴칸의 3면에는 좁은 마루로 돌렸다. 건물의 형태는 북부지방의 뜰집형으로 안대청이 훤칠하여 누마루에서 보이는 매화골의 풍광이 시원하기 그지없다. 대지 안에는 경사진 산기슭에 정자의 보조기능을 하는 중문간 채와 부엌, 동쪽의 고방(庫房)채를 두었다.
산수정근경(가을: 강충세.2013)
산수정근경(여름: 강충세.2013)
산수정(山水亭)! 마음이 울적할 때면 떠나가고픈 곳. 그곳은 기룡산(962m)과 시루봉(654m) 아래 넓은 평원의 대전면(大田面)을 지나 임고면 삼매리( 三梅里)에서도 10리길 산골짜기를 따라 들어가야 하는 한적한 곳이다. 2012년 늦가을 찾아간 골짜기 입구에는 사과밭이 널려있었고, 안으로 들어 갈수록 복숭아밭이 길게 이어졌다.
매곡마을의 복숭아밭(봄: 강충세.2014)
매곡밭에 주렁주렁 열린 사과(김우용.2012)
인적은 드문드문 천지가 고요하고 바람소리 상쾌하니, 여기가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아니고 무엇이랴? 산수정의 주인은 내원뿐 아니라 토월봉, 선원천, 마을경관의 외원까지 포함하여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논했고 시문을 노래했으며 군자로서의 유교적 세계관을 실천했던 진정한 신선이었음에 틀림없다.
산수정 위치도
산수정입구 계곡의 산수유
주변 산골짜기에서 고사리 캐고, 풀만 먹고 살아도 좋을 성 싶은 마을. 봄이면 사과와 복숭아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먹음직한 풍성한 과일이 주렁주렁 익는 마을. 그곳은 언제라도 심신이 피로할 때 선뜻 찾아 나서고 싶은 그런 곳이다.
그러므로 이제 산수정은 건축요소만으로 지정하는 중요민속자료가 아닌 복합명승으로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성균관대의 정기호 교수가 그린 것처럼(1988), 설천(渫泉)에서부터 군자당(君子塘), 선원천(仙源川)과 만나는 소폭포에 이르기까지 펼쳐진 수경관(水景觀)을 복원해야 한다. 건축요소로만 보기에는 산수정의 자연경관이 너무 아름답고, 그곳이 유교적 세계관이 넘치는 청정 산골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인용 및 참고문헌
1. 이갑규, 김신곤, 김봉규(2012). 한국의 혼 누정. 민속원
2. 김대호(2011) 명승자원으로서 별서정원의 가치(몇몇 경북지방의 별서정원을 중심으로) .상명대학교 석사학위논문
3. 문화재청(2009). 2009전국별서정원 명승자원 보고서
4. 정기호, 김용기, 김두규(2002) 영천 매곡마을과 매산 정중기의 택리관에 관한 연구. 한국 정원학회지 Vol 20. No2
5. [네이버 지식백과] 정중기(두산백과)
6. 『매산집(梅山集)』산수정잡영병기(山水亭雜詠幷記)
이재근 前 교수의 '자연과 철학을 담은 정원, 한국의 별서'는 문화재청이 운영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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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글 올려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건안하시길요